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사는 이야기

안전 불감증에 걸려 사는 사람들

Jay.B.Lee 2013. 7. 22. 06:10

또 안면도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아이들이 죽었다. 

 자식 잃은 그 부모의 그 비통함을 어떻게 얘기 할수 있을까?

이제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라는 한 아이의 어머니  한마디가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러한 인재들이  발생할 때마다 답답한 노릇이다.

모두가 무지에서 온다.

안전이란 만에 하나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모든 상황을 가정하여 대처해 놓는 일이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

뭐 그렇게 까지 신경을 쓰냐며  대충하는 것이 대범한것이 아니다.

소화기를 비치할 때 혹시하여 화재를 초기에 잡기 위해 놓는 것이지 장식용으로 두지 않는다.

극기훈련도 문제다.

 평상시 운동도 않던 학생,회사원들을 데려다가 하루 아침에 극기가 되는지

 설악산 대청봉에 갑자기 끌고가 무릅이 나간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지금은 과거 유행병처럼 번지던 극기 훈련이 좀 시들해져 다행이다.

회사에 첫 입사해서 혹은 회사가 시키니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험난한 훈련을 감수해야 했다.

국토 행군이다, 해병대 훈련이 정신과 육체의 단련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고려해보아야한다.

25년전 캐나다오타와 White River 에서 중2짜리 아들과 레프팅을 했다.

체중 40키로 이하는절대로  탈 수 없었다.

동강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급류가 여러곳이어서 위험한 곳에서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바위위에 로프을 가지고 대기했다.

  카약 한대는 바로 사고 가 예상 되는 지점에 대기하고 있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전신 고무 옷과 안전 조끼를 입었다.

하나도 안전,둘에도 안전이다.

며칠전 노량진 배수지 수몰 참사사고와 맞물려 우리나라의 재해의 많은 부분이 인재에 있음은  부끄러운 일이다.

오래전 불에 타죽은 어린이들  콘테이너 사고도 기억난다.

국민 소득에 비해  우리들의 의식은 한참 아래 수준에 머물러있다.

이 세상은 안전을 무시한  대범해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까다로운 사람들이 발전 시켜나가는 것임을 알아야한다.

교회 건물 아래 태권도 도장이 있다.

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차의 타이어 4개가 무늬가 하나도 없는 것을 발견하고  태권도 도장을 방문했다.

타이어가 곧 터질수 있다고 경고하고 타이어가 터져 아이들이 사고가 나면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일은 고사하고 그 길로  도장 문을 닫게 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사고가 나면 수십만원의 타이어 비용이 문제가 아니다.

내 협박이 효과가 있었는지 관장은 즉시 타이어를 교체했다.

 

전에 우리 아파트에 큰 교회 목사가 살았다.

어느날 목사의 자동차 타이어 4개에 무늬가 전혀 없는 걸 발견했다.

차에 메모를  붙여 놓았다.

"타이어가 터지면 귀중한 남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자기가 죽은 것보다 엉뚱한 사람들이 항상 피해를 입는다.

사실 이렇게 붙이고 싶었다.

"남의 영혼을 구원하기전에  남의 생명을 빼앗을 수있습니다.타이어를 빨리 교체하십시요"

두어 주일후 목사의 차가 중형에서 중대형 신차로 바뀌어져있었다.

 익명으로 한 나의 조언이 확실히 효과를 보아 장로들이  차제에 중대형 차를 사주었나 보다. 

목사도 장로들도 안전 불감증이긴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에서 모든 안전 문제가 메뉴얼화되어 있어야 선진국 사회로 진입할수 있다.

문화없이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안전 의식의 수준이 낮다면 선진국이 되지 못한다.

이번 사고를 보면 규모만 다를 뿐 과거 성수 대교가 무너진 것이나 무너져내린 삼호 백화점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오로지 사람들을 귀중한 생명이 아닌 돈의 대상으로보는데서 사고가  도사린다. 

이젠 적당히, 빨리 빨리 ,괜찮아라는 말이 한국사회에서 사라져야할 말들이다.

사전에만 남고 아주 소멸된다해도 아쉬움 없는 그런 시대에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