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세번째 터키여행 (조지아·이란)-2012

이란 마쿠(Maku)에서 터키 "도우 베야짓"으로 가다.

Jay.B.Lee 2013. 2. 5. 06:40

 

사진:이스파한  Kaveh 버스 터미날 Iran Peyama  전용 대합실.

 

버스 터미날에 도착하자 청년이 뭐 도와드릴까 묻는다.

 타브리스행 버스표를 사고 싶다고 그리고 가격이 얼마인지 ,몇시간 걸리는지 ,승강장은 몇번이지 물어 달라고 했다.

Iran Peyma 버스표(19만 리알:7,000원)를 손에 쥔뒤 그와  잠시얘기를 나눈다.

고교 2학년생이다.

옆에서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흐뭇한 눈길에서  부성애를 느낀다.

누구에게나 자랑스러운 아들이지만 외국인을 도와 선을 베풀었다는 것, 아들이배운  영어를 사용하며 외국인과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아버지에겐 자랑이요 가르킨 보람이다.

이맘 광장바자르에서도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소녀가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소녀에게 한참이나 영어 연습 상대가 되어주었는데 그 옆에서 딸을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부모를 생각해서였다.

지긋이 미소를 짓고 있는 부모들에게 작은 기쁨과 행복을 선사하고 싶었다.

버스표를 산뒤에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편의점에 두어개 있는 탁자에 앉아 쉬자니 옆좌석 청년이 말을 건다.

Oil 회사에 근무한다는 그는 현재 봉급으로 살기 힘들어 Two Job을 가지고 일한다 한다.

 스킨 스쿠버 다이빙 강사로도 뒨다고.

 회사에선 30년 일해야 겨우 300불 정도 받는다며 그는 누가 들을까 조용조용 목소리를 낮추었다.

나는 그들의 주택구입 사정을 알고 싶었다.

시내 변두리 Tow Bed 아파트는 보통 만불 정도 간다고 한다.

그는 다른 이란인과 달리 행복하지 못한 것 같았다.

석유 회사에 일하면서도 작은 봉급을 받아 살기 어렵다니 타국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다.

진지하게 얘기하던 그는 버스 탈 시간이라며  사양하는 나에게 우유와 과자를 안겨주고 악수를 나눈뒤 일어섰다.

Naeim-그의 이름이다.

버스출발 시간이 가까워오자  내가 탈 버스의 전용 대합실로 갔다.

그 곳에서 옆자리의 청년과도 얘기를 나누었는데 더듬 거리는 영어로 그는 금관계 사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금을 두바이에 팔고있다고 한다.

그는 테헤란으로 가서 북쪽 고향으로 간다며 내게 기념으로 준다며  이란에서 보기힘든 빳빳한 1,000리알 지폐(35원상당)를 주었다.

 나는 기왕이면 이름까지 적어 달라고 했다.

그의 이름은 Ahmad Ardib이다.

그는 내가 찬 검은 Seiko시계가  멋있다고 했다.

지난 여행중 고장난  스와치 시계를 버려버리고  이번 여행을 나서며  인천 공항 면점에서 255불에 구입한 것이라 선물로 줄 수가 없어 유감이었다.

대합실 고속 버스 회사 직원들은   꼭 해군처럼 하얀 제복에 금태 견장에 하얀 모자를 썼다.

 버스 회사에서 입기엔 너무 세련된 유니폼이라   오히려 우스광스럽기까지 했다.

버스 출발 15분전  자리에서 일어나려하지 제복의 직원이 더 앉아 있으라고 제지한다.

출발 5분전에 일어나도 더 앉아 있으라는 손신호다.

타브리스행 승객인 나는 완전 그에게 장악되고 있었다.

이란의 버스 시스템은 이랬다.

선진국이나 터키처럼 미리 짐을 다 싣고 정해진 시간에 버스가 출발하는  것이아니다.

정해진 시간에 버스가 오면 그때 부터 승객짐을 싣기 시작하고 20여분이 지나 버스가 출발한다.

그 점은 타브리스에서 마쿠행 버스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이란 승객은 이것이 이란에서는 正常(Normal)이라며  옆에서 불평겸 부끄러움을 토로했다.

 

 

 

 

버스 대합실의 LG TV

삼성TV

 

 

 

사진:타브리스에서 이란과 터키 국경 마을 "마쿠(Maku)까지 운전한 기사.

 수입해온 중고 벤츠버스로 족히 15년은 넘어 보였다.

유리창으로 달리는 차밖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앞좌석을  배려해준 친절한 기사 아저씨.

 

이스파한에서 타부리스까지 밤새  13시간을 달렸다.

이곳 저곳 정차한 밤의 휴게소는 기억에서 희미하다. 

