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발칸반도 부부 자유여행(2011

코소보(Kosovo)의 실종자 사진( Photos of the misssing).-Pristina

Jay.B.Lee 2012. 1. 5. 08:20

 

사진: 실종자 사진이 붙어 있는 곳-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프리스티나(Pristina ),Kosovo

 

21.00 시.Podgorica에 막 도착한 프리스티나행 버스엔 행선지 표지가 있다.

울치니(Ulcinj)/Pristina

울치니라면 알바니아인들이 주로 사는 몬테네그로 영토로 알바니아와 몬테네그로 국경사이의 도시다.

차에 올라타자 알바니아계 남자들이 가득하다.

동양인 부부가 올라타자  호기심으로 눈들이 동그래진다.

 내 버스좌석에 앉아 있는 녀석에게 내자리를 내어 놓으라 했더니 모두 와~하고  웃는다.

"아차" 버스 표엔 좌석 표시만 있지 선착순 으로 타는거다.선진국이 아니잖아.

맨 뒷좌석 너댓개  남아있어  건장한 남자 차장에게 안사람이 뒤에 타면 어지러워 토한다고 하자 겁을 주자 중간 뒷자리 청년을 쫓아내고 자릴 두개 만들어 주었다.

이 밤버스가 꽉찬 이유가 무얼까.

여자 승객은  안사람까지 셋뿐이다

지적으로 보이며 옷을 잘 입은 단 한사람을 제하면 대부분 노동자 타입이다.

짧은 곱슬머리 ,거무튀튀한 얼굴,거친 수염들-하나 안심이 되는 건 알바니아계 사람들이 대부분 착하다는 정보 뿐이다.

7-8시간 운행거리에 버스는 휴게소에 자주 쉬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인사를 한뒤 버스가 휴게소에 서면 오르 내리며 앞뒤 옆 안면을 익혔다.

버스가 서면 모두 내려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는데 이곳에선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절대 남자가 아닌 것으로 간주됨이 틀립 없다.

버스는 산길을 굽이 굽이  달리는 것 같아 차라리 밖을 보지 않는 편이 나았다.

우리나라 사람 같으면 전부 눈을 감을 시간에도 버스에서 잘도 떠들었다.

버스 기사가 지루함을 덜기 위해 듣는 음악 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터키의 음악과 흡사한데가 있다.

버스가 간이 휴게소에 멈추자 앞자리의 승객은 차를 마시자 않겠냐고 내리면서 차마시는 손짓을 한다.

바람을 쐴겸 휴게소 매점에 들어가자 싸구려 자욱한 담배 연기가 가득해 뛰쳐 나오고 말았다.

글자 그대로 "포화 속으로"가 적절한 표현이다.

벽에 붙은 "금연"이란 표지가 무색하고 차를 나르는 종업원조차  입에 담배를 꼰아 물고 있었다.

또 애를 데리고 담배 연기가 가득한 매점으로 들어가는 여자는 무엇인지

밤 12시가 넘었는 데도 도착한 승객들에게 화장실 사용료를 받기위해 추운 날 나와 있는 여자.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국경에 도칙하자 신분증으로 대체하는 사람들외 여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몇 안되었다.

마케도니아로 가기위해 Transit 하냐고 출입국 직원이 물었다

오늘 머물지 않고  떠나는 한이 있어도 일단 하루 머물 예정이라고 하자 입국 도장이 찍인 여권을 가져다 주었다.

마케도니아로 가기위해 환승 할 수 있다는 버스 정류장은 깜깜 했다.

어둠속 추위에 떨며 기다리진 못하지

마지막 휴게소인양 내린 사람들은 주섬  주섬 과자 봉지들를 사가지고 올라왔다.

푸리스티나에 가까워지자 승객들은  중간 중간 어두운 마을 입구에 내려 버렸고 차에는  몇사람 남지 않았다.

내리면서 스넥 과자 봉투 한개를 자고 있던  안사람에게 주라고 선물하고 가는 앞사람.

7시간여 달리며  잠시 얼굴로 나눈 정이다.

악수를 하며 작별하는 그의 손이 매우 거칠었으나 따듯했다. 

집을 찾으며 아이들을 위해 과자를 사가는 아버지들.

오래전, 50여녀전  우리나라 아버지들의 모습이었다. 

형편이 나은 몬테네그로 "울치니"로 돈벌러 갔다 오는 걸까.

사진; 시내의 코소보 항공사. 오른 쪽 그림은 코소보 국기다.

 

날이 조금씩  밝아오자 새로 난 도로와 이곳 저곳 공사현장이 보였다.

전쟁으로 파괴된 이곳을 외국 원조로 재건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한다.

마침내 도착한 Pristina 버스 터미날.오전 5시다.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버스 터미날엔  대합실 마저 한기가 스며든다.

우선 안사람과  일찍 문을 연 커피샵에 들어가 따끈한 커피부터 한잔을 마시고 정신을 차려야 했다.

밤버스에서 충분히 잠을 자지못해 몽롱했다.

