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네번째 터키 여행,조지아 여행(2015)

터키 -Urfa와 Harran(40)

Jay.B.Lee 2016. 3. 30. 11:09



사진 : 상느 우루파  규벤 호텔의 아침 식사.

아침 식사를 끝내고  온전히 하루를 시작하는 여유를 얻었다.



여행중 두번째 힘든 코스가 카르스에서 우르파까지 의 여정이다.

 심사숙고하여 고른 도시로 남쪽 지중해 방향으로 이동하며 "디야르 바크르"(터키 동남부에 소재 한 대도시로 인구 약 70만,시리아국경까지 약 1시간 거리다 대부분 크루드족이다.2012년 방문)까지 갈것인지 우르파까지 갈것인지 고심해야 했다.

샹느 우르파는 2008년 ,디야르바크르는 이란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 2012년 들린 도시다.

그네들이 얘기하는 운행시간은 도저히 믿을 게 못되어 지나고 보니 디야르바크르 에서 묵는일이 더 좋을 뻔했다. 

어디서 출발한 것인지 카르스 길바닥에서 나를 포함 승객 세사람을 태운 버스는 "디야르바크르"버스회사다.

버스가 깨끗했고 좌석마다 비행기에서 볼만한  큰 모니터가 달려 있었다.

옆좌석에는 청년이 앉았는데  터키인의 이미지와는 별개인 친구였다. 

대학에선 경영학을  공부했고 차는 시보레 SUV를 가지고 있으며 Pilot 면허가 있다고 자랑이다.

옷은 해외 유명 상표를 입고 전화기는 I Pad 를 사용하고 있었다.

무슬림의 겸손과 터키인들의 과묵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도 영어를 할 줄알아 말동무가 되주었다.

터키의 장거리 버스엔 기사가  둘이다.

 선임 기사가 있고 교대 기사가 있다.

차도는 고속도로가 아니데도  버스는 고속 버스다. 

무슨 고속 버스가 달리다가  길가에 잔뜩 쌓아놓고 파는 농작물 옆에 수시로 세우곤 했다. 

양배추등 가격을 물어 보곤 했는 데 여차하면 사서 버스짐칸에 실을 싣기 직전이었다.

누구도 불평하는 사람들이 없다.

몇군데 들려보더니 포기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산악지대를 통과하는 도로는  때로 4차선 도로,2차선도로가 이어졌다. 2차선도 좁디 좁은 2차 도로다.

종종 도로상태가 엉망으로 도로가 움푹인 곳들도 있었다.

어느 곳은  차 한대가 간신히  통과하는 다리도 있다.

저녁 먹을 시간에  어딘지 모를 휴게소 식당에 내려준다.

화장실을 이용하고 좌석에 앉아 있자 종업원 청년이 말을 건다.

어디서 왔냐고 .

종업원(무조건 남자)의 얼굴이 엉망이다. 

여드름도 아니고 피부가 엉망이라 연고를 꺼내 발라주었다.

가방을 뒤져 약봉투를 꺼내 혹시 소염제나 항생제가 있나 보았다.

버스안의 큰 가방에 있어 그에게 도움이 되지못해 미안했다. 

연고도 피부 연고는 아니다.

그래도 그는 내가 관심을 가져 준 것이 고마운지  Cay 한잔을  가져다 주었다.

차에서 눈을 부치고 있을 무렵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 .캄캄한 시골 주유소 부근에 차가 서 있고 차 부근에 아이들이 왔다 갔다 했다.

동물 비명소리에 차가 개를 치었나 했다.

궁금해 나가 보았다.

불꺼진 버스 앞에서 아이가 큰 프라스틱 통에 양한마리를 놓고 목을 자르고 있었다.

 양은 죽는다 고래 고래 소릴 지르고 결국은  죽었다.

양피를 버스 범퍼에 뿌려지고 운전했던 기사는 동네를 향해 어둠속으로 사라졋다.

고통없이 잘 죽일 수 없었을까.

뒤에서 영어가 들린다.

승객중에 영어를 잘하는 터키인이있었다.

아마 이런 광경은 처음 보았으리라 여긴다고 .

이 차가 나온지 이틀된 차로 앞으로 사업이 번창하고 사고가 없도록 양의 피로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다고 했다.

나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풍습이 과거에 있었으며 동물 아닌 붉은 팥이 들어간 떡으로 한다고 했다.

고사와 같은 풍습이다.


 귀벤 호텔 식당.

터키인들,특히 이지방 사람들은' 귀벤'보다' 귀엔 '호텔로 발음한다


아침은 7시부터 서빙 하기 시작했다. 하룻밤 숙박료 80라리를  내가 한달간 터키 여행중이어서 조금 깍아 달라고 했다.

