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세번째 터키여행 (조지아·이란)-2012

Esfahan 의 시오세폴(시호세) 다리

Jay.B.Lee 2013. 1. 25. 03:19

 

 

      

 

사진: 이스파한의 유명한  시오세(Si-O-Se)폴 다리.

시오세폴은 시오세 즉33개의 교각이란 의미다.

1596년 완공 되었으며 최초 폭 13.75미터 길이295미터,40개의 교각으로 된 다리였다 .현재 길이 191미터,33개의 교각이 남아있다

 

 

  내가 살던 토론토 North York 에 있는 오래된 고층 아파트엔 중동에서 온 사람들이 더러 살고 있었다.

 세를 들었던 집 주인은 레바논 사람으로 그 어머니가 아래층에 살아 5년동안 매월 월세(수표)와 주차비(현금)를 갖다 드렸다.

할머니는 차가 없어  우리가 할머니 지정 주차장을  한대 더 사용했다.

아들이 다니던 학교엔 캐나다에서 태어난 이란 친구들이 많아 집에 자주 놀러오곤 했다.

호텔식으로  카피트가 깔린 아파트 복도엔  양파 볶은  냄새가 종종 가득했다.

이란인 부부가 사는 집에서 나는 냄새였는데 이란인들은 양파만 먹고 사는줄 알았다.

서울에도 테헤란로가 명명될 만큼  이란은 우리나라와 긴밀한 관계를 가진지 오래다.

그러나 내게 이란이,이스파한이  특별히 관심있게 다가온 것은  단 한편의 영화때문이었다.

이스파한의 페르시아의 공중공원이야기보다  영화속의  '아 ~이스파한 "하며 밴 킹슬리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대한 절규가 너무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모래와 안개의 집"

70년대 이란 혁명에 쫓겨 미국으로 망명 온  퇴역 대령이 단지 500달러란  세금 미납때문에  경매에 넘어간 집을 사면서 원집주인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영화다.

 자존심 강한 사람으로 미국에서 성공해서 살아 남아야 하는 절박함이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이 죽고 부인이 자살하자 결국 본인도 자살로 생을 끝내는 비극으로 치닫는 영화다.

그가 떠나온 고국이  이란이었고 그가 꿈에 그리던 고향이 Esfahan이었다.

키예프 태생으로  유랑민 출신 페펠만 감독 작품으로 "간디"로 이름을 알린 영국 배우 밴 킹슬리(1943년생)가 출연했다.

쉰들러 리스트에서 쉰들러를 돕는 유대인 회계사로도 나온다.

부인역은  1952년생으로 테헤란 출신이며 미국에 정착한 손레 아그다 슐루사 맡았다.

아버지에게 상속받은  집을 지키려는 여주인 역은 제니퍼 콜레리가 맡았다.

 

 

Naghshe Jahan (Design of the World)호텔의 아침 식사.

커피가 있으면 좋으련만 커피가 없다.

호텔 종업원에게 뜨거운 물을 가져다 달라고 하자 영어를 못알아 듣는다.

식사하던 투수객인 이란인이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달려가 뜨거운 물을 한잔 얻어 컵받침과 함께 가져다준다.

너무 친절한 이란인들.

커피 대신 인스턴트 옥수수 크림 스프를 탔다.

일본에서 만든 것으로 여행시 아주 편해 비상식으로 몇개 준비해 가지고 다닌다. 

달걀이 맛있고 치즈가 예상외로 기가막히게 맛있다.

버터 용량보다 조금 크게 만든 치즈는 우리나라에 수입해 보고 싶을 정도로 맛있다.

Costco에서 종종 사먹던 프랑스산 삼각 치즈와 거의 흡사한 맛이다. 

 

작은 호텔의 식당 내부. 이곳엔 브라운관 타잎의 TV가 아직 대세다.

 

이란의 아침 식사에 나온 빵.

얇고 부드럽다.

단맛도 짠맛도 없는 정말 담백한 맛이다.

어린시절 6.25전쟁뒤라  C-ration(전투 식량)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C레이션의  크레카는 구멍 뚫린 것이 이란의 빵을 그대로 흉내낸 것이라고 믿고 싶다.

마른 빵 타잎으로 만든 것이 크레카가 되었고 크레카에 치즈를 얹어 먹는 것이 제격이듯 이란 빵도 그렇게 먹는다.

 

 호텔의 로비에 걸린 그림.

가구가 때타는 것을 두려워하는지 가게에서 사온 의자 그대로 아직 비닐이  씌운 그대로다.

이곳 말고 다른 음식점 의자에서도 비닐로 씌워 놓은 것을 보았다.

 

천년 만년 견딜 듯한 보도 부럭.

 

책점.인쇄술이 빈약하다는 걸 금방 알수 있다

 

 

 

그림가게

 

그림이 화려해 들어가 보았다.

유화인줄 알았는데 유화가 아니다.수를 놓아 만든 그림이다.

 

구경을 시켜주고 사진을 찍어도 좋다던 주인 아저씨

 

영화관 간판

 

단 한편만의 영화를  상영하던 과거 우리의 극장같다.화양극장,서대문 극장등과 같이

 

시네오 다리의 사진사들.아직 사진사들이 영업중이란 건 디카가 맣이 보급 되지 못했다는 증거다.

필림 카메라로  Brand이름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카메라들을 사용하고 있었다.일제나 독일제가 아니다.

      

 

건축된지 5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스파한 시민이 이용하는 다리다. 

         

 

 

사진을 같이 찍자던 청년들

 

이스파한의 가을은 가물어 물이 없다 .물이 흐르고 보트를 타고 물놀이하는  풍경은 언제가 가능한 계절인지 .

교각을 보호하기위해서인지 다리 아래로 돌을 깔았다.

 

      

 

 

 

 

 

         다리에서 놀던 소년

 

 

 

 

 

 

 

이 강 산책로를 따라 조깅을 하는 이란 여성을 보고 놀랬다.

허긴 이란이라고 운동하지 못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그여성은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선그라스를 끼고 "루사리"를 쓴채 천천히 멀어져 갔다.

 

 

 

다리 중간에서 나에게 홍차를 권했던 남자들.

그들의 가족을 만나 사진을 찍어 주고 인화하여 이란으로 우송해 주었다.

 

 

 

 .

 

 교각밑을 보면 이 다리가 얼마나 튼튼하게 지어졌는지 알 수 있다.

물이 흐를때를 대비 아래에서 건늘 수 있도록 돌다리가 이어져있다.

 

 

 교각 지붕위에서 물이 떨어지도록 설계된 물받이

 

 

 

 

 

다리를 스케치하던 여학생들을 만나다.다른 그림을 보여주는데 재능이 있다.

 

 

 

 이스파한에 있는 미술대학의 여학생들.

 

 

 쌍둥이 대학생들

 

 

      

      

 

길에서 한번,다리에서 다시 만난 사람들.

성지 순례를 마치고 오는지 복장과 가방이 그런 모습이었다.

  그들은  시골 학교 선생님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