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세번째 터키여행 (조지아·이란)-2012

이맘 (Emam)광장과 bazar(1)-이스파한

Jay.B.Lee 2013. 1. 28. 12:07

 

사진: 이스파한 이맘 모스크와  광장(Meidan-e- Emam)의 분수

 

 

      이스파한은 이스파한州의 州都로 카스피해 가까이 있는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약 400여키로 남쪽에 자리잡은 도시다.

      이란은 타국에 비해 국내선 항공이 매우 저렴하며이스파한은  테헤란에서 비행기로 50여분 소요된다.

공항까지 가는  시간 ,대기시간과 도착해서 목적지 까지 오는 시간을 고려하면 나같은 여행자에겐 육로가 더 매력적이다.

요금이 저렴도 하거니와 처음 여행이니만큼 고속도로를 달리며 낯선 풍경을 즐길 수 있어서다. 

현재 이스파한의 인구는  약 125만명으로 공기 오염으로  악명을 떨치는 테헤란에 비하면 아주 쾌적한 도시에 속한다.

이스파한은 사파비(Safavi)왕조의  Shah Abbas(1587-1629)왕에 이르러  수도(1598-1722)로 정한 뒤 인구 60만의 도시로 번성했으나 가자르(Qazar) 왕조시 수도를 테헤란으로 천도함에 따라 이스파한은 쇄락하기 시작했다.

Naghshe Jahan으로 불리우던 이맘 광장은  17세기 사파비 왕조의 Saah Abbas가   현재 규모로 확장하여 가로 150미터 세로 500미터의 거대한 광장을 자랑한다.

중국의 천안문 광장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크다.

남쪽으로  돔과 첨탑(Minaret) 으로 된 Emam Mosque가 있고  동쪽으로 쉐이흐로폴라 모스크가 있다.

서쪽으로 알리카프(Ali Qupu) 궁전이 있어 주로 외국 사신들의 접대용 장소로 사용했다.

북쪽으로는 전통 시장 Bazar 와 연결된 "게이사리(Gesarieh)" 門이 있다.

광장은 얼마나  큰지 사진 한 컷에 담을 수 없다.

큰 규모때문인지 옛부터 "세상의 절반""(16세기 프랑스 시인 레니어가 세상의 절반이라고 묘사)이라고 불렀다.

카펫을 팔던 주인이 나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나라를 여행했냐고 .

너희 이맘 광장을 이미 보았고 광장이 "세상의 절반이라고 하니까 이미 세상의 절반을 본셈이라고 하자 웃는다.

큰 마음을 먹고 바자르를  천천히  아주 샅샅히 둘러 보기로 했다.

 광장을 정방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2층 건물중  1층 건물안이 바자르다.

양쪽 옆으로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銅 냄비를 파는 곳.

전부 손으로 두들겨 만든 것으로 손기술도 기술이지만 거의 예술적 수준이다.

 

 

 

 

바자르 안.北美 쇼핑몰들의 높은 천정도 다 수백년전의 문명에서 비롯된거다.

옛 투구 갑옷을 재현해 놓은 솜씨가 놀랍다.

 

지금은 난청 예방을 위해 리시버를 끼고 작업을 한다.

아마  옛 장인들은 대부분 나이를 들어 귀가 어두워져 듣지 못햇을 것이다.

 

 

 

 

광장 주위를 도는 마차가 있다.

이맘 광장이 이스파한 시민들에게 가장큰 더 할 나위없는 휴식처다.미모의 이란 여성들이다.

동쪽:세이크  로토폴로 모스크

남쪽 :이맘 모스크

 

전에는 Polo를 즐기던 잔디구장을   Pool장으로 만들어 분수를 설치했다고 한다,

 

 

 

청바지 위의 검은 차도르를 걸친 이란 여성들.

수채화

 

 

 

휘황 찬란한 유리제품들.

Bazar를 둘러 보는 동안 마치 보물 창고를 순회하는 듯했다.

