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카르스 성채
카르스 성채(Kars Kalesi)의 위용이다.
B.C 14세기 코카서스에 정착했던 터키족 "카르사크스"가 도시의 명의 기원이 되었다.
오스만 말기1878년부터 1920년까지 러시아 점령하에 있었다.
도시엔 러시아식 건물이 많이 보였는데 이곳의 터키인들은 아르메니아인의 건물이라고도 했다.
터키인들과 아르메니아인들의 충돌은 여러 복합적인 원인으로 발생한 것으로 카르스가 그 중심에 있다.
그들 양방이 주장하는 사망자가 다르고 역사학자들이 추정하는 숫자도 다르다.
몇만명에서 150만명(알메니아 주장으로 메소포타미아에서 굶어죽은 여자들과 노인 아이들을 포함한다면 )까지 피해자의 숫자가 불명확하다
지금 전라 남북도 만한 땅에 약 3백만의 인구가 거주한다
그러나 전세계에 흩어져 사는 알메니아인들은 약 9백만명으로 추산한다.
건축 시기는 10세기정도로 추측하며 13세시 티무르 군대에 의해 파괴된 것을 1579년 라라 파샤가 재건했다.
성채에서 내려다 본 시가지
큠벳 자미.
932-937년 지어진 아르메니아 교회였으나 1579년 부터 자미로 사용했다.
카르스시에서는 보수 공사가 한참이었다.
성채위에 전시한 포대
아래에 보이는 다리가 카르스 강을 지나는 석교다.
튼튼하게 지은 다리로 성채와 같은 시기에 건축했다.
성채위엔 카페가 하나 있다
잠시 쉬기로 했다.
카페에서 내가 주문한 터기식 커피.
식지 말라고 저런 컵에 담아 내온다 안에 또하나의 잔이 있다.
성채에 올라온 현대차.
터키 이즈밋공장에서 생산한 것으로 짐작.
데이트중인 터키 젊은이들
성채아래 골자기엔 고색창연한 건물이 있다.
그늘진 이곳은 추운 날씨로 나뭇잎이 다 떨어져 가을 냄새가 물씬 났다.
올라온 길로 내려가지 않고 대학 건물쪽으로 내려가 보았다
말라가는 작을 길 풀섭엔 성애가 끼기 시작할 정도로 온도차가 심했다.
성채위에 셀프카메라 놀이를 있는여인들
성채에서 만난 대학생들.우측 둘은 너무 닮아 형제거나 쌍둥이가 틀림없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몸시 미끄럽다. 난 트레킹화라 괜찮치만 데이트중 이길을 올라온 젊은이들 운동화로 미끌러지기 쉽다.
이들이 대학 건물이라고 일러주었다.
터키인의 인종 분포가 재미나서 금발에 푸른 눈이 있는 가하면 아시아인의 얼굴도 있다.
대학 건물을 뒤로하고 걸어 나오자 큰 건물이 있고 한참 웨딩 사진 촬영중이다.
결혼식이 아니다.
이곳 건물은 과거 러시아 건물로 호텔로 개조하여 곧 오픈 예정이다.
아주 40대 초반의 잘생긴 호텔 주인이 직원에게 차를 대접가져오라고 하며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자기가 2백만불을 투자했다고 호텔을
봐줄수 있냐고 안내해주었다.
회사에 다니며 외국 대도시의 호텔을 많이 이용한 적이 있다는 말에 나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했다.
주차장 시설을 묻자 25대 정도 가능하다고 한다.
로비는 아담하나 높은 천정에 투박하고 촌스러운 등이 너무 내려와 달려 답답했다.
막 가져다 놓은 듯한 바닥위 가구들은 조화롭지 못하고 가구를 채운 느낌이다.
로비는 방음이 않되 사람들 소리로 몹시 소란스러워 커다란 카핏을 두장 정도 깔길 권유했다.
사장은 2층으로 데려가 방하나를 보여 주었는데 화장대 의자 하나 달랑이다.
이태리식풍의 의자는 엄청 무겁다.
옷장은 너무 싸구려 가구인게 티가 났다.
세탁물 봉투가 없고 헤어 드라이어는 부착되어 있지않고 화장실이 너무 좁았다.
호텔로 개축하며 어쩔수 없는 사정인 모양이다.
식당이라고 보여주는데 깨끗하나 어찌나 썰렁한지 조지아 레스토랑의 분위기다.
호텔 사장은 이런 시설로 보아 4성급은 되겠냐고 심각하게 묻는다.
충분하다고 좋게 얘기해 주었다.
아무래도 투자후 오픈하기 전 노심 초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사장의 지인들이 들이닥쳐 사장과 헤어지며 그의 사업이 정말 잘되길 빌었다.
호텔 바로 옆은 귀신이 나올듯한 페가가 있다.
언제 지은건물일까 .하맘(목욕탕)같기도 하고
석교.
평면으로 하지않고 중앙부분을 높여 아름답게 설계했다.
450여년이 지난 이다리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을 가질만한명소로 만들수 있는 곳이다.
카르스 강은 오염되고 관리가 되지않아 강의 정화 작업을 하기까지 세월이 더 가야한다.
허물어져 가는 옛 건물 .
하맘형태의 돔이다, 유리창이 달렸던 것을 보아 7-8십여년은되어 보이고 목욕탕에 다시 붙여 차를 마시며 강물을 보던 던 곳으로 멋대로 추측한다.
당시에 깨끗한 강물이 흘렀을 것이다.
카르스 강의 수량은 충분하나 시급히 정화할 필요성이 있다.
석교위에서 만난 대학생들.
영어를 못했다.
