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부인을 살리고 세상을 떠난 친구

Jay.B.Lee 2011. 11. 28. 21:15

오전 일찍 전화가 왔다.

중,고등학교 동창으로 S 전자에서 퇴직후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동창 U다.

중학교 1학년때  같은 반 인연도 있지만 간혹 학교 홈페이지에 실린 나의 해외 여행기를 읽고 몇번 전화를 해준적이 있던 친구다.

의례적 인사뒤에 슬픈 소식을 전한다며 친구 K가  지병으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아, 그가 죽다니......

나에겐 이제 죽음이 일상이라도  특별히 젊은 날 그와 함께 했던 시간과 추억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왜 이제서야 연락했는지. 

 진작 연락을 주었으면 임종전에 한번이라도 보았으면 좋을 걸 그랬다.

 친구는 그렇지 않아도 연락할까 했더니 대답을 않더라고 했다.

20여년전 해외에 나가있는  동안 그의 딸이 15세의 나이로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고 세상을 등진채 살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마침 우연히 U를 만나 그의 소식을 묻자 전화 번화 하나를 주었다.

연결된 전화 통화에 역마살이 끼었다며 이곳 저곳으로 돌아다닌다는 친구다.

얼굴 한번 보자고 만나기로 한날 아침 전화로  못만나겠다고 하며 약속 날짜 변경없이 그는 전화를 끊었다.

 동창회,장례식장.결혼식장 어디서고 나타나지 않는 그가  궁금하던차 U는 그가 강원도로 내려 갔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친구의 부인과 통화가 되자 부인은 신혼집을 아내와 찾아갔던 나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부인은 우리나라  명문 K 여고를 나온 재원으로 약대를 졸업했다.

부인에게  내 전화 번호를 남겼으나  전화가 없었고 나도  그후론 전화를 하지 않았다.

세상을 등지고 사는 친구-그대로 두는 것이  편할 거라는 생각에서다.

 

친구 K는 S대 약학과를 나왔고 특히 그가 휴학했던 해 겨울엔 나와 자주 어울려 다녔다.

방학중 그의 집에서 바둑을 자주두었는데  머리가 몹시 좋은 그 친구는 바둑엔 약해 나에게 자주 패하고 말았다

늘 막상 막하의 접전에서 자주 지다보니 친구는 제성질에 못이겨 바둑판을 몇번이나 엎곤 했다.

그 때 쯤이면 친구의 어머님이 점심상을 들여 오곤 해서 마음을 진정한 그와 또다시 대국에 들어갔다.

내가 군시절을 보내고 있는 동안 그는 하숙을 했고 군에서 외출증을 끊어 서울에 나올때면 몇번 그의 하숙집에서 자곤 했다.

군 면제를 받은 친구는 이미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에 일하고 있었고 그는 실험실 선배에게서  배웠다는 "백차"를 타주곤 했다.

뜨거운 물에 비타민 C 가루와 카페인 원료를 넣은 차 -말 그대로  맑은 물이어서 백차라고 했다.

그는 나에게 회사의 불만과 연애담을 얘기해주곤 했는데 그 연애담의 주인공이 현재의 부인이다.

그는 회사를 나와 선배가 하는 작은 제약회사에서 잠시 일하다 국가 정보 기관에 일하게 되고 그 때  딸을 잃었다.

몸이 아팠다는 딸은 학교를 3분의 일만 출석일수를 채우면서도 전교 수석을 놓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딸이 죽자  그는 연금 수혜 자격이 되는 최소 기간만 근무하고 직장을 퇴직하고 말았다.

서서히 우울증에 시달리기시작한  그는 술을 많이 마시며  몸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감정 기복은 접점 심해지고 체중은 80여키로에 육박했다고 했다.

작은 몸매만 기억하는 나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간경화가 오기시작 하여  복수가 차기 시작해서 의학적 상식이 있음에도 불구 그는 병원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귀여운 손자를 시켜 병원에 가자해도 거부하던 그가 우여곡절 끝에  병원에  끌려와  13리터의 복수를 뽑았다한다.

병원에 와서도 식사도 제멋대로 하며  삶에 대한 애착을 끊었다 한다.

친구인 U가 병실에 와도 한마디 말도 않았다는 친구.

4월에 입원한 동안  여름 장마가 왔고 지난 여름 봉사하러 온  인하 대학생들이 산사태로 불행한 사고를 당하던 날 ,그 부근 그의 약국집도 흔적없이 사라졌다 했다.

그가 입원하고 있는  동안 간호하던 부인도 서울에 함께 있어 사고를 면한 것이다.

그는 자신은 죽어가며  부인을 살렸다.

하나님은 가끔 엉뚱하게 역사하신다.

만약 그가 건강히 지냈더라면 부부는 그곳에 남아 있었을 것이고  사고는  피할 수 없었으리라.

문상객으로 몇명밖에 없는 아버지의 옛친구들 사이에 와서 아들 부부가 인사를 하고 간다. 

두아이의 아버지라고 믿기어렵게 동안으로 잘생긴 그의 아들 얼굴에서  젊은 날의 친구 모습을 본다. 

아내와 아들 하나 손자 둘을  남기고  떠난 그 .

화장하여 딸아이의 유골을 뿌린 그곳에 자기도 뿌려달라던 것이 마지막 유언이었다고 한다.

향년 64세. 

친구여 ,편히 쉬게 .

하늘 나라에선 딸을 꼭 만나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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