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사는 이야기

데이비드 더그라스 던칸의 This is War- 6.25전쟁 기록사진

Jay.B.Lee 2011. 6. 24. 20:07

서울 시가전

 

아버님은  내가 엄마등에 업혀  부산으로 피난을 가시는 아버님께 손을 흔들었다는데 6.25 전쟁 발발시 29개월이 된 나로는 기억이 없다.

공무원이셨던 아버님은 충북 영동읍내에서 40리 떨어진 고향집으로 가족을 피난을 보내고 할머니를 모시고 큰아버님과 함께 부산으로 떠나셨다. 

생이별이 될 수있는 순간이어서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내가 35세의 아버지였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

폭격기의 굉음에 너무 놀라 어머니께서  평상시 일러준대로  소나무 밑에 숨어 무서워 울던 기억이 영화의  한장면처럼 떠오른다.

고향 소나무숲-우리가 비석밭이라 부르는  그곳엔 언제고 무서움에 질린  세살짜리인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

영동읍으로 돌아와  경부선 철도에선  군수물자를  싣고 북으로 북으로 올라가는 기차를 보며 자랐다.

미군부대,구세군 병원,C 레이션-허쉬초코렛,바둑껌에 대한 기억이 잔영처럼 남아 있다

1953년 7월 ,경부선 밑에 있던 "동진 유치원" 다니던 시절 휴전이 되었고 1954년 4월, 폭격에 불타 학교 건물조차  없는 학교에 입학했다.

이수 초등학교.

임시로  흙벽돌로 지은 교실엔 창호지로 바른 창문 하나와 책상 하나없이 몇평되지 않는 바닥엔 가마니가  깔려 있었다.

 1학년인 우리에겐 그런  교실조차 없어 등나무 그늘,운동장 ,비가오면 출입구 땅바닥에 주저앉아 공부를 해야했다.

전쟁의 참혹함이 무엇인지도 모르는채  희뿌연한 작은 흑칠판에 선생님(김건영 선생님)이 분필로 써주신 글자 "아버지" "어머니"등을 힘차께 따라 읽었다.

 

 종전기자 데이비드 더그라스 던칸의 한국 전쟁 사진 기록집이다.

 

 

 

 

 

 서울역앞 시가전

 

 

 한국의 혹독한 추위는 그네들에겐 또 하나의 적이었다.

 후퇴하는 미군 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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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장하고 있는 한국 전쟁 다큐멘타리 칼러 필림이다.

맥아더 장군, 근대 역사 학자들은 그에 대한 평가가 조금씩 다르나 우리에겐 크나큰 은인이었던 것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