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사는 이야기

어머니의 졸업장과 졸업 앨범

Jay.B.Lee 2013. 6. 24. 21:25

 

 

 

아버님이 돌아가신지33년,어머님이 돌아가신지 15년이 지났다.

 남은 몇가지 유품은 형제들이 부모님을 기억하기 위해 서로 나누어 가졌다.

아버님은 유품에 비해  어머님의 유품은 생각보다 많았다.

옛날 유행하던 일본식 한반도 무궁화 ,  모란 자수며 시집와 할아버님이 서울 화신 백화점에서 선물로 사주었다는 Singer 미싱이며.

혼자 사시던  어머님이 연로하셔 서울 우리집으로 오시며 살림 살이를 모두 버리며 미싱은 이웃 할머니에게 주고 오셨다.

서울에 오신후 미싱에 너무 많은 추억이 남아 아쉬워하셔서  일주일후 청주에 내려가 이웃할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찾아왔다.

서울로 가져오신 몇가지어머님 물건중엔 시집올때 가져온 함상자와 아버님이 서울을 왔다갔다 하며 사용하셨던 일정시대 가방도 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후 함상자를 정리하다 바닥에 깔렸던 어머님의 졸업장과 앨범,외증조부(옛날 고보를 나오신 어머님의 숙부) 서신들을 발견했다

처음 본 어머님의 유품이다.

어머님은1919년 천안 병천 아오내 장터에서 유관순 열사가 만세를 부르던 해,장터에서 멀지않은 가전리(잿밭이라 불렀다)에서 다섯 여형제중 둘째딸로 태어났다.

만 열여섯 되던해 중매로 세살 위인 아버지에게 시집을 가셨다.

목천 보통학교를 졸업 앨범과 졸업장이다.

대정(大正:일본 요시히토가 천왕으로 즉위한 다이쇼시대를 말한다)8년,1919년생이시다.

졸업 앨범 소화(昭和)7년은 서기 1932년에 해당된다.

 

 

교장과 교직원

졸업생 네명의 여학생중 제일 오른쪽이 어머니다.

추운 겨울 여학생들의 흰 솜 저고리의 팔이 몹시 짧은 것이 눈에 띈다.

어머니는 흰 솜저고리 대신 검정 스웨타를 입으셨다.

48명의 졸업생중 여학생은 단 4명뿐으로 남존 여비 사상이 팽배했던 시대다.

여자는 가르켜 무엇하냐 할 시절에  어머님이 최소한의 교육을 받은 것은 뵌적없는 외할아버지께서  그만큼 깨이셨던거다.

전교생 아침 조회 사진

저 일본식 교육의 잔재는 내가 대학에 진학하기까지 계속 되었다.

추우나 더우나 교장의 훈시는 계속 되었고 담임 선생님이 전달해주어도 될 사항조차 조회를 통해 이루어지기 일 수 였다.

요즈음 학교에선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한가지 긍적적인면을 찾으라면  인내심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북미에 사는 동안 저런 조회는 본적이 없어 조회의 교육적 효과에 의문을 갖는다.

학생들의 실습시간.

이곳이 어디인지 언제 병천을 찾아가  알아보고 싶다.

현재 목촌 초등학교 위치는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서리 1번지다.

1913년4월1일 설립 인가를 받아 6월 두학급으로 개학 개학 100주년 을 맞는다.

그 시절 모두 그랬지만  그 먼거리를 어머니도 다른 아이들처럼 걸어 다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