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초등학교 여자동창 친구이야기

Jay.B.Lee 2014. 12. 9. 07:30

 

C시 고속버스 터미날의 작은 커피샵의 벽 그림-작은 왕자

 

 

서울 살던 초등학교 여자 동창이 고향 C시로  내려간지가  3,4년 되었다.

내려간 뒤에도 서울로 초등학교 모임에 올라오더니 이젠 나이가 들어선지 오기가 힘들다한다.

서너달전 전화가 왔다.

전화하고 꼭 내려오라고.

지난번 내몸 건강에 이상이 온후 그녀의 전화가 생각 났다.

한번 이해가 가기전에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작은 키에 재치가 넘쳐보이는 그녀는 얘기를 재미있게 잘한다.

그녀가 있으면 분위기가 활력이 있다.

말이 잘통하는 여자 동창이며 친구다.

춤을 잘추는 그녀는 젊은이들 틈에서 지금도 춤을 배울 정도로 활달하다

약속 1순위로 잡고 나를 기다린다는 카톡 회신이 왔다.

내딸의 중매를 서줄정도로 관심을 보여준 여자 동창이다.

남자가 너무 착해 마음에 들지 않는다던 딸.

비록 성사는 이루어지지않았으나 그녀의 마음쓰임이 고마웠다.

그래서 그녀의 아들 결혼식엔 1등으로 도착해 그녀와 그녀의 남편에게 축하해 주었다. 

안사람도 그녀를 만난적이 있어 잘 기억한다.

두 아들을 잘기르고 대학 졸업후 경제적 부담을 알면서  모두 미국에 보내 공부 시킨뒤 두아들은 H 사와 L전자에서 근무한다 

자기가 잘한 것중 제일로 꼽고 싶은 것이라했다. 

7년전 쓰러진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그녀는 모든게 아들,손자보다 남편위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형제간에 우애가 대단하여 돌아가신 오빠를 제외하고 서울의 오빠를 비롯 한달에 한두번 4형제 부부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아니면  여행을 간다.

식사는 3형제가 남아 있는 고향에서 한다고 한다.

그녀 남편을 대학 병원 재활센터에 태워다 준후 내 도착시간에 맞추어 고속버스 터미날에 나왔다.

그녀가 안내한 큰 한우 고깃집엔  점심 시간인데도  손님이 한사람도 없다.

대낮에 숯불에 고기 구어 먹을 정도로 한가한 사람이 없나보다.

저녁시간에 자리가 없다는데.

단골로 형제들이  자주 식사를 한다는 집

부모님이 5남매를 서울에 전부 유학시켰고 동네 부잣집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여동생은 교통도 불편한 시절 6년동간 서울로 주말마다 레슨을 받으러 다녔고  음대를 나온후 음대 교수가 된다.

 대학을 가고 싶지 않았는데 대학 졸업장 없이  시집이나 제대로 가겠냐는 어머니말에 할 수 없이 대학을 갔다고 한다.

음악 공부하는 동생에게 비해 상대적으로 교육비가  들지않았다는  자기는 어머니에게서 서울서 대학 다니는 동안 옷과 가방으로 보상받았다는 그녀의 청춘시절이다.

오늘 나를 만나면서도 최신 유행처럼 보이는 푸른빛이 감도는 은은한 회색 밍크 자켓과 털모자를 걸쳤다.

소형차 가격이란다.

 사법  고시 패스했다는 S 법대의  오빠 대학친구.

자기를 마음에 두었던 술취한 오빠 친구 입에서 '네가 E여대만 나왔어도 '하는 말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는 그녀의 옛 얘기를 단편 소설처럼 들었다.

선본 자리에서 아들보다 시어머니가 퍽 마음에 들어해 결국 다른 남자와 결혼했단 그녀.

오후 그녀의 남편을 병원에서 픽업하기 위해 우린 3시반에 커피삽에서 일어나야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만남을 감사했고 건강히 지내라는 메세지를 카톡으로 보냈다.

그녀에게서 회신이 왔다.

대화가 즐거웠고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일년에 한두번 모이고 결혼식에 서 만나게 되는 초등학교 동창들.

이런 저런 사유로 여자동창들은 나오지 않게 되고 그녀가 지방에 내려간후  그녀의 친한 여자 동창도 나오지 않는다.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여자들이 빠지면 더이상 초등학교 모임의 의미가 없다라는 그녀의 남편말이라는데 실감이 난다.

남녀 합반이 없었던 초등학교 시절.

어린 시절의 추억을 조금씩 주어모아 공유한 유대감으로 유지되던 초등학교 모임이었다.

 그녀가 빠진 초등학교 모임은 그렇지 않아도 이젠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