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 ·산책

논산 명재고택,

Jay.B.Lee 2017. 4. 26. 21:44


사진: 명제 고택 전경



충남지역에서 오래동안 가보고  곳은 공주와 논산이었다.

서울서 당일로 다녀오기엔 피곤하고 1박 2일이 적당해 공주 ,논산을 거쳐 영동 동생에게서 자기로 했다.

공주를 거쳐 논산에 도착하자 '69년 징집받아 밤늦게 도착한 연무대가 떠오른다.

명제 고택에 도착하자  문화 해설사가 나와 멀리서 찾아온 우리 부부를 안내해 준다고 했다. 

논산이 고향이라  명재 고택해설에 앞서 논산에 한참 딸기 축제가 진행중이라며 돌아가는 길에 시내에 꼭 들려 보라고 권했다.

고향 사랑이 몸에 베었다.

직장 후배중에 논산출신이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자 고향에서 딸기 농사를 지으며 억대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던 동생이 내려와 딸기 농사 짓기를 권했다. 

후배는 안내에게 낙향하자고 했다가 아내가 반대한다고 포길했다 했다.

서울 출신인 부인이 농사를 반대한거다.

퇴직후 동대문에서 장사까지 함께한 부부였는데 부인의 건강을 생각하면 농사란 무리다.

지금은 베트남에 나가 봉급 쟁이 생활을 다시 반복하고 있어 잘지내는 편이라 다행이다.

전날 논산명제 고택에 전화를 해 방문이 가능한지 물어 보았다.

여주인은 방문해도 되며 단지 고택에 사람이 살고 있어 구석 구석 마음대로 볼수 없으나 문하 해설사에게 요청하면 그래도  자세히 안내해줄거리고 친절히 안내해 주었다.

고택에 도착 문화 해설사를 만나 통성명을 한뒤 그분이 나와 같이 같은 해 한달 차이를 두고 논산훈련소에 입대한 걸 알았다.

그분은 귀향 조치를 받아 나중에  다시 지원입대해 예비사단 훈련소를 나오셨다고.

군대얘기로 한참 얘길하다 고택안내를 받았다.


위치: 논산시 서성면 노성 산성길 50

과거 윤증 고택이라 부르던 곳이다. 

지금은 어른 이름을 부르는 것같아 호 명재를 다서 "명재 고택"으로 부르기시작했다고 한다.

윤증(1629-1714 )은 서인 소론 의 영수다  

송시열의 문하생이기도  했다.

송시열에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비문을 부탁하자 강화도에서 병자호란시 자결하지 않고 혼자 몸을 바져살아나온  아버지를 조롱하는 비문을 써준 송시열과는 절교했다.

지금 돌이겨 보아도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사랑채로 사랑채 안에 미닫이와 여닫이 문이 결합된 특이한 옷장이 있다. 

또 안채에서 사랑채에 밥상을 들여놓기도 좋고 구조다 .

명재고택은 타인을 세심히 배려한 특징이 있는 고택이다.

 경상도 세도가들의 집과는 달리 크지 않으면서 곳곳에 대목의 솜씨가 빛나고 주인의 섬세한 인격이 보이는 지혜가 담긴 집이다.

왼편으로 연못이 있다. 


논산 명재 고택에는 부엌이 둘이었는 데 연기가 집안에 들어가 끄름이 기는 걸 막기위해 칸막이를 하였다.




뒤안에서 내려온 빗물이 빨리 흐르도록 물길이 아래로 넓고 본채 옆은 창고로 사용했던 곳이다.

창고를 본채와 평행으로 짓지 않고 낮게 비스듬히 지어 본채에 대한 채광을 고려했다.

 일꾼들이 드나들며 물건을 나르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아래를 넓게 했다.

안채에서 대문과 사이에도 캄막이겸 중문이 있음에도  아래에 공간을 두어 안채에서발 아래를 볼수있게하여  방문객의 신분을 짐작할 수있게 했다.

대청이 상당히 넓었는데 제사를 지내고 집안 행사를 하던 곳이라고 한다,


수백년된 느티나무와 장독에 눈이 쌓이면 사진찍으러 사람들이 온다고 한다,

눈이 덮힌 겨울을 상상하긴 어렵지 않았다.

밥짓는 연기가 휘날리까봐  가난한 이들을 배려하여 불편함에도 굴뚝의 높이를 낮추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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