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 에게
새벽 찬바람이 몹시 부는 귀대 다음날 새벽 예정에도 없던 샤워를 합니다.
펜티 바람으로 집합하여 철모 가득 냉수로 샤워할 때 여기가 군대임을 실감합니다.
단체 행동에 중요도를 두는 곳이 군대이기에 몇몇의 실수로 가해지는 벌이었습니다.
비인간적이라든가 비민주적인라든가를 떠나 군대이기 때문에 있을 수있다고 인정합니다.
얼마만큼 군생활이 익숙해졌나 봅니다.
타인의 고통이 얘기로 전해질 땐 자못 쾌감을 느끼는 이상심리가 있습니다.
여자인 당신에게 이런 얘기는 않는 편이 나음에도 좀더 병영 생활을 이해하고 그 상상하는 호기심이 충족되길 바랍니다.
여자아닌 미경험자에게도 상상력이 미치지 못하는 지대.
훈련으로 구리빛보다 더 검은 살결로 변해 태양 아래를 걷던 시절,
스스로 자아분열에 걸렸다고 하는 친구가 주고간 책 "하리 할리의 수기"(황야의 이리란 부제가 붙어있는 소설로 환상적인 소설)
를 읽었습니다.
"괴로움의 한방울까지 맛보려는 " 극히 자학적이고 음산한 주인공.
한번은 연관시켜 상상해 볼정도로고통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달아 가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한권의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일조차 사치스럽게 여겨지던 시간이 있었다고 고백하기가 부끄럽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화려한 군생활을 쌓는데 지나지 않는 한장면 입니다.
책을 광적으로 읽는다니 무척 부럽습니다.
원래 책을 좋아하던 저였고 당신이 책을 늘 읽고 있다는 얘긴 오래전 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단지 읽는 책의 종류가 거리가 먼것이어서 문학의 길을 걷는 분과 크게 차이가 있습니다.
짧은 시간을 이용하여 책을 읽고 싶어도 이 곳엔 책이 없습니다.
연대 행정실에서 해안부대로 나온 지금 마음과 육신이 평화롭습니다.
가끔 혼자 외롭지 않냐는 질문을 초병에게 던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외롭게 보일지라도 정작 외로운 때는 혼자 있을 때가 아닙니다.
당신도 동정적인 그런말을 한다면 실망스러울 것입니다.
찬바람이 부는 동안 이제 낙엽의 의미를 골돌히 생각하기엔 감정이 메말랐나 봅니다.
이제 평온한 마음으로 심연 저 깊은 내면에서 오는 희열을 만끽하며 남은 시간을 보내려 합니다.
하늘 빛이 회색으로 변해갑니다.
눈이 오면 겨울 기분을 조금 더 날것이고 바다위로 내리는 눈발 사이로 기억을 더듬어 볼지 모릅니다.
완전무장,뜨거운 폭염아래 숨은 가빠지고 전신은 땀으로 젖어 어깨뒤 군복위로 소금이 배어 나오던 여름
여름의 프라타나스 그늘 아래 피곤한 몸을 팽개치곤 수통의 물을 벌컥 마신후 눈을 감습니다.
교정에서 먼 기억에서 날 깨워주는 올갠 소리.
휴가로 가을을 보내고 온 지금 이제 겨울을 맞습니다.
지금쯤 종강이 시작되고 캠퍼스에 오가는 발걸음이 적어졌겠지요
마지막 기말 시험을 치루는 사람들.
부디 꿈을 져버리지 말고 건강히 지내길 빕니다.
1970.11
'청춘시절, 군대,군에서 받은 편지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군에서 어머님에게 쓴 편지 (0) | 2014.06.03 |
---|---|
군시절 자주 읽던 지혜의 말들 (0) | 2014.06.03 |
군대 일기초 (0) | 2014.06.02 |
군대서 Y 에게 보낸 편지 (0) | 2014.06.02 |
1969년 3월 논산 훈련소 입소시 남은 기록들을 회상하며 (0) | 2014.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