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70년 2월을 대방동 해군 병원에서 보내고 있는 동안 병실 유리창 밖으로 따스한 햇살아래 하얀 작은 나비 한마리를 보았다.
2월 하순에 나비라니 .
내가 헛 것을 본것인가.
지금도 자신이 없다.
어쨋든 회복기에 접어든 나에게 길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돌아온 부대에선 하루 두번 나가고 들어오는 바다빛갈도 봄빛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갯펄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더이상 차가운 겨울바람은 아니었다.
병실에서 편지를 보냈는지 퇴원후 인천으로 그녀의 답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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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작은 방구석에서 들어 박혀서 *스탕달의 연애론 (남자의 허영심은 연애에 있어 너무 용이한 승리를 경멸한다.
남자는 그 이 여인이 우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또한 *코르네이유의 에밀리처럼 교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따위의 역설만 수두룩한 )을 탐독하고 있는 동안 창밖에선 세월이 마악 닳아가고 있던 모양입니다.
저 빗소린는 분명 春雨의 공허한 흩어짐이니.....
병상에서의 소식을 듣고 어쩐지 남일 같지 않게 마음 아펐습니다.
군대란 그렇지 않아도 심적으로 피곤한 곳인데 몸까지 아프데서야 어디 쓰겠습니까
서울에서 한 30여일 있다 돌아 왔는데 내 조그만 거실엔 먼지만 하얗게 쌓였을 뿐 기대했던 JB씨 편지가 없어 왠일인가 했어요
*병상 생활인줄 몰랐습니다.
무슈리,
그래도 당신은 젊음이 있으니까 곧 회복되리라 믿습니다.
언제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제게 데이트 신청 해주시면 쾌히 승락하겠습니다.
특별히 Miss Y의 환한 웃음이나 얘기하는 모습은 상당히 차밍한 편이라고 말씀도 했었고 하니 말입니다.
오늘은 3월 2일
내일 쯤은 학교에 나가서 수강신청을 하고 게시판을 서성이다 돌아올 예정으로 있어요
마음이 내키면 빈 3층 강의실이라도 올라가 3년 동안의 "나"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수 있겠지요
남학생들의 희롱에 자존심이 아파 창앞에 서서 울던 시절도 어제일.
그런 종류의 일이 슬픔일 수 있던 단순한 시절을 그리워 해보고 싶습니다.
무슈리,
내 생애의 최후의1년이 될 4학년
마음이 왠지 무겁고 외롭고 또 공허하기만 하답니다.
해서 일기장엔 늘 어이없는 변설-나는 존재하는가 누구의 사랑으로,누구의 믿음으로 누구의 갈망앞에서 ....
따위가 늘어가고 있기 마련이죠
사실 그래요.
졸업이나 취업 결혼 같은 건 결코 헛된 것일수 없으니 말입니다.
뭐랄까 가끔은 실제적으로 어떤 경우의 아픔에도 적용될수 있는 진통제 같은 인간이 필요해지거든요
모르겠어요 정말 왜 4학년이 되었으면서도 이해나 관용 따스함 같은 게 이렇도록 필요로 되는 것인지-
아마도 졸업후의 나에 대한 막연한 방황 이겠지요
내가 졸업장을 쥘 때 쯤 다시 캠퍼스로 돌아올 무슈리엔 대해선 어쩐지 새파란 싱싱함 같은 게 느껴지는데요
나는 늙었다는 생각으로 .후후
대학은 올해 상당한 실력자들이 많이 입학했습니다.
각과 거의 인원이 충당 되었고 졸업생의 취업 상태도 원만한 것 같습니다.
김 xx양이 TOP 이고 보면 여자가 그들의 뼈에서 창조되었다는 얘긴 거짓말이 아닌가 생각을 해요.
허지만 난 어떤 뛰어난 능력도 없고 해서 남자들이 갖는 특징-힘이라든가 아담스 애플등을 위대하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무슈리,
올 일년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가장 유용한 것인가 조언해 주지 않겠어요?
매일 그랜 캠밸의 Oh HappyDay 나 탐 존스의Sugar Sugar가 드높여 들리는 가운데서 심사숙고란 어렵거든요.
푸른 침상 위에서 듣는 빗소리는 어떤 느낌입니까?
환자 앞에선 센티해집니다.
나까지도 -그만 쓰겠습니다.
