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편지는 인사도 없이 시작했다.
"신밧드"
심장을 보관해준 사나이를 처치하기 위해 안개 자욱한 계곡을 헤쳐나가는 장면이 신비하고 멋진 영화였습니다.
그 영화에서 기억되는 것은 안개와 팔랑팔랑거리던 빨간 심장 뿐입니다.
왜 요즘은 안개가 짙은지 모르겠군요.
이른 아침 싸아한 수증기속을 숨가쁘게 뚫으며 꿈처럼 잠긴 캠퍼스를 오르는 요즘,
안개 짙은 초겨울의 기분은 나를 살고 싶게 만듭니다.
푸르산 불루(겨울 바다 빛갈을 닮은 )의 튜닉 코트 깃을 세우고 짐짓 저 유리 지바고의 연인이었던 "라라"의 고독 같은 걸 흉내내봅니다.
안개가
안개가 너무 너무 짙은 거예요.
슬픔 ,기쁨,곤혹,쾌감등이 될대로 믹스되어 나 소녀 아니 여자의 미소가 정말 묘하게 뒤바뀝니다
그러나 역시 나혼자만의 가슴은 깊게 젖어들기만.....
그 두꺼운 카키복,군화,군모
아주 먼 전선에서 돌아온 장병처럼 느껴지더군요(*휴가시 그 녀를 한번 만났나 보다)
조금은 초연해 보이고 많이 외로워 보이고 .
피상적으로 나는 늘 "헨리"의 모습을 상기하고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말입니다.
다시 한번 다실에서의 대화를 기억하며 논산 훈련소의 신병들-그 말없이 겁먹은 군상들을 생각해 봅니다
불안하다는 것 ,슬픔이나 고독 이질감 같은 것입니가?
그들이 가엾군요
여인을 품에 사랑스럽게 안을 수 있는 대단히 넓고도 높은 사나이라는 존재가 그 따위 불안에 뚝배기처럼 침묵하다니.....
그러나 나는 그들을 이해합니다.
요즈음 *망디아르그의 "오토바이 사랑"를 읽고 있어요
개아 (開芽)이전에 남편의 팔을 빠져나와 하얀 맨살위에 오터바이용 콤비네이션 지퍼를 발목에서 목까지 올린 레베카는 단지 그것만을 입고
오토바이를 몰아 프랑스 국경을 넘어 독일로 그녀의 연인을 만나러 갑니다.
삶에 충만하다고 말하면서 한쪽으론 늘 레베카를 외롭게 조작하는 망디아르그
몹시 불만 스럽습니다.
그도 현대인은 늘 외롭다고만을 얘기했지 왜 외로우며 어떻게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얘기를 못합니다.
하긴 누구도 얘기할 수 없는 것이긴 합니다만.....
인간의 영원한 물음 입니다.그것은
J씨
또 하나의 계절이 가는 군요.
이 계절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유산 -
낙엽을 바라보는 눈에 아직도 눈물이 맺힙니다.
매우 평정 할수 없는 감정이어서 -----
정말 사랑하고 싶어지는군요
부와 지성과 건강과 성실함이 있는 사람을.....
삶과 인생과 종교를 느끼게 하는 남자.
연애의 테두리를 벗어나 진정한 헌신과 구(求)함을 느끼게 하는 남자
나는 아마도 끝내 추구의 세계에서 헤매이고만 있을 겝니다
그건 참으로 끈질긴 서러움 입니다.
J씨
커피 룸바같은 경쾌한 리듬이 듣고 싶군요
그리고 한번쯤 흐느적 거려보고 싶은 너무 이공기가 삭막하고 엉클어졌지 않습니까
이 편지를 끝맺고 살며시 집을 빠져나가 XX고속버스 터미날에 가봐야겠습니다.
내리고 타는 사람들을 한시간만 바라보다가 돌아올 작정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앞에 (표면적으로 승리자 같은 )내가 비겁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리고 책을 읽죠.무지하게 광적으로.
습관대로 소외감이나 불합리를 타개 할 수 있다면 그건 정말 최선의 일입니다.
거기 내무반 스토브 성능은 어떻습니까
스토브가 붉어 있기를 바라고 주위의 인물들이 인정적이고 도덕적이고 좌우간 적(的)자를 많이 붙일 수 있는 사람들 이길 빕니다.
그래서 착한 *이병장께서 역겨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단지 표현입니다 이건.
나는 아직도 나혼자 여기 있으니까
안녕히 계십시요.
1970.11.22
AK
*앙드레 피에르 드 망디아르그(1909.3.14-1991.12.13)
프랑스 문학가(시인,소설가)
파리 태생으로 수집가인 P.베르나르의 손자로 유명가문 출신이다.
고고학을 배웠으며 학업을 중단하고 독서 ,여행(유럽및 近東)및 창작에 열중했다.
초현실주의의 강한 영향을 받아 에로티즘과 잔인성이 가미된 환상주의적 작품을 쓴 작가며 시인이다.
여기서 말한 "오토바이 사랑"은 1963년 작품이다.
영화로는 아프리카 여왕,전쟁과 평화,페니등의 잭 카디프가 감독 하였으며 아랑드롱,Marianne Faithfull이 출연했다.
영화 Title은 "The Girl on a Motercycle"(한국:그대품에 다시 한번) .1968년 작품이다.
*대학 재학중 입대한 사병에 대한 부가 평점과 사병 필기 시험 결과로 일찍 병장이 되었다.
당시 고졸 이하의 사병들은 대부분 상병으로 전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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