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시절, 군대,군에서 받은 편지들

군 시절 여자에게 받은 편지(10)-마지막 편지

Jay.B.Lee 2014. 5. 30. 19:51

 

 

 

잔인하도록 싸늘한 바람

그런 바람을 두볼에 마구 맞으며 헤매다 온 밤은 묘하게 울고 싶고 또 사람들의 하얀 미소 같은 것들이 그리워집니다.

오늘은 *애들 (*학과 동료로 모두 내가 아는 사람들)과 만나 내일 사은회를 할 거리를 사는라고 네 계집애들이 시장 바구니를 들고 어물점 식육점 야채점등을 쏘다녔어요.

일원이라고 깎겠다고 악을 쓰는  B와 C

난 흥미없다는 표정

S(내 친구의 여동생) 는 이래도 저래도 좋다는 표정

그런 모두의 표정들이 왜그리 웃웠는지

미친애처럼 난 웃어주기만 했거든요

사은회니 졸업이니 취직이니 결혼이니 따위의 말이 요즘은 날 미치게 만들기 때문에-

거리에 캐롤이 울려 퍼지고 또 땅콩을 팔고 있는 아낙네의 얼굴빛은 카바이트 불빛아래 창백한 겨울.

불꺼진 방문을 열고 스위치를 누르면 내방은 노랑색의 커튼에 쌓여 제법 훌륭한 무드를 풍길 때도 있답니다.

돌아온 지금,이 조그만한 방안이 쾅쾅 울리도록 드높여 *"winter of love'를 듣고 싶은 욕망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무슈리,

나를 향한 연민과 싸우다 보면 아까운 시간들이 마구 가버리는 거예요.

왜이리 기막힌  충족도 없이 시시하게 가버리는 것인지

지금 나는  지금 이시간이 내 일생중 아마도 가장 목마른 시기일것이다 라고 자위하지만 작년에도 또 그 전해에도 나는 그 때가 가장 목말랐던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아마도 목마름의 연속인 모양입니다.

그 동난 내겐 멋진 일도 몇가지 있었답니다.

지난 11월달 엔 IS여중고에 실습을 나가 한동안 아이들과 공부하면서 대단한 보람을 느꼈고 이세상 어딘가에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한군데 있었구나 하는 안도를 느끼게 했습니다.

나는 아이들 (고 1)을 만족시킬수 있는 일체의 재능과 센스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아주 능숙하게 수업을 한다는 정평이었습니다.

"*선생님께 드립니다"를 쓸 수있던 나의 지난 제복의 시절을 되살려 그들에게 유익한 얘기를 틈틈히 해주고 더러는 "A man called a horse"

같은 영화의 얘기를 제스춰를 써가며 얘기해 주기도 했습니다.

가장 세련된,가장 문학적인,가장 멋있는 선생님이였다는 호평을 귓전에 들으며 12월 1일 IS여고를 떠나 그 이후로 줄 곧 무료한 시간입니다.

떠나는 날 애들이 울고 불고 야단이어서 혼이 났었어요

또 실습시간에 가장 보람있던 일은  Connie(평화 봉사단)와  친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 만나 극장도 가고 다방도 가고 중국 요리집에도 가고 그래요.

딱 한번 Beer를 마신적도 있습니다.

우리의 졸업은 2월 중순 쯤이고 그후의 일은 미정입니다.

그 안에 무슈리의 긴 편지를 받아 보았고 그 뻑뻑한 군복의 가슴속에 어쩌면 그 처럼 풍부한 감상이 있을까 감탄했습니다. 

연애를 한다면 쓸 수있을 만큼 멋있고 따듯하게  여인을 사랑해주리라  믿어 의심치않았습니다.

내사 늘 광폭한 상념 -

내겐 아담의 갈비뼈 따윈 없다는 식이기 때문에 남자를 깊히 사랑하지도 또 그에게서 깊은 사랑도 받지 못한 여자입니다.

그 사실은 무섭고 슬프고 외롭고 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남자를 나 자신보다 사랑한다고 느낄 때의 엄청난 고통보다는 덜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남자-

그 영원히 정착할 줄 모르는 무한한 존재들

끝내 알 수 없는 아담의 후예 .