버스에서 자며 화장실을 다녀오고 13시간 내리며 오르며 기다리며 낯익힌 같은 버스 승객들과도 이별이다.

타브리스버스 터미날에 새벽에 내려 시내 숙소로 가기위해  택시를 잡았다.

하나,둘.셋-끌낭과 의료기기 가방,이스파한에서 산 카핏 가방을 확인했다.

택시로 타고 시내에 들어서자 이 건조하고 바싹마른 도시에 뭐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열세시간의 버스에 지쳐 하루 쉬어 가려던 계획을 바꿔 버스터미날로 다시 가지고 했다.

불확실성을 잡는 것보다 확실한 터키로 먼저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본능에 따르고 말았다.

영어를 못해  의아해 하는 기사에게  다시 버스터미날에 도착하여 합의 했던 택시 요금의 두배를 주자 군소리가 없다.

터키로 가는 버스를 찾자 영어를 할줄 아는 분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 터키로 가려면 터키 가는 버스는 없고 마쿠가지 가서 국경을 넘으라고 한다.

나를 데리고 버스표 매표 창구로 데려가 도와준다.

일단 버스표를 사자 안심이 되었다.

사무실 밖등 나오자 버스를 타러가며  멀리서 활짝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남녀 청년3명.

이 나라에 나를 아는 사람이 있다니-가만히 보니 엊그제 이스파한 이맘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화장실에서 이를 닦고 고양이 세수를 하곤 정신이들자 배가 고파온다.

아침을 파는 곳이 없을까 문을 연 식당에 들어서자 음식을 준비하던 청년이 뭐라 하는 이란말이 내귀에 들렸다.

"이곳은 점심부터 가능하고 아침 식사는 않됩니다"라는 얘기가 틀림없다.

문밖을 나오며 어디서 무얼 먹나 난감해 할때 밖의 중년 남자가 먹는 시늉을 해보여 고개를 끄덕이자 자기를 따라 오라며   뒷편의 식당으로나를  안내했다.

많은 사람들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스파한에서 타브리스까지 온 두명의 운전기사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모두 먹고 있는 것이 똑 같은 메뉴다.

나를 데려온분 옆에 앉는 청년이 자기 아들이라고 한다.

아들은 자기 아버지는 다른 곳에 사시고 자기를 보러 왔다며  자기는 병원에서 Lab 기사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아침 메뉴는 단 한가지인지 주문할 사이도 없이 우리 모두에게 달걀 후라이를 작고 얇은 알미늄  접시에 담아 왔다.

노른 자와 흰자를 함께 섞은 것으로 원하는 사람은 토마토 캐첩을 발라주는 모양이다 

그리고 얇은 빵을 찢어 계란 후라이를 빵에 얹어 먹었다

목이 말라 요거트(아이란)를 하나 시키고 나중에 비용을 지불하려하자 아들은 자기들 손님이라고 아버지가  식사비용은  내신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럴줄 알았으면 요거트를 시키지 말걸 그랬다..

낯선 곳 ,아침부터 나그네를 위해 버스를 안내해주고 친절을 베풀고 소박한 아침 식사까지 대접해준 이란 사람들.

여행자를 ,이방인을 마음으로 환영하며 맞아주는 이 친절한 나라를 떠난다는 것이 몹시 아쉬워졌다.

 

타브리스 버스 터미날 .

버스 승강장은 외곽에 널찍하게 자리잡았고 화장실은  불편하게 버스표 판매하는 대합실과 먼 100여미터 거리,별도 건물에 있다.

가끔 보는 중동 스타일로 남자 화장실에는 소변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소변기가 없는 남자 화장실이 이상하지 않은 걸 보면 여행하며 많이 익숙해졌나보다.

마쿠(Maku)로 가며 차에서 내려다본 "타브리스"市.

사람들은 정이 많으나 이스파한과 비교 너무 삭막한 시내였다.

타브리스시 외곽.

 외곽광활한 면적의 나라 이란이어서 운송트럭들은 북미의 거대한 트럭과 유사하게 대형 트레일러가 많다

 단지 차들이 노후했을 뿐이다.

고속버스들 옆에 쓴  똑같은 문구들이 있어 이란사람들에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 보았다.

"Iran Runs"-이란은 달린다.

정부의 구호인 모양이다.

국제적인 봉쇄에도 불구 경제 발전을 위해 분투 노력하는 이란사람들.

착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사는 이란이 빨리  발전 하길 빌었다.

 

 

타브리스를 떠나 마쿠로 향하여 잘 뻗은 도로를 달렸다.

날씨가 더워지고 실내 온도가 높아져 사람들이 더워해도 중고 벤츠버스  에어컨 은 작동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넓은 나라인 이란이라 여러 풍경이 존재하는 곳.

