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에게
10월말 정말 숨막힐듯한 분위기 속에서 뜻하지 않게 받은 편지는 나를 잠시 그속에서 탈피하게 해주었습니다.
그저 쓰고 싶어 쓴 날 의 편지를 부치고 싶었던 날 부쳤던 편지입니다.
근 일주일 걸려 늦게야 도착하는 편지는 군대란 절차 때문이라고 해둡시다.
벌써 첫얼음이 얼고 하얀서리가 내리고 흩날리는 낙엽과 윙윙거리는 바람소리는 겨울을 알립니다.
그 곳도 얼음이 얼었겟지요
지금은 바다가 눈 아래로 뵈는 산등성이 방카속에서 정말 오랫만에 편지를 씁니다.
누구에겐가 가슴에 퇴적된 이야기를 토로해보고 싶어도 항상 마음과 시간 여유가 없어 유감입니다.
받기보다는 쓰기를 즐긴다는 당신의 편지는 한동안 망각하고 있었던 일들을 회상케 했습니다.
제 이름 대신 이병장님의 호칭도 참으로 오랫만에 듣습니다.
학교는 개강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데모로 수시로 휴강)
황량한 폐허와 같은 겨울의 캠퍼스란......
그래도 그 캠퍼스가 그리워집니다.
당신은 자신을 다 큰 여자라 칭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두겠습니다.
더구나 2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있으니까요
Naive 란 단어를 즐겨썼고 친구와 교외에 나가 이유없이 막 울었다고 고백하던 당신이었습니다
공연히 잘 우는 여자들
결코 당신도 예외는 아니겠지요
여자들이 대수롭지도 않은 일에 잘 울다가 좀 심각할 땐 울음은 커녕 표독스런 눈빛으로 참고있는 모습이란 이해하기 힘듭니다.
"지예"란 이름이 몹시 갖고 싶었다는 소녀는 정말 성숙한 여인이 된 모양입니다.
티파니에서 음악을 들었다구요
요즘도 종종 음악 다방에 가십니까?
다방 -지금 나에겐 너무나 요원한 세계입니다.
'Forever with you"와 가방을 든 여인 'Dolce'와 '새한'에서 지인들과 함께 얼마나 많이 들었던 선율인지.
정말 저도 남자 답지 않게 노래를 들으며 눈물 짓던 때가 있었습니다.
논산 *수용연대 다방에서 그 곡들을 들었을 때.
지금 음악은 멀어지고 바다의 물결소리며 바람 소리며 간간히 밤을 가르는 총성(*한밤의 경고용 요란 사격)이며 그런 소리만 가까이 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전후 소설의 새로운 테마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얘긴 정말 잔인스러운 사고입니다.
정체된 흐름속에서 자극을 원한다해도 전쟁은 너무 비참합니다.
군인이기에 전쟁 소설,전쟁영화에 더우 흥미가 깊어진 건 사실이지만 전쟁은 비참 할 뿐이라는 지론은 변함이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죽여야하는 훈련 받은 군인 -살인 기술자들은 국토 방위란 명분아래 전장으로 향합니다.
어디서 죽을 지 모르는 그네들-결코 살아오지 못하는 비참함을 알아야 합니다.
산자들에게는 잊어야하는 고통입니다.
비록 그들의 애국 정신이 훗날 기억되고 찬양 된다 할지라도.....
1970.10
JB
*수용연대:훈련소에 배치되기전 잠시 머무는 숙소가 있는 곳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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