神의 최초의 작품

 그들을 내가 사랑한다면 나는 영락없이 광녀가 될 것 같습니다.

 

*달이 파란밤,

그 곳엔 당신과 나뿐

나는 생각없이 당돌하게 굴었고 질문했고 응시했고 허지만 고개를 들고 다시 한번 무슈리를 보았을 때 그 땐 나는 여자였고 당신은 남자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가까이에 남자의 얼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말은 비록 평범 이상을 추구하고  내 이상이 남성적이라 할지라도

그 달빛아래의 내모습은 무슈리 앞에서 더욱 부드러운 여자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갑자기 그 상황이 견딜 수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나는 그 무드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 얘기들- 

그 얘기들이 사실이든 아니든 남에게 그런 얘기를 한 것은 처음 이었고 집에 돌아와 참 많이도 웃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를 두려워했던 건 아니다라고 변명하기도 했습니다.

허지만 또 스스로 그런 분위기를 유도해 놓고 거기서 빠져나오고자 피차 원치 않는 제3의 얘기를 열을 올리며  

했던 내가 아무래도 우스꽝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어쨋든 잘 했어요.

그래서 나는 또 한번 내가 현명한 여자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 때 무슈리가  나를 안기라도 했더라면 난 아무래도 참혹해질수 밖에 없는 것이니까요.

난 무슈리보다 조금 더 영리한 여자인 모양입니다.

 

무슈리,

어땟어요?

그곳엔 첫눈이 내렷던가요?

방한복을 입은 패망한 왕족의 후예같은 사람들이 군화 자욱을 남기며 막사와 막사를 오갔을 풍경은  참으로 멋지게 상상이 됩니다.

단지 어둡고 일률적인 그 색갈들.

때로 나는 나의 긴, 머리와 긴 손톱  ,조그만 구두, 벽에 걸린 조그맣고 곡선있는 옷가지들,

내 화장품,핸드백같은 걸 바라보면서 굉장히 슬퍼질 때가 있어요.

그 것들이 모두 조잡스럽고 구질스럽게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면서 당신들의 그 우람한 군화 같은 것과 어둡고 무거운 그 큰 옷들이 부럽습니다.

아주 많이-

그리고 눈위에 선혈을 뿌리고 쓰러져있는 군복의 사나이(물론 영화같은 것에서 본것이지만 )같은 건 *"하녀"의 그림에서 풍기는

아름다움보다 훨씬 매혹적입니다.

최소한 나는 그런 남자의 모습을 사랑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무슈리,

나的인 여자아닌 이론적이지도 감상적이지도 않은 단지 사랑한다는 사실을 행복해 할줄 아는 여자를 사랑하신적이 있다구요?

그런데 왜 지금은 혼자 있습니까?

당신이 지금 혼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나는 나的인 여자와 나的이지 않은 여자의 가치를 알고 있읍니다.

다만 내겐 어떤 마녀적 취미가 잠재해 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

무슈리,

다 실없는 얘기예요

지금 아이스 크림을 먹고 싶다는 생각과 넓고 하얀 모래 사장 같은 데를 굴러 보고 싶다는 생각이 진실일 뿐이고 모두가 다 실없는  얘기얘요

아아 내게 빨간 색의 자동차만 있다면 무진장 살고 싶겠는데.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아마도 나는 지금 피로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무언가 충족되어 있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럴 때는 닥터 지바고 같은 책을 읽어 보는 것이 묘약이련만.....

언제쯤 또 편지를 쓰죠

눈이 많이 쌓이는 날  외출해서 돌아 왔을 때쯤 ,

 

오늘 밤엔 낯모른  사람과 설원을 헤맬 꿈을 꿀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안녕.

 

*1971.12.8

AK

 

  

*Winter of Love

겨울에 듣기 좋은 음악으로 1969년 Engelbrt Humperdinck 가 불렀다.

 

My love ,the days are colder

So let me take your hand

And lead yoy through a snow white land,

Oh oh oh oh로 시작한다.

 

*선생님께 드립니다.-아마 여고시절 존경하는 선생님께 이렇게 해주십사  부탁의 글을 올렸나보다

선생님의 보다 깊은 관심이 그리운 학생의 행동이다.

