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에르주름의 "라라 파샤 자미"
여행하며 행복한 순간은 언제일까.
편안한 잠자리,맛있는 음식,즐거운 사람과의 만남들도 행복하다.
난방기(라지에타)를 틀어주는 숙소에서 그간 밀린 빨래(가루비누보다 빨래 비누가 편하고 좋다)를 할 때다.
여행하며 가난한 자가 되어 가방의 옷들이 마치 전재산인양 끼고 다니며 밀린 빨래를 모두한다.
남방셔츠, 양말 ,내의등
라지에터위에 올려놓고 자면 가습기 역할도 되거니와 아침에 뽀송뽀송한 옷들을 모두개어 가방에 넣을 때 행복감이 든다.
옷 널곳이 부족하면 침대위 작은 백열전구 갓위도 훌륭한 건조대가 된다.
모두 마른 옷으로 준비되면 몇일을 편하게 지낼수 있다는 안도감이 행복감으로 변한다.
"시바스"를 떠나 7년전 머문적 있는 보수적인 도시 "Erzurum"오토가르(버스 터미날)에 도착했다.
아타투르크 대학에서 멀지 않고 터미날엔 축쳐진 쥐색빛의 낡은 단벌 양복을 입은 직원이 손님을 호객하던 과거의 오토가르가 아니었다.
도시 외각에 자리한 새 오토가르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로 향하며 과거 머문적있는 "Dilaver" 호텔로 가자고 했다.
가는 도중 깔끔한 작은 호텔을 발견하고 숙박비가 쌀것 같아 택시를 세웠다.
택시비 39리라(19,500원 ).
비싼 터키의 택시비다.
작은 호텔의 지배인은 나에게 프랑스어를 할줄 아냐고 묻는다.
자신이 프랑스 건설 공사시 노동자로 가서 일한적있다고 한다.
영주권은 신청 할 수 없었다고 .
숙박료는 아침 식사 포함 50리라(25,000원)로 아침은 예상보다 훌륭했다.
첵아웃후 짐도 잘보관해주고 믿을만한 친절한 택시기사도 불러주고 그 마음이 간밤의 라지에터만큼 따듯했다.
기사는 40라리 미터요금에서 30만 받았다.
과거 가본적 있는" 춤후리에트" 거리를 따라 성채와 치프테 미나레 신학교까지 가보기로 했다.
아침 일찍 8시반부터 가게의 반수가 열고 있다.
터키인의 부지런함은 알아줄 만하다.
오르투석으로 만든 반지와 페탄트들이 여러 디자인으로 눈길을 끈다
흔해 보여도 다른 곳에선 찾기 어려운 에르주름의 명산품이다.
오르투석으로 만든 "테스비(염주)"가 많다.
숙소에 돌아오며 아내를 위해 페난트를 하나 샀다.
가방 무게와 관계없는 물건이다.
긴 여행이어서 무게가 나가는 물건은 망서리고 망서리게 된다.
디자인 과 장식에 관계없이 무게로 파는 것이 일반관행인 모양이다.
저울에 단 페난트를 60리라 달라는 것을 목거리 줄없이 55리라(27,500원)에 샀다 .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첫손님인 내가 그날의 시작인 셈이었다.
아침부터 너무 깎아도 ,사지않아도 실례가 된다.
실지 회복운동시 터키군과 점령군인 외국군(영국 .프랑스)과의 전투를 묘사한 부조같은데 보수가 전혀하지 않았다.
어제 저녁 오토가르에서 시내로 오며 통과한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과 새로 건설중인 청소년 올림픽 경기장, 넓다란 도로등과대비 옛날의 중심도로는 변함이 없다.
지나는 사람들은 시바스 사람들에 비해 인물들이 빠지고 얼굴들은 몹시 어둡다.
1179년에 건설한 "울루자미"
에르주름 성채로 주변 정리가 되자 않아 어수선하다. 깨끗한 방향으로 사진을 찍었다.
성채 밑으로 자리한 옛 상가 건물들.
서울로 치면 인사동으로 보면 된다.
이길을 쭉 따라가면 터키 깃발이 나부끼는 도로 입구에 이른다.
라라파샤 하맘
전에 가보지 않은 위길로 가보기로 했다.
아직 이곳까지 개발의 손이 미치지 못했다.
옛 건물 그대로여서 파란 건물을 지나며 들여다 보았다.
다섯명의 직원이 빵을 굽고 있었다.
그곳도 처음 보는 얇은 빵을 .
빵집에 들어서자 검댕이 손으로 악수를 청한다.