카페안은 여전히 담배 연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대합실 마저 추워 도리가 없었다.

안사람을 카페에 남겨두고 마케도니아 Skopje행 버스 시간과 짐을 맡길수 있는 곳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우선 급한데로 정보를 얻자 대합실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대합실엔 개가 한마리 어슬렁거리고 걸인인지 정신 나간 여자인지 대합실 중간에 서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나온 몇명의 젊은이들 조차 표정들이 음습하고 어둡다.

Kosovo 란 나라자체가 과거 인종청소를 연상시켰는지 불안한 마음에 아내는 빨리 이나라를 떠나고 싶어 했다.

더우기 흘끔 흘끔 쳐다보는 사람들이 싫었나 보다.

호기심으로 봐주어도 좋으련만.

나는 Kosovo가  한번 오기 힘든 곳이라  마케도니아 Skopje로 떠나기전  Pristina 를 잠시 둘러 보고 가자고 아내를 설득했다.

참고로 대부분의 외국인을 환영하고 있는 Kosovo는 여행시 비자가 필요없다.

단지 코소보에서 세르비아로 국경을 통과하여 세르비아로 갈 경우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는 정보가 있다. 

 

 

세르비아 중심부

 1962-1997이란 짧은 생애를 살고간 그는 누구인지.전쟁영웅인가.코소보 분리 독립 투쟁에 앞장섰던 인물인가.

뒤에 보이는 벤츠 트럭.프리스티나는 좋은 외제중고차가 많다던데 훔쳐 코소보로 팔아넘긴 차들이 많다는 소문이다.

마더 테레사 거리는 아침일찍 물차가 거리를 쓸고 간뒤 깨끗해졌다.이곳은 파리처럼 자동차 살수기 물로 거리를 청소한다.

 

마더 테레사  동상.

세상의 천대를 받아온 알바니아인들에게 자랑스러운 희망이요  횃불이라 세운 동상이라 믿는다.

세상에서나 영화에서나 소설에서 알바니아인들은 항상 부정적 이미지로 그려진다.

우리나라도 가난한 시절 그런 면이 있었다.

007 제임스 본드 씨리즈에도 한국인은 태권도 무술로 사람이나 죽이는 악당으로 등장하곤 했다.

최근 리암 닐슨이 출연한 영화"Taken"에서도 알바니아인들은 인신매매범으로 묘사된다.

유럽의 소말리아라는 알바니나가 잘 살아야 전세계에 살고 있는 알바니아인들의 명예가 회복될일이다.

 

1999년부터 행방불명된 희생자들의 사진이 붙어 있는 곳.

 

담벼락에 매어 놓고간 조화 한송이

누구의 아버지요,동생이요,친구요 ,아들이었을 사람들-민족과 종교의 분쟁속에 희생당한 사람들.민족이란 무엇이며 종교란 무엇인지.

1998년 3월 코소보의 알바니아 분리주의 반군들이 세르비아 경찰을 공격하며 시작된 코소보 사태.

1999년  코소보내 세르비아 보안군,경찰,준 군사 조직인 민병대에 의해 자행된 인종청소,집단 강간,고문, 약탈로 알바니아계 만여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85만명의 난민들이 마케도니아,몬테네그로 흩어졌다.

누가 이땅의 주인인가.

알바니아인들은 그들대로 연고를 주장하고 세르비아인들은 오스만 투르크와 함께 이주한 알바니아 인이라고 주장한다.

Kosovo는 세르비아인들에겐 종교적 성지요,네바냐 왕조의 중심지였으며 1389년 6월9일 Kosovo "Polje"(검은 새의 평원)은  오스만 투르크와 전쟁시 라자르왕과 10만 세르비아 병사가 몰살당한 곳이다.(오스만 투르크 무라트 왕도 전사했다)

배경에는 1989년 세르비아의 성지에서 세르비아의 말코세비치는 코소보 전쟁 600주년 기념사를 통해  코소보내 세르비아인들에게  민족주의를 부추기며 비극은 시작되었다.

2008년2.17일 코소보 독립 선언.

대한민국은 2008.3.27일 독립을 승인했다

많은 모스크들이 이곳 주민들이 대부분 무슬림이다. 소수의 동방정교와 로마 캐도릭이 있다.

 

 

 

Faith Mosque.

Sultan Mehmet Faith Mosque

              

터키의 협력으로 모스크가 재건 되었다는 현판이다.

전화기 판매소의 LG,삼성 이름도 이곳까지 이름을 올렸다.

Clock Tower

 시계탑옆은  학교다.

 

코소보 무슬림에 의해 많이 파괴 되었다는 교회.세르비아인들이 떠난뒤 방치된 정교회

잠시 돌아보고 다시 온 프리스티나 버스 터미날.중심가에서 택시 요금 3-3.25유로(미터제)다.

안개가 서서히 거치며 터미날이 모습을 들어내자 우리는 다시 오지 못 할 프리스티나를  떠났다.

 Pristina-자고 가지 못해 미안한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