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관은 현재 임시 닫고 있는 중이다
분청 사기 상감 ,인화무늬둥근 고리항아리
조선 1412-1424경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 정소 공주 묘 출토
분청 사기 상감 연곷 무늬 뚜껑
조선 1438이전
경상 북도 성주군 원항면 인촌리 출토
세조의 태실에서 나온 뚜껑
방학중이어서 자녀들을 데리고 나온 엄마들이 많다.
모니터로 도기 제작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요즘은 체험 학습을 중요히 여겨 만질수 있는 전시품을 전시한 곳들이 많아졌다.
한국의 교육열!
분청 사기 상감 ,인화무늬 대접
조선 15세기 전반
분청 사기에 새겨진 관청 명칭
분청 사기에 새겨진 생산지 .
"원산지를 새겨 넣어 관청의 그릇을 성의 없이 만드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릇을 빼돌려 사용하지 못하게 증거물로 만든 이유도 있지 않을까.
백자병
조선 15-16세기 관요에서 만든 최고급 백자.
"그릇의 부드러운 곡선미와 풍만한 부피감이 일품이다"
백자 항아리
조선 15-16세기
경기도 광주 관요에서 만든 최고급 백자.
백자 상감 나무 ,연꽃 무늬 병
조선 15세기
상감 기법으로 새긴후 적갈색 흙을 채웠다
분청 자기상감 인화구름 ,용무늬 항아리
조선 15세기 전반
백자 항아리
조선 15-16세기
순백색대형 항아리로 "광주 관요에서 만든 최고급 백자. 왕실 행사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
분청 사기 철화 넝쿨 무늬 항아리
조선 15세기 후반-16세기 전반
"공주 계룡산 학봉리 철화 분청 사기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작"
백자 청화 새 ,대나무 ,무늬 항아리
조선 15세기 후반 -16세기 전반
"처음 중국 명나라 청화 백자의 영향이 컸지만 차츰 조선의 정서와 미감이 담긴 청화 백자로 발전했다.
백자 철화 매화,대나무 무늬 항아리
조선 16세기-17세기전반.
왕실용 철화 백자로 추정.
분청 사기철화 연꽃 물고기 무늬 병
조선 15세기 후반 -16세기 전반
"물고기는 쏘가리로 추정된다"
분청 사기 철화 모란 무늬 장군과 병
조선 15세기 후반 -16세기 전반
분청사기 박지,철새 모란 무늬 자라병
조선 15세기 후반
"자라병은 조선 시대 에 생활 용기로 사용했다. 흑백의 대조가 멋진 작품이다."
분청사기 박지 모란 넝쿨 무늬 항아리
조선 15세기 후반
백자 철화구름 ,용무늬 항아리
조선 17세기
"왕실 의례때 술을 담는 '주준'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
백자 철화 포도 ,원숭이 무늬 항아리
백자 청화 구름 ,대나무 무늬 항아리
조선 17세기
"17세기에는 둥근 형태의 항아리 제작이 늘어났다"
백자 철화 풀꽃 무늬 병
조선 17세기
"지방 백자 가마에서 제작"
백자 철화 구름 영무늬 장군
백자 철화 구름 용무늬 항아리
조선 17세기
"의례용 백자로 경기도 광주 곤요인근 가마에서 철화 백자 생산"
백자 청화 장생 무늬 접시
조선 19세기
백자 주자
조선 19세기
백자 동채 삼층 합
조선 19세기
"중국 단색유 자기 영향 받음.가운데는 병으로 위아래는 잔으로 구성"
백자 양가 청채 대나무 모양 병
조선 19세기
나무 ,꽃,열매무늬 청화 백자
"나무 ,꽃 ,열매는 조선 백자의 기본 장식 무늬다.매화,대나무,포도는 조선 전시기에 걸쳐 사랑 받는 소재였다.
18세기에는 당대 문인들이 애호했던 난초,파초,국화,패랭이 무늬등이 유행해 그 종류가 더욱 다채로워져 소나무 ,밤나무 등을 비롯해 모란 ,철쭉 ,불수감,복숭아,석류등이 새롭게 등장했다"
능 화창 무늬와 직물 무늬 청화 백자
"19세기 청화 백자에 보이는 능화창무늬는 그릇 표면을 여러칸으로 나누고 그안에 능화창을 배치한후 이국적인 꽃가지와직물 무늬를 그려넣은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수출용 청화 백자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운현궁에서 사용한 청화 백자.
"운현 또는 운현궁의 글자(바닥)가 있는 청화 백자는 1864이후 제작 된 것이다."
왕실용 영비 무늬 청화 백자(오른 쪽)
그릇 바닥에 '진', '별진', '대진'일나 글씨가 왕실용임을 알수 있다"
일상 생활속 백자들.
일상 생활속 백자들 .
ㅣ일상 생활속 백자.
일상 생활속 백자
청자보다 분청백자가 더 정겹다
그림이상의 멋이 있다.
전시품들을 보며 자기 하나하나에 빠지다 보면 시간은 훌쩍간다.
선진 기법은 중국이었을 지라도 우리 것으로 만들어간 조상들의 지혜가 놀랍다.
모두 왕실과 고위 관리급에서 사용한 자기들이다.
전쟁과 도굴과 무지가 동반된 해외 반출 속에서 이만큼 남아있는 것도 다행이라 여겨진다.
끈질기게 살아온\남은 우리민족처럼.
과거의 문화의 바탕이 있었기에 현재 대한 민국이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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