향기 그윽한 국화 한아름 그런걸 생각해요
또 해변에서 들리는 후조의 나래소리
바다로 부터 불어오는 바람
조개 껍질속에 빛나는 진주
모쪼록 그런 것만 생각해 가지고 회복이 빨리 되길 바랍니다.
밖엔 아직 빗소리.
지금은 1시 5분
이런 밤엔 *베를레느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의 詩
'거리에 비가 내리듯 내맘속에도 눈물 내린다.'를 자꾸 되뇌이며....
그는 아마도 슬픔을 키우는 비의 족속이었나 봅니다.
안녕히
1971.3.2
AK
*스땅달(1783.1.23-1842.3.23)
본명 마리 앙리 베리(Marie Henri Beyle)
19세기의 주요 소설가 .
프랑스 태생으로 라양느 신부의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17세에 나폴레온 군대에 입대 이탈리아 원정대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가 그동안 진정한 군인으로 지낸적은 한번도 없다.
1806년 러시아에도 원정 하였으며 나폴레옹 몰락후 이탈리 Milano에서 작가로 활동하였으녀 47세 때 7월 혁명후 이탈리아 주재 프랑스 영사가 되었다.
대표작으로 "적과 흑(1803)" "피름의 수도원(1839)"수도원이 있으며 170여개의 필명을 사용했다.
그의 작품은 진리적, 정치적 통찰력으로 유명하다
그는 평생 일정한 주소,직업 ,자식,애인도 없이 지낸 셈이고 그의 주요 작품은 그의 자서전이기도 했다.
*코르네이유(Pierre Corneille)
1604-1684
모리에르 ,라신느와 함게 프랑스 3대 고전 작가라 불리운다,
법률을 공부 18세에 변호사가 되었으나 파리에 가서 극작가가 되었다.
대표작 그 시드(Le Cid),오라스(Horace),시나(Cinna)등이 있다.
-코르네이유의 명언들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자유로 되지 않는다.
깊이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하기는 어렵다.
불을 끄는 방법이 서투르면 다시 타오른다.
거짓말을 한 그 순간부터 뛰어난 기억력이 필요하게 된다.
거짓말쟁이는 항상 맹세를 아끼지 않는다
*병상 생활
내가 71영 1월말 군에서 서울로 외출을 다녀온후 몸이 회복이 않되어 쇠약해짐 몸으로 서울에 나와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소아과 의사였던 숙모는 장티브스 같다며 해군 병원에 즉시연락했다
대방동 국군통합병원 부원장(중령)으로 있던 사촌형 짚차를 타고 그날로 대방동 해군 병원에 입원했다.
그 날밤 고열과 혼수 상태로 생과사의 기로를 헤매다 진성 장티브스로 판명되어 전국에서 올라온 해군및 해병대 환자 사이에서 육군 병장으로는 혼자 치료를 받았다.
밤새도록 나를 지키며 알콜로 마사지하여 열을 내리게해준 해군 위생병 (상병)에게 빚을 졌다.
3주 입원후 퇴원하며 부대에 돌아오던 날 나에겐 과거의 기억이 일부 지워진듯 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그 이후 내 인생은 사실 덤으로 산 셈이다.
*베를레느(Paul marie Verlaine)
1844.3.30-1896.1.8
19세기 문학의 상징주의 파
파리 대학 법학부 중퇴
낙엽과 같은 생애를 산 시인.
천재 시인인 소년 <랭보>를 알게 되자 처자를 버리고 영국 벨기에등으로 방랑한다.
부라셀에서 랭보를 권총으로 쏘아 2년간의 감옥살이를 한다.
그와는 동성 연애사이란 얘기가 있다.
파리의 퇴폐적 생활과 무료병원에 신세지는등 창녀의 도움으로 생계를 잇기도 했다.
마침내 정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떳다.
베를레느는 근대 유럽의 대시인으로 사랑에 관한 시가 많다.
대표작인 거리에 비가 내리듯은 <말없는 연가>에 수록되어 있다.
<내 마음에 눈물 내리네>
거리에 비가 내리듯
내 마음에 눈물 내리네
가슴 속에 스며드는
이 슬픔은 무엇일까?
대지에도 지붕에도 내리는
빗소리의 부드러움이여!
답답한 마음에
오, 비내리는 노랫소리!
울적한 이 마음에
까닭도 없이 눈물 내린다.
웬일인가! 원한도 없는데?
이 슬픔엔 까닭도 없네.
이건 진정 까닭 모르는
가장 괴로운 고통,
사랑도 없고 증오도 없는데
내 마음 한없이 괴로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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