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 ·산책

최명희 남원 혼불 문학관과 서도역(3)

Jay.B.Lee 2012. 4. 30. 23:04

 

전주 덕진동 혼불 문학 공원내의 최명희 묘지를 찾은 뒤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혼불 " 문학관을 찾았다.

2004년 개관한 문학관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매안 마을 이씨의 모델이 된 삭녕 최씨 종가터가 남아 있지  않을까하던 기대감이었다.

마치 토지의 평사리처럼 옛 집을 재현해 놓은 문하관을 예상했었다.

문학관은 전주에 비해  방대한 규모로 지어져 전주와 겹치지 않게 신경을 썼다.

(남원 문화 관광과:063-620-6187,문학관063-620-6788)

 

 

천추락 만세향-혼불에서  매안 마을을 묘사한 글이다.

소설에 묘사했던 '노봉  서원터','호성암 옛터'가 남아 있을까 하는 기대감은 한낱 꿈이었던가.

보이는 건물은 사무실과 차실이다.

 

 

 

 

혼불에서 작가가 남긴 소감에서 인상 깊었던 글-"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가 새겨져 있는 새암 바위 안내문.

 

 

 

 

문학관 내부는 사진 촬영 금지였으나 나중에 사무실 직원의 양해를 얻어 다시 가서 찍었다.

우리나라 박물관,  기념관의 무조건 사진 촬영 금지는 재고해야 하는 수준이다.

요즈음은 디카로  플레쉬없이 촬영이 가능해  허용해도 될 것이다.

획일적인 관료들의 사고 방식은 언제나 후진적이다.

최명희씨는  묵직한 몽블랑 만년필(잉크도 몽블랑이다)로 원고지에 한자 한자 정성 스럽게 글자를 새기듯 썼다.

그렇게 해서 12,000매의 원고가 탄생되었다.

"성보암" 서재.

성보 아파트 집필실을 그대로 옮겨 왔다.

                 

12시경 방문객이라곤 소풍온 어린이집아이들과 우리와 내가 사진 찍어준 분이 전부다.

남자분과 함께 오신 여자분은 정년이 멀지 않은 공무원으로  전주에서 새로 부임한 상사를 모시고 나왔다.

고급 공무원으로 보이는 분은 매우 겸손했고  덕분에 우리 부부까지 이곳 차실에서 차를 대접 받았다.

음식점이나 카페가 없는 곳이고 보니 이곳에서 통상 2,000원에 차를 판다는 여자 학예사님 얘기다.

 차라리 음식점과 매점이 없어 더 정결하다.

 

청암호의 맑은 물이 "혼불" 배경의 유일한 증거인양 봄볕에 찰랑였다.

꼬마들이 점심 먹으러 정자 그늘로 간 사이 우리는 남원으로 가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 유명한 남원 추어탕이 제격이 아닐까. 

지금은 조금 떨어진 곳에 서도역이 새로 건설되어 남아 있는 옛 서도역이다.

"혼불"에서 서울가는 강모가 이용했다는 서도역-자칫하다간 <혼불>과 박 경리의<토지>가 혼재되는 우를 범 할수 있다.

차단기가 이곳이 정거장이었음을 보여준다.

 

녹쓴 철길엔 가을의  흩날리는 낙엽이 제격일터인데  봄볕은 너무 찬란하다.

 

서도역 앞의 "서도 정미소."

소설은 소설일까 .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의 배경다운 배경을 찾고 싶었던 마음을 달래며 다소 황량한 땅을 떠나기로 했다.

매안 마을은 책속에 ,마음 속에 ,내 고향 마을처럼 늘 존재하는 것으로 족해야 했다.

최명희의 흔적을 .발자취를 따라 그녀의 살아있는 숨결을 느낄수 있던 행복한 여행이었다.

또 아내에게는 딸과 손자를 돌보느라  피곤한 사이 좋은 나들이가 되었을 것이다.

살아서 가보고  싶었던 곳의 리스트에서 또 한 줄을 지워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