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동유럽여행

폴란드,비엘리츠카 소금광산(E-12)

Jay.B.Lee 2007. 1. 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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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소금광산 옆의 작은 공원으로 공원안에 조용한 레스토랑이 있다.

 

 

그는 마드리드에서 왔고 이름은 미겔(Miguel).
미쉘? 마이클? 미구엘?
내가 일부러 비슷한 이름을 주어대자 그는 자기의 정확한이름은 "미겔"이라고 정정해 주었습니다.
의사소통시 상대가 무슨 소릴 하는 것인지 몰라 답답할 수 있지만 인간이란 많은 경험을 통해 눈빛으로,바디 랭귀지로 혹은 말의 뉴앙스로 상대를 이해하게 됩니다.
 해외 오지 탐험으로 "도전 지구 탐험대"란 TV프로가 있었는데 참가자의 대부분이 언어가 틀려도 서로가 상대방이 무엇을 얘기하는지 대부분 이해가 되었다 합니다.


전에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얼에서 자동차로 한시간 반 거리에 있는  부르몽(Brmont)소재  *현대자동차 공장에 막 근무하게된 직원이 근처 스키장에 갔더니 불어를 하는 그네들이 한국말을 이해하더라고 했습니다.
궁금해하는 우리에게 스키장 이야기를 했습니다.
처음 *스키를 타던 날, 가속이 붙어 급히 내려가자 멈출줄을 몰라 다급한 마음에 "비~켜! 비~켜! 비이~켜어~!"라고 소리 소리 지르자 한국말을 다 알아 듣고 옆으로 피하더라고 했습니다.


*<현대자동차 캐나다공장>
현대자동차(주)에서 캐나다와 미국시장을 겨냥하여 10만대 생산능력 규모로 최초로 해외에 설립한 자동차 조립공장이었습니다. 
미화 2억8천만불(당시2,200억원)이 투입되었습니다.
중형차(Compact Car)인 쏘나타를 1989년 생산 개시후 실패,막대한 누적 적자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1996년 폐쇄하였습니다.

   *<스키>
 우리나라에서는 스키라면 당연히 Downhill 스키로 모두 이해합니다마는 북미에서는 스키를 좋아한다하면 70프로 정도는 다운힐 스키를 타냐고 되묻습니다.
아마도 Country Ski를 좋아하는 사람도 상당히 있고 스노우 보드를 즐기는 사람도 있어 그렇게 물어 보는것  같습니다.


오래전 한국 여류 화가가 브라질에서 한국 축구 감독과  함께 택시를 타고 가는데 둘다 폴투갈어를 몰라 여류 화가가 영어로 이곳에 세워달라고 하자 택시기사가 알아듣지 못하고 계속 달렸답니다.
 그러자  성질 급한 축구감독은 "야 ,이새끼야 서란 말야,서!"라고 꿱 소릴 지르자 기사가 놀라 정거하자  택시에서 나오며 축구감독이 이렇게 말했다 합니다.
 "그자식 한국말은 잘알아 듣네"
언어란 감정적이라 우리는 감정을 통해 많이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외국에서 한국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있을까해서 우리말로 좋지 않은 얘길 했다가는 망신을 당하기 쉽습니다.
경제대국으로 가면서 한국말을 할줄 아는 외국인이 너무 많아 졌기 때문 입니다.
지금이 아니라도 거의 십 팔구년 전인데도 그랬으니 말입니다.


