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기행·산책

자하문 산책-환기 미술관, 윤동주 문학관과 최규식 총경

Jay.B.Lee 2014. 7. 19. 04:30

 

김환기 화백-출입구에 걸린  사진을 허용하는 단 한 곳

 

미술관은 같은 곳이라도 전시물이 바뀔 때 종종 가게 마련이다.

그와중에 한번도 가지 않고 아껴둔 미술관이 환기 미술관이다.

한국 현대 화가중 천경자 화백과 김환기 화백의 그림을 제일 좋아한다.

박수근,이중섭 보다도.

수화 (樹話)김환기(1913-1974)

그의 그림은 파리의 유학으로 정점을 찍으며 변했다.

"김환기는 1956년 서양미술의 메카 파리로 향한다.

파리는 김환기가 정제된 조형 언어와 명상적인 푸른 색감,다양한 조형적 실험을 통해 자신의 예술정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세계 미술계로 확장시키는 계기를 마련한 곳이다"

1974년 김환기 화백이 뉴욕에서 타계후 부인 김향안은 작가의 유지를 받들어 재단을 설립하고 미술관을 건립하였다.

건축 설계는 뉴욕에서 감환기 와 접촉이 많앗던 우승규가 맡았다

화강암을 사용 당시는 훌륭한 건축물이었는 지 모르나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옛 스타일의 건축물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후끈 달아오른 3층은 한낮의 열기를 주체를 못한다.

현재 전시물은 드로잉과 1960년대의 대작들이다.

50년전의 작품으로 미루어 김환기 화백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간 화가인지  작품들 앞에서 한참씩이나 머물렀다.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40길 63

전화:02-391-7701

전시:

개관시간:오전 10시 -오후 6시

휴관일:매주 월요일,설,추석연휴

부대시설,:카페.아트샵과 주차장

교통: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3번 출구와 나와 부암동 주민센터행 버스를 타면 된다

        지하철 5호선 3번 출구로 나와 부암동 주민센터를 지나는 버스를 타면 된다.

        부암동 주민센터 앞에서 하차, "동양 방앗간"이 랜드 마크가 된다.

왼편이 환기 미술관,오른 편길이 커피 프린스로  유명했던 "산모롱이"-커피가 비싼 집이다.

입장료:일반 10,000원(경로 할인 7,000원)

참고:사진 촬영 금지

 

 

 

 

 

별관:카페,아트샵.입장권을 판다.

김환기와 부인 김향안

 

 

         

환기 미술관을 가려면 마주치는 카페

파스타 집,Rabia

길건너 오래된 분위기를 연출하는 만두집 "천진 포자"

유명한 커피집 "크럽 에스프레소"더운 여름이어선지 내부 수리중이라며 당분간 문을 닫았다.

바로 위로는 유명한 "자하문 개성 손만두"집이 있다.

만두국집으로 서울에서 제일 비싼집.

장갈하고 깔끔하며 좋은 재료를  쓴 것은 분명하나 만두집이 이래도 되나 고개가 갸우뚱 하던 집이다. 

        

창의문 길건너 버스정류장옆의 윤동주 문학관.

버려진 "청운  수도 가압장"을 개조 문학관으로 만든이에게 축복을 !

1층 시인채로 부리우는 전시실 우측엔 연대별로 사진들이 붙어 있다.

1917 길림성 갑부의 아들로 태어나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기까지 28세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갔다.

  유고시31편으로 "하늘과 바랍과 별과 시"란 제목으로 사후 1948년 발간이 되었고 그의 시 서시(序詩)와 "별헤는 밤"(1941.작)은 불멸의 시가 되었다.

모자에 진 주름도 부담스러워했다는 윤동주.

독립운동 죄로 2년을 언도 받고 한국과 제일 가까운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심한 노동에 시달렸고

뭔지 알수없는 주사를 매일 맞아 윤동주(1945.2.16)와 함께 체포된 송몽규(1945.3.7)는 20여일 차이를 두고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좌편벽에는 윤동주와 관련된 작품을 싣은 도서들이 벽에 진열되있다.

사진 촬영 금지

 

위치:서울 종로구 창의문로 119(청운동)

전화:02-2148-4175

전시시간:10시-18시

휴관:  월요일,1.1/설날,추석연휴

무료 관람

교통편:환기 미술관과 같다.

 

 

제2전시실이란 "열린 우물"

물탱크의 윗부분을 열어 하늘을 바라본 우물을 상징했다.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등장하는 우물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전시실.

물자욱이 남은 탱크의 흔적과 옛 가옥의 중정처럼 한편엔 풀들과 화초가 자란다. 

벽한쪽에  튀어나온 철근 콘크리트의 흔적.