허나 간신히 그들이 간호사가 되기위해 간호 대학에 다니는 것을 알았다.
한류는 이곳까지 밀려 왔는지 사진찍어도 되냐는 말에 금방 손가락이 V를 그린다.
강물을 정화하고 강을 청소좀 한다면 시민의 휴식처로 좋은 장소다.
시내의 어지러운 터키 건물.
라시아식 건물
버스표 대리점.
호텔서 가까운 버스표대리점에서 "상느 우르파 "버스표를 문의 하자 80라리라며 70라리까지 깍아 준다고 했다.
어디인가 60라리에 해준다던데 하자 그곳에 데려다 주겠다며 가게를 비운채 두청년이 나를 데리고 5분여 걸었다.
나를 번화가 대리점에 데려다 주고 간다.
너무 친절한 사람들.
번화가에 자리한 여행사로 두말없이샹느 우르파까지 60라리(26,000원)에 표를 끊어 준다.
10시간이상 소요된다.
지난 번 여행에서 이란에서 시간을 보내고" 디야르 바크르"에서 이스탄불까지 22시간의 버스여행을 상기시키곤 10시간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쇠뇌를 시킨다.
내일 아침 버스 출발전 한시간전 에 이곳으로 오라고 했다.
외국인을 만나 재미있어 하는 아가씨들과 영어, 터키어로 섞어 얘길 하다 차를 얻어 마시고 내 가족 사진,손자 들을 보여주었다.
그들에게 외국인,한국인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터라 가족 사진은 사람들과 친밀해질수 있는 도구도 된다.
왼편의 아가씨는 지독한 골초였다.
잠시 즐겁게 그들과 시간을 보내고 이 근처에 아무 맛있는 음식점을 소개해줄수 있냐고 묻자 가운데 친절하게도 청년이 나를 데리고 3분여 걸었다.
아마 이들이 하루 한번 씩 선행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가 안내한 식당은 아주 인기가 많은 모양으로 중년층의사람들과 젊은들이 가득했다.
2인용 식탁으로 안내 받아 주문한 양고기 케밥과 콜라 한잔.
신선한 셀러드와 요거트가 함께 나왔다.
음식의 구성이 약간 서구화되었다.
터키 음식의 본 특성을 잃지 않으면서 구성이 좋다.
양고기,쌀밥(필라브),감자튀김,양파,토마토,고수, 빵
무료로 제공된 빵 (에크멕)은 손이 가지않아도 될만큼 양이 많다.
이번 터키를 돌아보며 제일 맛있게 먹은 식사.
저녁식사 15리라 (6,500원). 서빙한 청년에게 팁을 2리라 주고 나왔다.
왜 이집이 유명한지 알만했다.
주인 청년이 돈을 받으며 나의 얼굴 좌우로 자기 얼굴을 대며 인사한다.
그의 인사말은 대충 이런 뜻 같았다.
"멀리서 오신 어르신이 특별히 우리가게를 찾아 주어 감사합니다."
저녁을 먹고 방향을 잘잡아 호텔로 돌아왔다 버스표 사느라 ,식사하느라 상당히 멀리간 셈이다.
호텔서 다음날 아침 식사후에도 버스를 타러 가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았다.
지저분한 곳들보다 그래도 성채 부근이 마음에들어 다른 길로 걸어 본다.
강 가까이 작은 장난감 같은 시멘트 구조물이 보였다.
아기 무덤인줄 짐작이 가면서 지나는 노인에게 애들 무덤이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인다.
손으로 작은 아이를 표시하고 두손으로 잠자는 바디 랭귀지를 하면 의사 소통은 끝이다.
석교와 하맘을 만들어준 아기무덤
석교
시내에 많은 러시아식 건물
가방을 끌고 가느 나에게 어제 나를 안내해준( 중앙)의 청년이 어딜가냐고 한다.
세르비스(승객들을 버스 터미날 까지 데려다주는 서비스 버스)를 타러 표를 산 그 곳까지 간다고 하자 이곳에서 타면 된다고 갈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곳에 전화까지 해주었다
사무실 소파에 앉아서 쉬고 있자 그는 주변 가게 아는 분들이 지날 때마다 '여기 멀리 한국에서 여행오신 분이계시다"고 소릴 질러 인사를 시켰다.
어느 여자분은 인사를 하고 함께 사진을 찍자하고 재미난 시간을 보냈다.
친절한 그의 이름은 시난(Sinan Barlk)이다.
사무실.이내 세르비스가 나를 픽업해서 시내 외곽에 있는 버스 터미날(오토가르)에 데려다 주었다.
마침내 버스 터미날에 도착했다.
텅빈 을씨년스러운 터미날 빌딩은 언제 지었는지 썰렁하다. 매표소들은 비어 있다.
터키의 버스 터미날중 가장 황당하고 음침했다.
수십년전 대형 버스아닌 미니 버스 (돌무쉬) 승차장으로 설계된 프렛트홈 .
버스 기사와 차량에 탄 주인이 우릴 데려간 곳은 춥기까지 한 건물의 사무실.
차를 마시지 않았으면 너무 추운 곳이다.
아까 우리를 데려왔던 차량 주인이 갑자기 가야 한다며 우릴 다시 미니 버스에 태운다
아니 버스 터미날에서 버스를 타지 않으면 어딜가나 하면서 혹시 하는 생각이 맞았다.
큰 도로로 나가자 버스 한대가 곧 길에 섰다. 세르비스 버스 주인아저씨가 우리를 인계하고 고속버스 기사에게 돈을 건넸다.
버스표 대리점 수수료에 세르비스 버스 운행을 고려하면 적자는 나지 않는지 의구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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