 현금으로 주겠다고 아침 포함 75라리(32,000원)로 깍았다.

그네들은 남자의 체면을 세워주길 좋아 하니까

호텔 시설이 좋았다.


호텔 규엔; 전화 0(414)215 17 00



샤워후 잠시 눈을 붙이고 샤워를  마치자 일상의 궤도에 다시 돌아온 기분이다.

어젯밤 헤프닝을  생각하면 씁쓰레 했다.

도착한 상느 우르파  버스 터미날은 오래전 후질구레하던 우르파 오토가르가 아니었다.

아파트 단지가 즐비한 신시가지 근처 새로 건축한  버스 터미날이었다.

새벽 한시. 몇사람이 내린 버스 터미날은 승객들은 순식간에 어디로 사라져 버렸다. 

택시 정류장에 달랑 택시 두대.

어쩔수 없이 택시를 타기로 했다. 규엔 호텔을 얘기하자 30라리 부른다.

 25라리로 깎았다.

스마트 폰으로 차량번호를 슬쩍 찍어 둔다.

총알 같이 한참 달려 택시 기사가 내려준   거리가 약간 낯이 익었다 .

작은 배낭을 들고 차에서 내리자 택시가 슬금 슬금 움직이며 속도를 낼 기세다

순간 이런 방법으로 도망가는 놈이 있다더니  하는 생각에 택시를 쫓아가며 따라가며  뒷트렁크를 내려쳤다.

동시 순간 눈에 들어온 10미터앞의  경찰  Petrol car를 발견하고  "Police,Police "하고 소릴 질렀다. 

경찰 두명이 차에서 총알같이 튀어 나왔다.

멈춰선 택시를 두고 경찰에게 난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고 택시기사가 짐을 내려주지않고 도망가려 했다고 말했다. 

택시 기사는 자기차가 차도를 막고 정차해서 피해주려 했다는 것이다.

뒤에 있던 부부의 중년 남성이 나와 거든다.

실제가 그렇다면 믿어야지 . 우측 방향등을 켜고 움직였거나 서서히 움직여 주었다면 의심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뒷차들이 실제 서 있었고 뒤차 주인이 말하는 것을 보면 사실로 인정하자. 

경찰들도 오해가 풀렸냐고 되돌아 갔다.

밤거리에 큰 소리로 다급하게 경찰을  불러본  첫 경험이다. 

택시 기사와 악수를 하고 25라리를 건넸다.

나쁜일도 몰려온다더니 저녁에 또 한번 해프닝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태어난  Urfa에서 벌어졌다.


우르파는 토마토와 가지를  꼬치에 구운 "우르파 케밥"이 유명한 곳이다.

호텔 아침 식사에 나온 토마토 구이와 가지. 

토마토가 얼마나 맛있는지 두번이나 가져다 먹었다. 


항상 먹어도 질리지 않은 에크멕.

2008년 우르파를 방문하여 네룻산 을 다녀오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탄생지와 울루 자미(대사원의 의미),우르파 성채,성스러운 연못과 바자르 등 시간을 알차게 보냈던 곳이다.

하란은 우르파에서 45키로 떨어져 있으며 시리아 국경이 가깝다(17키로)

그 때 하란 (Harran )을 다녀오지 못해 이번엔 하란을 가보기로 했다 

별로 볼 것도 없고 기분 나빳다는 얘기도 들렸다 

호텔에서 일러준 버스 정류장에서 미니 버스를 타자(버스 요금 1리라) 한참을 달려 네거리 정류장에 내려준다.

눈치로 환승하라는 얘기인줄 알았다.

이곳에 30년은 되어 보이는 승용차를 애지 중지 하며 앉아 있는 청년이 있었는데 하란를 간다고 하란행 버스가 오자 나를 태워 주었다.

알고보니 그곳에서 하란행 버스가 제대로 오는지 관리하는 청년으로 하란에서 버스타고 오며 내릴 때도 그자리에 있었다.

버스요금 6리라 . 

하란에 가가이 이르자 토양 이 적갈색으로 짙어지기 시작햇다. 

갈대가 많이 보이고 옥수수밭과 목화밭이 펼쳐진다.

  

버스에서 내리자 두어명의 터키 가이드가 붙는다 

영어가 제법 유창한 친구가 유적지 관광안내를 원하면 해주고 않해도 좋다며 그러면 들어가는 입구를 알려준다고 했다.

몇번이나 붙잡는 걸 뿌리쳤다.

가이드란 귀찮은 사람이다. 천천히 나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사진은 그 가이드가 나쁜 놈이라고 말해주던 터키인들.

나중에 이곳 관광을 마치고 나온 출구가 최초 들어간 입구와 500여미터정도  멀게 엉뚱한 방향으로 나왔다.