한명은 반죽을 떼고 그 다음 공정으로 그 한줌의 반주 덩어리를 기계로 납작하게 호떡처럼 만들어 옆사람에게 준다.
호떡 같은 반죽을 한바퀴 돌려 순식간에 넓게 만들어 화덕안에 붙이고 순식간에 꺼낸다.
소년은 나온 빵을 차곡 차곡 쌓고, 다른 소년은 20매씩 비닐 봉지에 넣는다.
거래처로 배달해야 한다.
빵굽는 주인은 인심좋게 한장을 주며 먹어 보란다.
종이장처럼 얇아 부드럽고 고소하다.
식사용으로 언제 쓰는 빵일까.
알메니아의 송곳으로 찌른 것같이 구멍이 숭숭 뚫린 " 걸레 빵"과도 다르다.
쉴사이 없이 컨베어 벨트 돌아가듯 바뿐 와중에 화덕을 찍으라고 자릴 비켜준다.
미안 할 지경이다.
뜨겁게 달아 오른 화덕 .이렇게 빵굽는 방식이 얼마나 오래된 것일까.
선하게 생긴 기술자가 포즈를 취해주었다.
찾아온 외국인을 있는 그대로 친절히 대해주어 얼마나 고마운지 .
그으름 묻은 손으로 주는 빵도 서슴없이 먹었다.
노동은 신성하다.
1253년 셀축 슐탄이 만든 치프테(쌍둥이의 의미) 미나레 신학교.
대대적인 보수를 하고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슐탄이 죽은 딸을 슬퍼하며 만들었다는 무덤
커피를 마시며 잠시 스케치.
전에 있던 골목길도 ,나에게 차를 대접해주던 찻집도 모두 철거되어 없어지고 이집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60여세는 족히 되어 보이는 노인이 안으로 들어와 구경하라며 안내한다.
자기 조부가 지은 집이라고 한다. 무허가 사설 민속 박물관인 셈이다.
집 방문시 남자와 여자가 두드리는 사이즈가 다르다.
오스만의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의 옛 가옥에도 같은 형태로 남아 있다.
밖에서 보는 건물 규모보다 안이 무척 넓다.
못하나 박지 않고 이음새로 연결하여 올린 목조 천정
사진의 인물은 주인의 할아버지
부친이 사용했다는 사냥총과 칼.
안내해준 노인의 청년시절.
저 많던 머리털은 다빠지고 검댕이 눈섭마져 흐미하다.
청춘시절은 지나가고 그의 모습에서 나자신을 본다.
나올 때 보니 입구에 작은 기부금 함이 놓여있다.
10리라(5,000원)를 넣어주었다.
문화 센터와 찻집,선물가게가 있는 복합 건물로 7년전 당시와 마찬가지로 여전했다.
"테부리즈 카프"
이곳을 방문하여 네스 커피(우유넣은 커피를 이름)를 주문하고 나중에 돈을 내려하자 손을 절레 절레 흔들며 손님인데 그냥 가란다.
찻집,선물 센터 .
여럿이 조용히 차를 마시며 담소할 수 있는 방들이 여러개 있다.
오른쪽은 무료로 커피를 준 분이고 왼쪽은 총 지배인이다.
미국배우 섹시가이 "알렉스 볼드윈"을 닮았다고 하자 무척 좋아 했다.
둘다 손가락 네개를 펴고 있는데 무슨 뜻일까?
7년전 아타투르크 대학생이었던 Seda와 Emrah가 안내했던 "에르주름 에벨레르"
내부는 마치 민속 박물관처럼 갖가지 골동품및 옛 민속 물품으로 가득하다.
옛 가옥을 이용하여 지은 카펠 차와 음식,물담배까지 즐길수 있다.
전에는 여자 지배인이 있었는데 지금은 남자다.
외국인인 동양인을 보기가 어려운 그네들이라 나를 보고 같이 사진을 찍자던 부부.
이 방이 맞을 것이다.오래전 방문시 이곳을 촬영했다.
점심식사로 주문한 "귀베츠"
질그릇에 고기.감자,고추(Green),토마토를 넣어 오븐에 구운 음식
7년전과 똑 같은 자리에 앉았다.
마치 타임 머신을 타고 온 듯하고 '데쟈부"처럼 반복하는 듯한 나의 삶이다.
식사후 쉬면서 스케치한 카페.
행복한 시간이었다.
2B연필로 그려 오래 가지고 다니는 동안 모두 번졌다.
종업원에게 부탁 ,몇장 되지않는 나의 사진을 남긴다.
돌집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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