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명리학 박사가 된 동창 이야기

Jay.B.Lee 2014. 12. 30. 06:07

 

 

일요일 저녁 늦은 시간 호텔에서 친구 아들의 결혼식이 있었다

결혼식 주례는 광주 보병학교 출신으로 군 장성으로 은퇴후  박사학위를 받은 친구다.

향토 시인이기도 한 친구는 신랑신부를 부모앞에 세우고 그동안 키워준 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길게 늘어놓았다.

덩치에 비해 의외로 마음이 여린 친구는  뒤늦게 개혼을 시키며  너무 감격스러웠나 아들과 며느리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눈물을 유도한 주례는 딸 혼인 시키며 우는 부모는 봤어도 아들 혼사에 우는 아버지는 처음 봤다며 핀잔을 준다.

 신랑 아버지의 눈물로 결혼식은 더 순수하고 아름답게 끝이났다.

친구는 동창들을 의외로 적게 초대하였다.

예식이 끝나고 오랫만에 만난  다른 군출신 친구와 무교동에 사무실을 둔  친구의 안내로 무교동으로 자릴 옮겼다.

늦게 웃는 자가 크게 웃는다고 했던가.

얼굴을 볼 수없을 만큼 바쁘게 활동하는 동창-지금이 그의 황금시대다.

그가 다른 친구자녀의 결혼주례를 맡아  사회자로 부터  "의학박사"로 소개받을 때 동창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냐하면 그는 의과 대학을 가본적이 없는 사람이다.

명리학 박사.

예방의학이란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모든 사물에 "결"이 있다고 했다.

오늘 초대 받은  친구들도 혼주인 친구의 결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란거다.

결혼 식장에서 양식을 먹은 뒤라 얼큰한 부대찌개 하나를 시켜 소주를  놓고 셋이 앉았다.

간헐적으로  들리던 그의 얘기를 자신의 입을 통해 듣는다.

고교 3학년 시절 그는 바로 옆반이었다

그는 충청도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세군데 다니는 동안 전교 수석을 놓지지 않았다.

시골서 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후 우리가 다닌 도청소재지에 있는 명문고에 합격했으나 학교 입학금이 없어 입학을 포기했다고 한다.

담임 선생에게 끌려 마감기일이 며칠 지나 고교 서무실에 왔을 땐 마감된 빨간줄 아래 입학 대기자가 15명(당시 '보결생'이라고 불렀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수석졸업이란 말에 두말없이 입학이 되었다.

중학교 담임 선생님이 대신 내어준 입학금.

그는 교교시절 친구들의 신세를 지기 일 수 였고 고교 2학년 때는 교과서가  없어 친구들의 것을 빌려보며 간신히 마쳤다.

3학년 수업일 수를 못채워 졸업을  할 수없을 뻔하다가 수학여행일수와 여러가지 날자를 감안하여 겨우 수업일 수로 인정 받았다.

산너머 산으로 밀린 학비가 문제였다.

 마침 고향 군내에서 장학생 한명을 선발 하는데 그가 선정되었다.

  장학금으로 받은 작은 금액에  부족한 분은 고교 3학년  담임 선생이 납부하여  겨우 졸업장을 받았다.

가난한 그에게 돌파구란 육군 사관학교에 시험을 쳐 군인이 되는 거였다. 

그가 육사를 낙방하게 된 배경에는 연좌제에 기인했고 그는 좌절했다.

삼촌이 월북했다는 사실이다.

광주 보병학교 마져 같은 이유로 떨어지고 그는 절망했다.

집에 쑤셔박혀 있던 그는 친구에게 끌려가  막 창설된 제 3사관 학교(2년제)에 함께 시험을 치고 당시 허술한 제도로 연좌제 관련없이  합격했다.

장교에 임관되어  월남에 파견된 그는  남의 나라 전쟁이라며  작전중에도 대충 요령을 피던 시절 , 소대원을 끌고  원칙대로 전투에 임했고 혁혁한 공로를 인정받아 두개의 무공 훈장을 받았다.

귀국후 사단내 브리핑을 전담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 받지만 그에게 넘지 못할 장벽이 존재했다.

중령으로만 12년을  복무후 그는 예편한다.

두개의 훈장중 높은 훈장에 주어지는 월 25만원의 수당과  2년을 가산한  28년을 복무기간으로  인정받아 연금을 받는다

대위때부터 논어와 맹자를 강의했다는 그는 군시절부터 끊임 없이 공부하여 대학에 입학하고  마침내 박사가 된다.

현재는 중국 고서들을 연구하며 공부하며 번역한다고 한다.

역술로 간주되기 쉬운 학문을 "생활명리"란 이름 아래 학부에서도 강의하고 400여명의 스님들에게도 강의 했다고 한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강의하며 대상은 교수들까지 있다.

명리학에 관하여 많은 연구를 한사람들이 막다른 길에서 자기를 찾아올 때 18년의 학문적  연구가 보람있다고 한다.

단 한사람만이라도 자기를 알아 준다면 행복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보면 극히 비정상적인 길을 걸었다 했다.

비정상적인 학창시절,비정상적인 군대 생활, 비 정상적인 학문의 길 .

스스로 택한 것보다 떠밀려 지금까지 살아온 그의 삶속에서 학비없이 ,책도 없이 굶주리며 살던 학창 시절은 차라리  한편의 추억이다.

친구는 지금도 돈을 번다며 술값을 내고 늦은 저녁 목탁을 두드리며 음식점에 찾아온 비구니에게도  시주를 한다. 

비정상적인 그의 삶이 우리에게 또 하나의 도전이 될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