 

*달이 파란밤-1971년 가을 마지막 정규 휴가 25일을 받고 그녀를 만났다.

*그 얘기들-무슨 얘기였는지 전혀 기억에 없다 .

 

*하녀: 1954년 작품으로 소피아 로렌이 출연한  영화  <河女>, 혹은 1960년  제작된 한국영화로 김진규,주증녀가 출연한 <下女>인지 분명치 않다.

소설보다는 영화쪽이 가까울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조금 생뚱맞은 면이 있다.  

 

*A Man called a horse(1970)

    엘리어트 실버스타인이 감독하고 리차드 해리스(1930-2002,아일랜드 출신) 주연한  초기의 작품으로 드물게 주인공 역을 맡았다.

영국 귀족으로 미국에 수렵차 왔다가 노란손족 인디언에게 납치되어 추장의 어머니 노예로 산다.

외부 인디언의 습격시 공을 세워 인디안 가족으로 받아들여지고 용맹한 전사의 고통스런 통과의례를거친후  인디언 추장의 여동생과 결혼까지 한다.

어느 날 타 부족의 습격시 추장이 죽고 아내도 죽는다

그는 추장을 대신하여 인디언들을 지휘하여  적들을 물리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노란손족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들과 함께 했던 5년만의 일이었다. 

리차드 해리스는최근 작품으로" 해리와 포터의 방"에서 마술학교 교장역, "글레디에이터"에서 왕의 역활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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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서 받은 마지막 편지다.

당시 보통우편  10원짜리  우표위엔  71.12.13일의 소인이 선명히 남아있다.

내가  제대를 앞두고 더 이상 편지를 보내지 않았는지 그녀가 더 이상 편지를 보내지 않았는지 분명치 않다.

전역일이  가까워오고 학교 졸업식이 가까워 오면서 지금 같으면 졸업식에 꽃을 보내거나 축전을 보냈을 것이다.

1972.2월 22일 35개월 11일의 군복무를 끝내고  그녀를 한번 만났을 거라고 분명 믿지만 기억이 아득하다.

복학준비를 하며 3년간의 공백을 메우느라  멍한 나날을 보내면서 낯선 후배들과 재회한 복학생들 속에서  학업에 열중하는 동안 그녀는 잊혀져갔다.

내게 남은 시간은 1년반.

4학년 2학기가 끝나기전 사회진출의 준비를 해야했다. 

 학교에 선생님으로 나간 그녀 역시 처음 학교 생활로 바빴을 것이다.

그 동안의 우정과 연정 사이에서 연락없이 지낸 것은 서로를 잘 이해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후 서로 학생으로 ,선생님으로 자리를 잡았을 때 분명 한번 만난것으로 기억한다.

 경부선이 지나는 충청도  B읍의 학교 영어 교사로 부임하여  그 근처에서 근무하는 군의관을  만나서 교제하고 있다는 얘길 직접 들었다 

 불확실한 시점에서 내 손엔 그녀를 붙들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학교에 파묻혀 지냈고 내 일생을 좌우할 귀중한 시간이어서 모두를 잊고 싶었다.

참 절실한 시간이었다.

4학년 가을, 대 기업 그룹사 입사 공채시험을 치룬후  세곳에서  합격통지서를 받을 때까지.

지난 과거의 기록들을 정리하며  처음으로 모든 편지를  읽어 보는 동안 나는 잠시 < 20대 초반의 청년 이병장>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청춘 시절-군대 시절 그녀가 차지했던 자리가 결코 작지 않았음에 감사하고 싶다.

그녀가 살고 있는 경상도 T시에서 13년전 30여년만에 만난 그녀.

 나의 기억 속엔 재회시의 그녀 얼굴 모습은 모두 지워지고 대학 1학년때의 청순한 그녀의 얼굴만이 각인되어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가 다른  하늘 아래 살고 있더라도   어디서나 건강하고 행복하길 ! 

그녀의  삶속에서  젊은 날 꿈꾸었던 모든 것을 이루었기를 소망한다.

분명 내 청춘의 절대시간 속에 비록 사랑이라 부르진  못했지만  참 많은 위로를 주었던 그녀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