안내문 어느 곳을 보아도 설계자나 공사 회사의 이름이 없다.

안내문에 이름을 넣도록  종로구청과 종로 문화 재단에  요청해야겠다.

제 3전시실.

용도 페기된 물탱크를 이용한 전시실로 영상물 을 감상할수 있다.

낡은 물탱크 벽에 직접 쏘아 상여하는 12분 짜리 영상물로 시인의 일생과 시세계를 담았다.

물탱크 바닥에 앙증맞은 작은 의자 몇개가 전부다. 

물탱크였던 이곳 벽면에는 물떼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영상물은 벽면 정면에서 볼 수 있다.

하얀 스크린 아닌 벽에  쏘아 묵직하고 어두운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린다.

제 2전시실에 "열린 우물"이란 이름을 붙였고 이곳은 "닫힌 우물"이라고 명명했다.

물탱크안으로 내려오는 철근 사다리를 잘라낸 흔적이 남았다.

"침묵하고 사색하는 공간"의 의미로 조성되었다 한다.

 

카페 "별뜨락'으로 오르는 길.

윤동주시인의 산책로 올라가는 길이다.

문앞에 달려있는 작은 철책문의 출입금지표지판이 이 혹시 카페가 닫혀있나 순간적으로 의심을 하게 한다.

 

문학관 뒤, 윗편에 자리한 작은 카페 "별뜨락"

고호의 "밤의 테러스"가 연상되는 카페 이름.

한낮의 더위와 겨울의 찬 바람을 피할수 없는 옥외 카페다.

봄과 가을이 아름다울 카페-여름과 겨울은 더위와 추위를 피할길이 없다.

 

 

커피대신 시원한 사과 쥬스를 마셨다.

갈증나는 내심정을 안듯 투명한 프라스틱 컵에 반짝이는 얼음을 하나 가득 채워준다.

왼편으로 "시인의 언덕"으로 부르는 산책로가 있다.

윤동주 시인이 산책했다고 믿어지는 언덕진 산책로.

자하문 버스 정류장 건너 최규식 총경의 동상

 

1968년 1.21일 10시 15분경 "박정희 목을 따러왔다"던 북한 무장공비의 기관단총 3발를 맞고 절명했다.

당시 38세.

연대 철학과 재학중 6.25발발로 군에 입대하여 군정관으로 근무중 경찰에 특채되어 종로 경찰서장직을 맡았다.

고 육영수여사가 사람 됨됨이를 보고 총애하던 분이다.

1968.1.16일 개성을 떠난 31명의 124부대 무장공비들이 서울 침투시  자하문 검문소의 근무 형사로 부터 무장 공비로 의심된다는 보고를 받고  짚차를 타고 와 권총을 뽑아들고 소속을 밝히라고하던중 총을 맞았다.

이윽고 올라온 시내버스 불빛을 보고 지원군이 오는 줄 착각한 무장 공비들은 버스에 수류탄 세발을 던졌다.

  총성을 듣고 수경사 대대장인 전두환 중령과 작전 주임 장세동소령이  부대원을 이끌고 달려오자 무장 공비들은 페닉 상태가 되어 도주하기 시작했다.

이날 최규식서장(나중에 총경으로 추서)과 민간인 6명이 숨졌으며 무장 공비 26명 사살,1명 자폭,김신조 체포,한명은  양주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나머지 두명은 휴전선을 넘어 이북으로 도주한 것으로 간주한다

 "1.21 청와대 무장 공비 사건 "으로" 향토 예비군"이 창설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 사건으로 아군 13명 사망, 민간인 30명사망 .52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실미도에서 공군 첩보 부대가 비빌리에  특수부대를 훈련하기 시작했다.

 당시 중앙 정보부 이후락 부장이 북한을 방문하는 등 남북 교류가 비밀리 진행되는 과정에서 "김일성 목따는" 실행시기가 늦어져 특수부대는  방치한  상태가 되었다.

 기다리기에 지친  특수부대원들은  처우등 불만이 터져나와 훈련 기간병들을 사살하고 실미도를 나왔다.

 청와대까지 가보자던 부대원들은 결국 영등포 유한 양행 앞에서 자폭하고 말았다. 

이것이 "실미도 사건"이다.

돌이켜 보면 당시는 모두가자기가 맡은 일에 책임을 지고 나설줄 아는 시대였다.

 요즈음 세월호처럼 도망가는 세대는 아니었다.

(이번 사고에서 자기의 책임을 다하다가 고인이 된 분들-선생님,승무원,그리고 잠수부에게 죄송하다)

내년 1.21일 아무도 찾지 않는 최총경 동상앞에 꽃을 들고  와야겠다.

벌써 47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