 

이곳에서 특히 매력적인 것은 가방,Sack들이다.

양털로 만든 것으로 문양이 얼마나 독특하고 따듯한지 20대 딸이 있다면 사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가격도 20불 내외.

이란 사탕 과자가게

 

 

 

 

낙타뼈에 그린 세밀화다.

교과서 고구려 벽화에서 보던 그림과 흡사하다. 말타고 사냥하면 다 비슷해진다.

 

 

 

실내화를 파는 할아버지

 

      

이곳은 이맘 광장 남쪽에 자리한 바자르로 카핏을 포함 고급 물건들을 파는 구역이다.

한번 구경한다고 카핏트 가게에 들어가 페르샤 상인에게 결국 꼬임에 넘어가고 말았다. 

자유 여행가로 짐을 늘리지 않는다는 원칙을  처음 깨고 결국 카핏 두장을 샀다.

카핏 뒷면에 Hand Made 확인서가 붙어 있고 보증서까지 별도로 받았다.

터키것에 비해 세련미는 적었지만 소박한 문양들이 마음에든다.

 주인이 기술적으로부피가 작게 싸준 가방 하나를 더 들고 계속 여행해야 했다.

1년전 환율로  4백여불 호가하던  것이 지금은 200여불로 하락하고 말았다는 주인의 설명이다.

10프로씩 깎아 하나를 산다음  이런 횡재가 어디 있으랴 싶어 욕심에 또 하나를  샀다.

그네들은 손님이 마음에 들만한 것들을 골라 바닥에 계속 펼치고 유혹한다.

실크로 만들었다고  자랑하며 찬란하게 빛나는실크 카핏을 들고 왔다. 

1센티 짜는 데 14줄을 자야 한다는 작품은 2년 걸려 짠 것인데 폭 90센티 길이 120센티 크기에 1,900불이다.

나에겐 필요가 없지만 가격은 매력적이다. 

에정에 없던 카핏 구매로 치에다 실으면 그만이나 짐을 실을  때마다 하나,둘,셋 가방수를 세어야 하는 수고가 따랐다.

양압기처럼 잃어 버리지 않으려면 확인을 해야한다.

배낭,양압기,카펫 가방그리고 등의 작은 배낭.

카핏 하나는 우리가 사용하고  하나는 딸이나 며느리에게 주면 하나가 부족하다.

결국 마음에 걸려 이스탄불에서 떠나기전  Kilim 한장을 샀다.

아들과 딸이 여비에 보태준 용돈을 생각해 선물로 족할 것 같았다. 

 

 

저 아름다운 모직 Handmade 가방들이 20여불 내외다.

미술관 같은 카핏가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며 진지하게 성실히 물건을 팔던 카핏 가게의  Hamid Ansari.

사장의 아들로 아버지는 아들이  물건을 파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며  앉아 있었다.

이스파한 광장의카핏트 가게중 물건들의 질이 제일 좋다,

가게 안도 제일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GLC Carpet Lover Club"

주소:No11+2 Poshtmatbach St.

      Nagh-e-Jahan Sq.

Tel: +98 311 2226060

  

광장에서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걸며 카핏을 샀다해도 자기내 카펫 가게 구경이나 하고 차마시고 가라며  상인  Mohammad  Tashakor에게 이끌려 들어갔다.

차만 마시고 얘기만 하다 나왔는데 카핏 수출도 한다고 한다.

친절에 힘을 보태 마른 수건 더 짜 보려는 페르샤 상인의 후예들이란 생각에 웃음이 난다.

"Flying Carpet" 회사.

바지르를 통로를 걷자  멋지게 생긴 사람이 유창한  미국식 영어로 말을 걸며 자기 가게에 들어 오라고 한다.

초저녁인데 이미  한잔 걸친 그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는 데 이란계 미국인이다.

