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6월 논산 훈련소6주 훈련후 금마 후반기 교육 (경기관총 교육)을 받고 배출대에서 206보충대(강원도 전방지역 배치),201보충대(경기도 일원 배치)가 불리워 나가고 수도 경비 사령부,육군 본부 ,인천유류창등으로 동기들이 다 불리워 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초초한 우라에게 늦게 불리울 수록 좋은 곳이라고 기간병이 위로해주더니 전출 받은 곳이 소사(현재 부천) 33사단이다.
지금은 해체된 사단으로 두개의 번개 표지 견장이 33사단의 상징이다.
33사단은 68년 1.21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 하기위해 북한 특수부대 무장 공비의 청와대 습격이후 소사 33 예비사단은 준 전투사단으로 변해 있었다.
그네들의 보행속도를 따라 잡기 위해 다리에 모래 주머니를 차고 구보및 행군을 한다는등 훈련이 너무 심해 자살한 사병도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우리동기 몇명이 사단 본부를 거쳐,연대본부로 다시 대대를 거쳐 군자면 성곡리(지금은 안산시가 되어 흔적조차 없다) 해안 경비부대인 중대에 도착하기까지 단 3일 이 걸렸다.
예비 소대에 배속된 며칠후 야간 취침중 갑자기 "비상 "이 떨어져 실탄과 수류탄을 지급받고 지정된 능선위에 신속히 배치 되었다.
이등병인 나는 고참 상병을 따라 칼빈 M-2(연발 소총)에 탄장을 끼우고 실탄을 장진한 채 경사진 어두움속을 응시하며 긴장을 풀지 못했다.
아침이 밝아 오자 해안 헬기장에는 헬기프로펠라 소음이 요란히 들리더니 6관구 사령관,사단장등 총 별 30개가 "떳다"고 했다.
누가 심심했는지 장성들의 별수를 합산해본 모양이다.
비상이 떨어졌던 것은 한밤중 몇발의 총성 때문이었다
해안가 사구방향 나무 덤불사이에 에 누가 숨어 있는 것같아 야간 동초(보초와 달리 항상 움직이며 경계를 선다)근무중이던 상병이 사격을 했다는 것이다.
총성소리에 벙커에서 나온 분대장은 소대장에게 보고 했고 ,중대에선 대대로 ,대대에서 보고 받은 연대와 사단에선 5분 전투부대등 예비 부대가 총출동하여 서울로 향하는 예상 침투로를 곳곳에서 차단 하고 있었다.
한해전 북한 무장 공비 침투 사건으로 군대에선 침투 간첩에 그만틈 예민해 있었다.
모래 사장의 발자욱과 주변을 샅샅히 조사하고 간 다음 사격을 한 상병은 소환을 당해 부대 이곳 저곳에서 심문을 받고 헌병대까지 불려가 오발 여부까지 혹독한 조사를 받은 다음 2주만에 돌아왔다.
그후 나는 해안 소대로 전출되어 마침 그상병과 한조를 이루어 경계근무를 서던 어느 날 많이 친해진 그는 내게 고백을 했다.
사실은 오발사고 였다고.
오발 사고라고 애기하는 것이 겁나 분대장에게 거짓말 한것이 그 많은 병력이 출동하고 2주간 곤욕을 치룰지는 예상을 못했던 거다.
부대엔 저녁 8시 이후에 해안근처에 얼씬 거리는 것은 수하없이 무조건 사살하라는 지침이 있다.
그는 사단으로 불려 들어가 조사를 받으며 이왕 이렇게 된 것 검은 사람같은 물체가 있어 사격했다고 끝까지 버티었다고 했다.
사단에선 그를 영창에 쳐 넣을 근거는 없어 돌려 보내고 만 것이다.
그냥 오발 사고였다고 분대장에게 보고하면 소대장 중대장에게서 나중에 주의 경고만 받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분대원이나 소대원들에게 오발이나하는 "고문관"으로 보이는 것이 싫어 거짓말 한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어 전 해안부대 비상에 막대한 병력이 출동하게 된 것이다.
막상 조사에 임해서는 자기 방어를 위해 거짓말을 합리화 하기 위해 열심히 거짓말을 둘러대야 했다고 했다.
그 상병 때문에 그 날 밤 몰래 나와 동네 처녀와 데이트를 하던 통신병은 사단 수색대에 잡혀 혹 해안선 근처에 가지않았나 조사부터 시작 곤욕을 치룬후 근무지 이탈죄로 몇주를 영창에서 지내다 헬슥한 모습으로 돌아 왔다.
어둠속의 두사람을 보고 즉시 사격을 가했다는데 그는 기겁하고는 < 총쏘지마 !총쏘지마!> 소리 소리 지른 덕에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이 다행이었다.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뻔한 거짓말로 일관하는 사람들을 보면 군시절 당시 어리석은 그 상병이 떠오른다.
"Honesty is the best Policy"-정직이 최선임을 학교에서 열심히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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