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1915-2000)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란 네 꽃잎이 펴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전북 고창 선운사에 가면 기념품 가게에선 복분자와 서정주 시인의 시구가 적힌 차받침 천을 팔았다.
서정주 시인의 고향이 고창이다.
"시와 함께 걷는 마음"을 쓴 이방주 씨는 책에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를 빠드리지 않고 실었다.
지인의 결혼 40주년 파티에 지인은 아내에게 어려운 결혼 후 함께 고생하며 인내해준 아내의 내조에 감사하는 뜻으로
이 이 시를 암송하여 헌정하였다고 했다.
대부분 자기 나름대로 고통을 통해 성취된 결실에 대해 이 시를 인용하고 싶어 한다.
대부분 아는 시이고 의미이나 해당 당사자들에게는 언제나 새롭게 다가간다
고교 때 친구가 있었다,
전교 Top이던 친구는 예상과 달리 S 대 상대를 낙방하고 말았다.
친구보다 성적이 못했던 친구들도 합격했는데 그 자신이 무척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서울로 올라가 재수학원을 거쳐 다음 해 무난히 합격했고 직장에 근무하는 동안 해외 유학 기회가 주어졌고
가족들을 데리고 유학의 길을 떠났다.
학교를 졸업 후 30대 후반에 부인과 자녀들을 동반하여 늦게 시작한 공부한 탓으로 힘이 들었다 했다.
한국에 돌아와 대학에 부교수로 재직 중 췌장암으로 요절하고 만다.
몸이 약했던 그가 공부하느라 과로에 기인한 것으로 믿고 싶다.
그는 대학 합격 후 내게 쓴 편지에 "국화 옆에서"를 여러 번 인용했고 술을 마실 때도 취하면 시를 암송하곤 했다.
낙방이란 트라우마가 그에게 심각한 쇼크로 남아 재수 후 합격은 했지만 자존심에 깊은 생채기로 남았던 거다.
살아오며 "국화 옆에서 "를 인용하는 많은 이들을 보며 그들이 처했던 상황을 깊이 돌아보면 시는 항상 새롭게 다가온다.
한국의 명시 선정에 빠진 적 없는 "국화 옆에서"는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이다.
그리고 사족으로 "국화 옆에서"의 국화꽃 색깔은 노란색일 거라는 게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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