주머니에서 증명을 꺼내어 보여준다.  미해군 복장을 한 사진은 분명히 그다.

하와이에서 오래전 미해군으로 근무했다는 그는 어떤 사연으로 고향에 돌아와 있을까.

 

 

이맘 광장 뒷편 Naghshe Jahan 레스토랑 밑에 있는 면직물 가게를 발견했다.

 근방에서 가장 큰 가게로 제품의 문양자체가 다른 곳보다 아름답고 실제 장인이 이곳에서 만든다고 해서 다시 들린 곳이다.

전날 저녁 내가 시간이 없었고 장인도 퇴근 하고 가게 문닫을 시간이라말에  다시 들린 곳이다.

약속을 지킨  나를보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잘생긴 남자 종업원 둘은 영어가 유창하고 고객들에게 그네들의  물건 파는 모습은 항상 진지하다.

서두르지 않고 소란스럽지않게 조용조용 물건들을 판다.  

뜨내기 아닌 많은 이란 여성 손님으로 북적이는  걸 보면 유명한 집임에 틀림이 없다.

너무 신비한 문양으로 인쇄한 아름다운 각종 받침대,테이블보, 쿠션 아기옷등이 마치 미술관 같은 분위기가 난다.

전체적인 작품 진열이 박물관 같기도 하다.

 

 

 

가운데가 앉으신분이 장인으로 아래 나무에 새긴 문양들을 조합하여 색상을 찍어 나간다.

생각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가벼워 선물용으로 받침을 10장을 샀다.

같은 사이즈라도 문양이 복잡하면 가격이 더 올라간다.

25ㅌX30 센티 크기 한장에 2불50전 내지 3불로 달러로도 받는다.

      

각종 문양 도장

작업을 하고 있는 장인.

선물도 사고 장인도 만날 수 있어 즐거웠던 시간이다.

한때 넥타이에 아메바 형태의 문양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아메바 무늬의 원조는 이란이다.

촛대 

 

       

 

호텔 부근의 Fast Food 점.

멋없는 건물에 달랑 빨간 의자몇개와 유리탁자가 전부다.

카운터는 입구 아닌 제일 안쪽에 자리하고 있고 사진은 이곳 사장이다.

종업원이라고 해야 음식을 만드는 남자와 사장 둘 뿐이다.

벽의 메뉴판이 하연 바탕에 검은 글씨로 되어 있어 장례식장 분위기라고 시비를 걸었다.

 중국인은 식욕을 돋구기 위해 빨간 색을 많이 사용한다고 얘기해 주었다.

 너희도 흰색에 검은 것보다 다른 색조로  만들어 식욕을 자극해 보라고 충고해주었다.

내 의견에 절대적으로 동의 한다고 한다. 

식당 개선에 대해 뭐 해줄 얘기가 없냐고 해서 의자 비닐부터 벗겨내라고 했다.

가구상에서 사온 그대로 비닐 커버가 너덜너덜하게 헤지고 있는데도 벗겨내지 않는 이란 사람들이다.

그는 대학에서 식품 공학을 전공했으며 이곳 Fast Fod 점외에  야채 가게를 또 하나 가지고 있다고 한다.

주문한 샌드위치는 Subway의 긴 배처럼 생긴  빵에다 각종 야채와 고기를 넣어 맛이 있었다.

오랫만에 마시는 코카콜라 클래식이다.

마침 손님이 없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진지하게 자기의 꿈은 이민을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민지로 어느 곳이 좋겠냐는 것이다.

캐나다 보다 전공도 그렇고 호주가 어떻겠냐고 권하자 그는 전에 호주인들을 만났는데 호주인들도 그러더라고 했다.

열심히 준비하고 기도를 많이 하라고 했다.

부디 꿈을 이루길 !

젊은 이란 청년들에게 그네들의 조국 이란은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티셔츠 가슴의 코카콜라가 자기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이란 봉쇄를 외치고 있는 미국 제품이란 것이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