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와 정약용이 유배를 가지 않았다면 평범한 벼슬아치로 지냈을 거란 얘기를 읽고 웃음이 났다.
남의 고통이 우리의 행복인가
우리 후학들은 두 분이 오랜 귀양살이로 인해 고통 속에 많은 것을 이루어 내었음을 안다
추사는 입이 짧아 반찬 고향에서 가져다 먹을 정도로 까다로웠다 한다.
그렇게 멀지 않았던 과거에도 그렇했는데 당시 제주의 사정을 보면 뭐 제대로 된 반찬이 있었겠나.
해외여행 가며 한국 음식 , 반찬 가져가는 사람은 성질이 더럽고 까다롭다 할 것인가
한국 국가 대표 태권도 선수가 하루 천 번씩 발차기 연습을 한다는 얘길 들었다.
일류가 되기 위한 과정은 '구도의 길"과 같다.
추사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한다.
"내 글씨는 비록 말할 것도 못되지만
나는 70 평생에 벼루 10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땅 붓으로 만들었다.
팔뚝 밑에 309개의 옛 비문 글씨가 들어 있지 않으면
또한 하루아침 사이에 나오기가 어려운 것이다.
가슴속에 오천 권의 문자가 있어야 비로소 붓을 들 수 있다"
추사 김정희
새해 들어 계획이 무너지고 실행이 힘들 때 가슴에 새겨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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