현대 자동차 캐나다 (토론토)본사에 나보다 먼저 와서 처음 근무하게된 한국인 차장이 근무한지 며칠되지 않았을 때 일입니다.
어느 날 사무실에서 씨가 냄새가 진동하자(당시 캐나다도 사무실 금연이 실시 되기전 이었슴)혼자 말로 중얼거렸답니다.
"어느놈이 씨가를  피우는거야 ,이거!"
그러자  칸막이 사무실 저쪽에서
"다음 부터는 안 피울께요~"
"? ?"
한국인이라고 혼자 뿐인 사무실에서 한국말이 들리자 깜짝 놀랐답니다.
알고보니 캐나다 선교사의 아들로 한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2학년까지 전주에서 살다온 캐나다인 남자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잘 아는 분으로  서울 미대사관에 근무하다  씨티뱅크로 옮겨  뉴욕 씨티뱅크 아시아 지역 본부장으로 있던 지배인이 직접 들려준 이야기 입니다.
맨하탄 본사에서  친구인 한국인과 퇴근을 하며 지하철안에서  서가면서 둘이서 미국인 흉을 한참 보았답니다. 
얘기중에 앞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던 미국인이 신문을 접으며 일어서 나가면서 
"정말 너무들 하십니다." 하더랍니다.
그것도 유창한 우리말로.
 놀라고 당황해서 얼굴만 붉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직접 겪은 얘깁니다.
현대자동차(주) 근무시 같은 후배로 나보다 먼저 캐나다에 초창기 직원으로 왔다가 귀국하게되어 그의 가족과 우리가족이 함께 귀국기념차 미국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회사 업무용 차량, 클라이슬러에서 나온 9인승 "캬라반"( 아이아코카가 클라이슬러를 회생시켰던 승합차로 구조가 단순하며 우수했다)을 타고 몬트리얼을 지나  미국에 들어 가기위해 미국 국경 검문소에서 8개의 여권을 차창 밖으로 내밀었습니다.
여권을 받아본 미국인  남자 직원하는 말
"아, 한국인 이시군요"
분명히 한국어 였습니다.
"네?"
"아니 ,한국어하는 미국인 처음 봅니까?"
너무 놀라서 여권을 받자마자  "감사합니다"인사만하곤  도망치듯 달렸습니다.

 

이화여대 교수가 쓴 수필이 기억납니다.
이화여대 여교수가 미국방문시 이민와 사시는 은사였던 선생님을 뉴욕에서 찾아뵙고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답니다.
배웅을 나온 여선생님은
"얘,껌둥이 기사구나 ,조심하거라"
택시를 타자  택시 기사는
"나, 한쿡 있었어요. 영등포우, 영등포우. 미스 킴도 알고, 미스 리도 알고."
영등포 창녀들 얘긴지 술집 아가씨 얘긴지.
 어쨌든 미군으로 한국에 근무 했다는 것인데 혹시 교수님이 하신 말을 들었으면 어떻하나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올랐다 했습니다.
지금은 더욱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여서  외국에서,외국인 앞에서 우리말을 할때  아주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못알아 듣겠지 하는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기본이 된 사람은 걱정할 일이 아니겠지요.

 

미겔과 비엘리츠카 안내판이 가르키는 소금광산에 들어서자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광산의 이미지는 없고   아담한 집같은 건물에 들어가   매표창구에서 영어 가이드가 안내하며 설명한다는  티킷을 함께 샀습니다.
일인당 60 주오티(15,000 원 )
가만히 있던 미겔이 어차피 못알아 듣는 영어인데 못알아 듣는 폴란드 가이드를 따라 가자고 권했습니다.
그것도 영어 가이드팀보다10분 일찍 입장하며 입장료도 싸고.
가격은 46 즈오티(11,500원)
어차피 나일 들어 하는 여행이란 총론적 성격을 갖는 것이지 각론에 신경을 쓰는 것도 아니어서 동의를 했습니다.
미겔이  환불받은 돈을 이등분 해 돌려 주었습니다.
영어 안내 책자를 5 즈오티(1,250원)에 별도로 사고도 돈이 남은 셈이었습니다.

 

지하 64 미터에 자리 잡은 소금광산은 17세기 것으로 소금광산안에 광부들이 만든 교회, 성모상, 소금벽위의 최후의 만찬조각상등이 볼만 했습니다.
청회색벽이 진짜 소금인가 싶어 나일 먹었어도 호기심에 침으로 문질러 맛을 보았습니다.
호기심 빼면 이제 정말 시체입니다
짭잘한 것이 진짜 소금이 틀림없었습니다.
태고적에 이곳이 바다였다는 증거입니다.
그러고 보니 밖의 기념품점에  팔고 있는 봉지들이 소금이었습니다.
지하 호수도 보고 긴 코스를 돌고 돌아  378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 왔을 땐 상당히 시간이 지난 뒤였습니다.
거의 3시간이 걸린 모양입니다.
함께 시간을 보낸 미겔과 헤어져야 했습니다.
잠시 였는데도  친구처럼 같이 있어서 여행이 즐거웠었는데.
아마도 그도 그럴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는 크라코프로 바로 돌아가고 나는 아름다운 마을을  돌아보고 가기로 했습니다.
정보에 의하면 돌아볼 가치가 충분하다 했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겔과 힘차게 이별의 악수를 했습니다.
섭섭함을 금방 잊게 되기를 바라면서.
정말 만나자마자 이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