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좋은 생각

인간 반성

Jay.B.Lee 2021. 5. 25. 06:52

 

인간 반성- 이외수가 쓴 글 한 소절 앞에 붙은 소제목이다.

 

"습관적으로 남의 의견이나 주장을 별다른 타당성 없이 일단 부정부터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남의 의견이나 충언 따위는 경청하려들지 않는 악습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 자존심까지 조낸

강해서 절대로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특질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이외수

                                         저서 "하악하악"에서 (해냄 출판사)

 

이외수는 작품을 가까이하기가 껄끄러운 작가다.

그의 소설 하나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순전한 편견임을 안다

그냥 이유 없이 싫었을 뿐 그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 하여 비난할 생각은 없다

최근 2008년 간행된 이외수의 책"하악하악"을 대한 건 우연이다

왜 책 제목을 '하악하악'이라 했을까.

사는 게 힘든 세상이라 헉헉 거리기보다 하악하악이 애처롭게 보였을까

 

각설하고 책에선 시니컬하게  예리한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듯 그의 어록들에선 풍자와 페이소스가 묻어난다.

신기하게도 이외수가 언급한 부류의 정의 속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인간이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이외수도 그런 인간을 보았기에 그렇게 묘사하지 않았을까.

 

고교 동창이 있다.

그와는 초등학교부터 중,고 동창이다.

단지 개인적으로 친하지 않아  사실 말을 나눈 적이 많지 않다

단지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친근감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는 초등학교 동창회에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다.

고교 동창 모임-야유회나 결혼식 등에서 어쩌다 그의 근처에 앉게 된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동창들의 얘기가 나온 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투는 "그게 아니고..." 다

남의 얘기를  듣고 한다는 얘기가 어쩌면 한결같이 반사적으로 "그게 아니고....."로 시작되는지.

한두 번도 아니어서 속으로 그의 별명을 "그게 아니고"로 지어주면 딱 맞겠다 여기며 웃었다.

사람 죽을 일도 아니고  술 한잔한 자리에서 그의 이런 말투는 동창들의 아량 속에서 그냥 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인사동에서 큰 식당을 하는 친구에게서 무료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발 넓은 사장의 역량을 보는 듯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입구에선  숙취음료 국내 1위("여명 808")를 점하고 있는 회사 대표인  고교 선배와  직원들이 숙취해소제  한 상자와 다른 한 상자를 선물로 주고 있었다

회사에서 파견 나와 홍보차  나눠주는  직원에게 숙취 해소제외 다른 선물은  뭐냐고 물어보았다.

직원은 새로 회사에서 개발한 술로 시제품이라 아직 시중에 나와있지 않다 했다.

시끌 버끌 한 저녁 식사자리엔 먹음직스러운 수육과 막걸리, 소주 ,선배 회사에서  만든 캔에든 술들이 넉넉히  놓였다.

새로 개발했다는 술에는 약한 한약재 맛이 났다.

그때 문제의 동창이 뒤늦게 나타났다.

마침 그는 빈자리가 남은 내 옆에 앉게 되었다.

그도 처음 보는 디자인 캔이 궁금한지 나에게 뭐냐고 물었다.

" 숙취 해소제를  만든 선배가 새로 개발한 술 시제품이라 아직 시중에 나가지 않았다한다"고 회사 직원의 말을 그대로 

옮겼다.

"에, 그럴 리가 있나? "

.......

'미친놈'

남의 말을 현장에서 즉시 부정하는 대단한 순발력이었다

 이건 "그게 아니고....."를  뛰어넘는 새로운 반응이었다

 

그 후로 그는 나에게 투명인간이 되었다. 

살다 보면 별의별 인간들을 접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카테고리에 구겨 넣어야 할  인간이었다.

어떻게 살아가면서 "겸손과 경우"란 단어를 철저히 잊고 사는지.

이외수의 그런 인간을 묘사한 글을 보면 그역시 기가 막힌 인물을 만났던 모양이다.

코로나가 오래 지속되면서  만남이 단절된 이상  장례식장에서조차 동창들 얼굴 보기 힘들다.

 AZ백신 예방주사 맞기 직전이다.

화이자를 맞았으면 싶지만 현재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세상이다.

우리 살아서  만날 수  있다면 '미친놈' 얼굴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그래도 반갑다고 인사를 해야겠다.

코로나를 잘 견디어 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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