살아온,사는 이야기

회사와 영어

Jay.B.Lee 2008. 4. 8. 09:45

 

일본 출장시마다 회사와 한빌딩 한사무실을 사용,늘 얼굴을 대하게 되던  관계회사 직원이 10년간의 일본  주재원 생활을 끝내고 캐나다의 회사를 찾아 왔을 때 왜 캐나다로 이민왔냐고 물어본적이 있었다.

그는 영어 하는 사람이 그렇게 부러웠다고 했다.

그것이 진짜 이유라고 했다.

 

오랜동안 학교에서 영어를 배운 뒤 영어를 잘 하고 못하고를 떠나 입시와  취직혹은 승진시험에서 유용했을 뿐 회사에서 영어와 무관한 업무만 해오던 사람들, 특히 국내 판매 부서 사람들은  왜 영어가 필요하냐며 승진에 영어 성적이 반영되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

퇴직후 해외여행도 좋아하지 않아 평생 몇마디조차 사용해볼 기회가 없는 사람에겐 영어 배우기가 낭비중에 낭비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일했던 회사는 앞서가는 회사로 35년전 입사시험에 원주민 시험관이 영어 인터뷰를 실시하여 채용했다.

 앞선 생각을 가진 사장님은 사내 영어 시험을 치루어  하위자 구룹을 모아 매일 영어교육에 힘쓰다 어느 날 중위구룹만을을 상위권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으로 전환했다.

상위그룹은 어차피 잘하니까 교육에서 제외하고 하위그룹은 어차피 도태될 그룹이라하여  제외시켜 직원들에게 얼마나 충격을 주었는지.

해마다 영어 시험을 치루었는데 한번은 구룹에서 ,한번은 회사 자체시험이었다.

 회사 지체시험 영어 성적은 승진에 반영,근무기간,인사고과와 함께승진의 중요 요소가 되었다.

 첫해엔 부장 포함 전원이 영어 시험대상이었다가 두번째해부터는 부장은 제외시켜 인사부장이 자기가 보기 싫어 제도를 변경하였다고 뒤에서 욕을 많이도 먹었다.

회사의  부장까지 승진한 간부들은 그런대로 검증된 사람들이라 제외 시킨다는 회사 발표에 볼멘 사람들은  사원,대리,과장,차장들이었다.

 

내가 70년초반 입사시험을 치룰 때 G구룹은 필기 이외에 위원들이  우리말 대화를 갑자기 던지고 영어로 어떻게 하냐고 순발력및 회화 테스트를 했고 K 항공에선 영어로 자기 소개를 해보라고 했었다.

원주민이 질문하고 입사자들이 대답해야 하던  회사의  영어 인터뷰방식이  가장 실용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회사가 커지고 해외 각국에 사무소,지사,현지 법인들이 생기자 해외 주재원 선발은 필요 업무 분야외 일정 영어 성적이상을 취득해야 가능했다.

사장님의 영어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모르셨고 한번은 인사고과도 안좋고 직원 금전 사고로 인해 경고,감봉의 근태 평점에도 불구  승진에서 탈락해야 할 판매부서 차장을  탁월한 영어 성적 때문에 사장님이 직접 구제, 부장으로 승진 시킨 일도 있었다.

사장님이 회장님이 되시고 난후 회장님이 직접 승진시킨 부장이라고 직원들이 부러움 반,질시반으로 놀려댄 일들도 있었다.

당시 그룹 차원에선  회사 식당에서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였는데 토요일은 양식 비슷한 음식을 제공하였다.

세상에 나가 경쟁하려면 먹는 음식에 연연하지 말고 잘 적응 하여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익숙한 것-입맛과의 결별이란 어려웠던지 토요일마다 거의 3분의 일에 해당하는 직원들이 밖에 나가 식사를 하는 바람에 회사 주변은 토요일 특수를 누렸다.

부작용으로 회사의 접대비,복리 후생비(야근 식대)가  일부 사용되고 개인의 주머니 돈도 사용되어 회장님의 정책방향은 결국 실패, 분식으로 대신하는 것으로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회장님의 새지시로  앞으로  해외에 있는 현지 직원이나 주재원들에게 보내는 모든 공문은 영어로 작성하여 보내란  내용의 사내 공문이 하달되었다.

그런대로 해외 주재원들은 응하려 하였으나 국내 직원들은 공문보다 전화를 더 많이 이용 국제 전화를 선호하는 바람에 시간이 가면서 점심처럼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앞서 간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새정부의 영어 교육정책도 그런 안타까움들이 있다.

회사에 들어오기전 기본으로 하는  해외 영어 연수는 옛말이 되었고 입사시험 서류 전형에 토익 점수가 높아야 일단 서류 전형에서 합격되고 면접을 볼수 있는 기회를 얻는 다.

변별력을 영어로 구분하게된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는 해외 유학파에 영주권 소유자들이 넘쳐대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입사시 회사에 따라서는  영어로 프리젠테이션까지 해야 하는  경쟁의 시대다.

모 국내은행에 외국인이 행장으로 취임하고 외국은행 출신인 지인이 부행장으로 취임하며 인사담당,기획을 총괄했다.

 해외 지점 파견 대상자들을 영어 프리젠테이션을 시키고 30분간의 영어 인터뷰를 통해 선발하자 모두 불만이 없었다고 했다.

종전에는 연줄, 외압까지 있었던 곳이었으니까.

외국회사들의 진출이 많아 간부급  회의는 영어로 하는 곳도 많다

이제는 작은 지방도시까지 대부분 B급 이하의 원주민 영어 선생님들이 넘쳐나는 세상으로 변했고 외국인들에게 해외에서 영어 가르치며 돈벌기 좋은 나라가 한국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자국에서 일자리 잡기가 쉽지 않아서 먼 나라까지 오는 것이라고 믿는다.)

영어를 특출나게 잘하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한승수 국무총리같은 분들이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될 일이다.

 

캐나다로 이민온 그  관계 회사 직원은  그후 작은 사업체를 차렸다.

그의 고객은 일본인, 한국인, 캐나다인으로 지금은 일어 ,영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며  소원 성취 했을 것이다.

남보다 앞선 생각을 한다는 것은 개인이나 회사나,국가나 나아갈 방향으론 틀림이 없다.

단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앞선이들의 생각을 얼마나 빨리 적극적으로 수용하느냐에 달려있다.

영어조차 예외가 아니다.

영어는 회사 생존을 위한 기본 TOOL로 회사는 교육기관이나 정부기관보다  늘 앞장서 달려 왔다.

그러나 늘 뒤에 쳐져 있으면서 앞장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고의 틀을 깨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문제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  편하게 안주하며  일하는 것과 이익을 창출하여야  생존하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과의 차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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