영화에선 우리나라처럼   논이 보이던  시골 동네도 있던데 이곳은 황량한 광야도 아닌 이런 풍경이 지속되었다.

가장  이란 이미지와 맞는 풍광이란 생각이 든다.

 

 

 

 

낮에는 95키로 ,밤에는 85키로 속도제한 표지판이 합리적이다.

 

 

 

도로는 2차선으로 도로가 갈라지거나 주저앉거나함이 없이 상태가 상당히 양호하다.

건조한 이란의 집들은 터키 동부의 구 가옥과 마찬가지로 흙집에 스라브형식으로 지었다.

새로 지은 집들은 형태는 비슷하나 벽돌로 지은 집으로 대체되었다.

 

 

드디어 마쿠가 보였다.

 

국경 마을 마쿠. 오로지 통과하기 위해 존재하는 마을같다.

택시를 타고 국경까지 가기로 했다.60,000리알(2,000원)에 합의했다.

 

제법 멀리 달려 국경에 이르자 작은 사무실이 나오고 택시 기사는 이곳까지밖에 못간다고 한다.

저 멀리  출입국 사무소 건물에 이란 기가 나붓기고 있다.

경비 사무실 앞에는 너댓명의 환전상들이 손에 손에 돈을 쥐고 환전을 하라고 한다.

한사람은 한손에 터키 리라만 쥐고 다른 사람은 이란 리라만 쥐고 있다.

말하자면 분업으로 효율을 높이고 있는 재미난 사람들이다.

지갑에 25만 리알이 남았다.

3박 5일에 120달러 를 사용하고 남은 돈이다.(카핏트 대금은 별도다)

손에 쥐어주는 돈이 달랑  터키10리라 한장이라  강도에게 털린 기분이다. 

이백 오십만이 십으로 변하다니.

100달러를 환전해 이백 팔십 오만 리알을 받고 뿌듯했었는데.

동전을 달라기도 그렇고 주는 대로 받아 챙긴다.

이 경비 초소 에서 출입국 사무소까지 전용 샤틀 택시가 별도로 있다.

다른 택시는 이지점을 통과 할수 없게 만든 의도는 무얼까.

미니 버스로 다니면 좋으련만 버스도 없고  걷기엔 너무 멀다.

택시비로 2리라 를 내라고 했다.

2리라(1,300원) 대신 남은 잔돈 20,000리알(700원)에 가자고 하자 O.K

국경 사무소는 의외로 한산했다.사람없는 검색대 .

아무도 없어 검색대를 통과하여 출국 절차를 밟으려하자 먼저  검색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제복 입은 세관이 미소를 지으며 맞아준다.

세관 직원은 영어를 할줄 아냐고 묻더니 한국에서 왔다하자 그냥 안녕히 가시라고 한다.

   

 

앞쪽이 이란이요  반대 방향이 터키 땅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국경 넘기가 훨씬 무거운 의미로 다가온다.

마음대로 육로로 쉽게 넘을 수 없는 국경이 없어서다.

여유를 찾아 매점에서 우선 차이를 한잔 마시고 주머니를 탈탈 다 털었다.

이란 동전들을 한데 모아 국경 출입국 사무소의 단 하나의 매점 청년에게 내어 밀자 웃으며 두개의 과자를 내어 민다.

터키 트라브존가기까지  결정을 못하고 그곳에서 이란 비자를 받으며 잠시 다녀온 이란.

짧은 여행을 통해 테헤란과 이스파한을 다녀온 거지만  다녀오길 너무나 잘한 것 같다.

많은 볼거리,친절한 사람들.

알지 못했던 머나먼 나라가 보다 가깝게 다가왔다.

다시오고 싶은 나라,이란이다.

또 언제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오리라 작정하며 이란땅에 작별을 고했다.

사진: 11월 5일 아라랏산이 구름 사이로 보이는 터키땅.

 

이란과 달리 국경 사무소에서 택시 정류장이나 버스 정유장까지 교통편이 없다.

한 400여 미터 되는  길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었다.

도우베야짓까지 가는 돌무쉬(미니 합승)는 커녕 택시도 없다.

 마침 짐을 싣기위해 온 미니 승합차에  자리가 하나 있다하여 10라리(어떻게 교환한 단 한장의 지폐금액과  일치할까) 라는 말에  짐을 올렸다.

드디어 터키에 다시 들어 왔다는 생각에 마치 집에 다온 듯 안도감이 들었다.

4년만에 두번째 방문하는  도우 베야짓이다.

국경에서 도우 베야짓까지 30키로 .그 당시 바라보던 도로를  거꾸로 달려갔다.

전과는 다른 깔끔하게 닦여진 확장한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갔다.

멀리 보이는 아라랏 산 주위까지  터키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