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그리스,터키를 거쳐 그로지아,아르메니아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여행길에 만나며 얘기하고 인사를 나누었던 많은 사람들.
여행을 마치고 나면 사진을 정리하여 이메일로 사진을 보내주기도 하고 나머지는 사진을 인화해 직접 보내주곤 했다.
사진을 보며 그네들과 만났던 순간을 회상하며 그네들의 친절과 미소를 다시떠 올린다.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베풀어준 친절이 더욱 고마웠고, 외로운 여행길에 말벗이 되준 사람들이다.
호기심에 외국인이라고 관심을 보이며 몇마디 배운 영어를 사용하고자 노력하던 어린 친구들,
그리고 귀여운 산골의 아이들.
그네들의 주소를 받을 때는 꼭 보내주겠다는 약속이기도 했다.
빈말이라면 나자신 용서가 안되는 일이고 한국인의 얼굴에 먹칠하는 일이기도 하다.
(빈말로 밥이나 먹자고 하는 말도 싫어한다)
항공 우편 봉투를 사서 간단한 안부 편지를 동봉하여 사진을 넣었다.
여행후 사진을 인화하여 부칠 때면 적지 않은 돈이 또 들어간다.
이것도 여행의 일부거니 즐거운 마음으로 아파트 단지내 우체국으로 향한다 .
아르메니아는 문제가 없는데 그루지아와는 우리나라와 우편 제도가 형성되어 있지 않아 편지를 보낼수 없다는 직원의 대답이다.
과거 러시아가 우편 중계를 하다가 중단한후 실제 우편물이 갈 수가 없다는 얘기다.
단지 이용할 수 있는 것 은 특송화물뿐이다.
우리나라와 교역량이 적지 않은 그루지아와 우편제도가 없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중앙우체국을 통해 찾고 찾아 체신청 국제 협력 담당과 연결되었다.
체신청 담당부서 직원의 구차한 변명을 뒤로 하며 노력해보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일년이내 해결되면 감사할 일이다.
가까운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루지아로 당장 달려가 해결을 해 볼일이다.
그루지아 보다 작은 나라, 아르메니아에도 편지가 잘 전해지고 있지 않은가.
작년 년말 그루지아 거주 회원(그루지아에서 만난분이다)이 귀국하여 모인 카페 모임에서 우편요금을 지불하며 간곡히 부탁했던 편지다.
2월 중순에 떠난 이분은 동계 올림픽 예정지인 러시아 "소치"에 들렸다가 그루지아 수도 "티빌리시"로 돌아갔다.
그리고 편지를 부쳤다는 소식을 받았다.
그리고 2주후 집에 우편함에 도착한 한뭉텅이의 편지.
내가 보낸 8통중 4통이다.
한국에서 러시아 소치로 , 그루지아를 거쳐 다시 서울로 .
우편 제도도 없는데 어떻게 돌아 온 것일까?
영문주소를 현지에서 친절하게 그루지아어로 주소를 병기까지 해주었는데 왜 돌아 왔을까.
추측한 결과 그루지아 우체국 직원의 <무지>에서 기인한 것으로 본다.
항공 봉투에다 한국 주소가 있어 그루지아 국내에서 부친 것인줄 모르고 그루지아에서 한국으로 갈것으로 착각, 빨간 볼펜으로 "TO"로 표시하여 집까지 배달 되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참 먼길을 돌고 돌아 다시 내손에 왔다.
그루지아의 행정능력을 엿보게 되는 장면이다.
학교 어린이들,결혼 신랑신부 사진,나리칼라 요새에서 만난 여학생들 -그네들의 사진은 잘 전해졌을까.
그것만이라도 정말 잘 배달 되었으면 하고 믿고 싶다.
그루지아가는 인편을 구해 사진을 다시 보낼 방편을 강구해야겠다.
시작하면 두부라도 잘라야지.
그리고 체신청에 전화하여 업무 추진이 되어가고 있는지 국민의 한사람으로 지켜볼 생각이다.
이것은 체신청 이익의 차원문제가 아닌 국가 위상의 문제다.
현재도 편지가 갈수 없는 나라가 존재한 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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