 마침 이곳을 빠져 나가는 자가용의 청년둘이 버스 타는 곳까지 태워 준다고 호의를 베풀었다. 

그들은 그 가이드가 나에게 집적 거리는걸 보았다며 나쁜놈이라고 다시 일러주었다.

버스 정류장 옆의 상점들 .관광객용이 아닌 생필품들을 파는 곳이다

허허 벌판에 있을 줄 알았던 하란이 성채로 둘러 쌓여 있다.

이 보수중인 문이 하란 유적지로 들어가는 입구가 된다.

마침 사진에 찍한 자칭 가이드. 나에게 접근하던 친구로 나에게 다가와 집에 가는 길이니까 뒤에 타라고 한다.

아직 5분여 거리가 남아 그의 작은 오토바이에 메달려 흙집에 도착

한인 기독교인들의 열성이 대단하다.순례단이 다음 순례단에 부탁해 부착해 놓았을 설명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신과의 약속의 땅 카난으로 가기전 이곳에 몇년간 머물렀다.

       

이곳엔 옛 흙집을 수리하여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있는 집이 두곳이 있다. 

입장료는 없고 차나 기념품을 팔고 있다.

      

       사진의 이친구(그의 이름은  Aldo)가 마치 자기 할아버지가 남겨준 유산인 자기집처럼 설명을 해주더니 (총 2분 정도) 나와서 Tip을 달라는 것이다.

 기가 막히긴 하지만 오토바이도 탔고  영어 설명도 강제로 듣고 해서 5리라를 주었다가 너도 먹고 살자고 하는 것이겠지 싶어 눈딱 감고 5리라를 더 주었다.

5,000원을 순식간에 털렸다. 

나중에 이집 주인 아주머니가 얼마를 주었냐고 슬쩍 묻는 것이 그가 이곳에서 평판이 나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중에 하란 유적지를 나오며 친절히 자가용을 태워주던 청년들도  나쁜놈이라고 욕을 해댄다.

아마 관광객을 등치며 살아 이곳 분위기를 흐리게 하는 당사자인 모양이다. 

외모부터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탐욕스럽게 생겼다.



        

목재가 귀한 귀한 곳이어서 지지대 없이 흙벽돌로 층층히 쌓아 여름엔 시원하게 겨울엔 따듯하게 통풍 장치를 한 셈이다.

이런 건축 양식은 이곳과 이태리 (석재로 쌓았다)가 유일하다

지붕높이는 약 5미터 정도



꼬갈 집 내부는 짐작보다 넓은 복도를 이루고 이어져 있다.



밖에서 만난 아버지와 딸. 이부근에 산다







나를 보자 환하게 웃으며 집에서 나오던 아이. 돈을 달라고 해서 1라리를 주고 사진을 찍었다.

 



이 흙집에는 더 이상 주민들이 살지 않는다. 대부분  현대적인 가옥으로 이주했다.





터키의 서부와 다르게 이 하란지역은 가난해보인다.자동차들도 대부눈 20-30년이 다되가는 차들이다.



처음 가이드가 내려놓은 집과 다른 전통 가옥






시간적으로 좀 이른 편이어서 차를 마시며 쉬고 있자 관광객들이 오기 시작 했다.

모두다 터키 내국인이다.




한잔의 차이. 한잔에 1라리




저 V자 사인은 한국에서 전해진 것이 틀림없다.




포즈를 취해주던 관광객-여선생들로 Trabzon 출신, 이스탄불에 거주한다.



이곳을 찾은 부부들을 만나 터키와 한국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엔지니어들로 부인들이 참 선하게 생겼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압둘라 크르무즈 

성이 "빨강"(색)이다





마치 이곳 족장처럼 전통복장을 한 주인장 노인.


벌써 점심 때가 되었는지 아점인지 식사가 나왓다.

순무와 칼로 난도질한듯한 살라타(샐러드).그라고 피클.

된장 빛갈을 한 저건 무언지.양념 비슷하게 생겼다. 

고추 .그리고 심심한 빵.너무 소박하고 단순한 식사다.

 


신학교 터를 찾아 가려는 데 이집 식구들이 야외에서 식사를 준비중


남자들만의 식탁. 노인과 아들 그리고 손자. 

여자들은 별도로 식사를 하는게 그들의 전통인 모양이다.






아직 한번 타본적 없는 낙타.


"가시밭길"이란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이다

이곳에 오기까지 가시밭길이란 그냥 고통스러운 상징적 길인줄 알았다.

신학교 터인 유적지로 가는 길이 온통 가시밭길이다.조심 했데도 옷에 달라붙는다. 

온들전체가 가시여서 상당히 성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