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사는 이야기

해후

Jay.B.Lee 2008. 1. 1. 21:16

 

 

 

만남과 헤어짐이 우리의 운명이고 우리의 삶이다.
그렇기에  헤어짐이 늘 슬펐고 만남이 반가웠다. 
98년 어머님이 82세에 간암으로 돌아가신후 조문객중에서 형님이 친구분을 소개하여 이름을 듣는 순간  불현듯 나의유치원 시절이 떠 올랐다.
형님 친구의 어머님께서는 나의 유치원 시절 선생님이셨기 때문이다.
아직도 건강히 살아계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선 전화 번호를 적었다.
어머님 장례를  치룬후 어머님 친지분들을 찾아뵙고 ,어머님이 다니시던 청주 교회까지 내려가 어머님의 소식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어린시절의 나의 첫 선생님을 안사람과 찾아 뵙기로 했다.
한국전쟁의  막바지로  휴전이  체결되던 해 1953년 봄  나는 "동진 유치원"에 들어갔다.
유치원은 충북 영동 이수 초등학교 안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전쟁때 학교가 불타버려  흙벽돌로 임시로 지은 학교와는   달리 유치원은 근사한 옛 한옥으로 경부선 철도 밑에 자리잡아 늘 오가는 증기 기관차를 바라보며 보냈다.
선생님은 두분이셨는데 두분다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늘 입으신것으로 기억된다.
옛 앨범을 찾아보았다.
유치원에서 소풍갔을 때 찍은 사진과 유치원 수료 흑백 사진 두장이 전부다.
확대경으로 선생님의 모습을 보기 위해 사진을  꺼냈다.
지금 보아도 눈에 띌만큼 예쁜  여자아이가 흰 블라우스를 입고 심각하게 옆에 서 있다.
형님의 친구분 댁은 분당으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형님 친구 내외분과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안사람과 나는 선생님께 큰 절을 올렸다.
그러니까 45년만의 해후다.
선생님은 생각보다 작으마하신 키로  80여세가 넘으신  얼굴에 사진에서 본 옛 모습이 조금 남아 계셨다.
이북이 고향이시고  평양 고녀를 나오신후 충북 영동에 정착하시게 되었으며, 남편분께서는 정치운동하셨다며 이승만 박사와 함께 경무대(대통령 관저)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셨다.
유치원에는 5년을 근무하셨는데  내가 수료후 2년을 더 계신 것이다.
내가 가져간 사진을 꺼내 보여드렸더니 선생님도  미리 준비해 놓으신  똑같은 사진을 내놓으셨다.
어린 시절을 정확히 기억하고 계신 선생님.

나와  어머님 형님과  누나까지 기억하고 계셨다.
당시 유치원은 한글을 가르치지 않고 숫자,노래, 율동, 놀이만을 가르쳤다. 
이제 나도 감히(?) 말할수 있다.
"내가 배워야 할 것은 유치원때 모두다 배웠다(책 제목)"고.
이제는 교회 권사님으로 신앙생활을 하시며 지낸다는 선생님.
선생님댁을 나서며  오랜 시간후의  만남과 유년시절을 회상했던 순간이  행복했던 시간이었음을  안사람에게 전했다.
이제는 해후를 통해 결별조차 슬퍼하지 않음을  배워야할 때가 오고 있슴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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