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사는 이야기

시래기 지짐에 대한 추억

Jay.B.Lee 2013. 1. 30. 23:05

 

사진:시래기옥 정식

 

겨울 어린 시절 겨울  방학이 되면 고향 큰아버지댁에 놀러가 일주일 정도를 보내고 오곤 했다. 

고향이라고 부르지만 내겐  태어나  자란곳은 아니어서 사전 풀이식 고향은 아니다.

그러나 조상들이 경상도에서 충청도에 정착한 이래 400여년 살아왔고 아버지의 고향이 내겐 고향인 셈이었다.

고향을 찾을때마다 아버지는 어린 나를 끌고 집안 어른들에게 인사를 시키곤 하셨는데 아버지께는 작은 아버지요,내겐 작은 할아버지 집을 먼저 찾았다.

 작은 할아버지께서는  종손과 식사를 하던 날  밥은 별로 않드시고  약주 한잔은 꼬박꼬박 챙겨 드셨다.

작은 할아버지께서 거쳐하시는  누각 방 밑에는 군불 때는 큰 아궁이가 있었고  커다란 가마솥이 걸려있었다.

겨울철 가마솥엔 소여물을 끓이는 수증기가  하얗게 찬공기를 타고 올라갔다. 

여물이 잘 익어 넓은 마당으로 냄새가 퍼지면 구수한 냄새가 꼭 된장 시래기국 냄새 같았다

어머니께서는 겨울이면 옛 사람들이  모두 그렇듯 알뜰하게 처마밑 그늘에 잘 말려두신 시래기로  된장국이나 <시래기 지짐>을 만들어 주시곤 하셨는데 ,

멸치를 넣고 끓인 시레기 지짐을 대할 때마다  소여물을 연상시켰다.

냄새며 색갈이며 콩깍지까지 들어가 누렇게 잘익은  소여물과 어찌 비슷한지 시래기 지짐을  좋아한 나는 소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전생에 소였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

시래기 지짐뿐 아니라  그리운  토속 음식들은 서울산  아내와 만나 살면서 점점 멀어져갔다.

아내는 그나마 살면서 자기 생전 처음 먹어본다는  토속음식들을 어머니께 배워  만들어 주곤 했는데 그것도 끌탕을 해야  인심쓰듯 겨우 일년에 한두번이  고작이다.

집에서 가까운 올림픽 대교를 지나 하남으로 접어들면  "고골 저수지"로 향하는  내리막길 우측에 "누렁소"란 음식점이 있었다.

그 집은 갈비보다 커다란 멸치, 된장을 넣고 끓인 시래기 지짐이 얼마나 맛있는지 갈 때마다 한번 더 달래서 먹곤 했다.

"누렁소"에선 나중엔  손님들 성화에 못이겨 아예 돈을 받고 팔기 시작했다.

그 곳에서 사온 시래기 지짐을 몇차례 나누어 먹는 동안 시래기 지짐은 먼 고향으로 날 데려갔고 어린 시절의  온갖 추억을 떠 올려 주었다.

그후 누렁소는 몇년 장사가 잘되더니 어쩐일인지 다른 음식점으로 간판을 달았고  고향에 대한 향수는 덩달아 잊혀지고 말았다.

어제 마침 우연히 대치동에 있다는  맛집 "시래기옥"을 발견, 복잡한 점심 시간을피해  안사람과 부지런히 차를 몰아 찾아갔다.

맛집 불로거 글이후 그 사이 가격이 올랐는지 시래기 정식이  만이천원이고 ,점심특선으로 만천원이다.

정식 반찬속에 시래기 지짐이 있을까  기대가 컷었는데 .....

종업원이 하나 하나  올려 놓는 반찬들중 시래기 지짐은  눈비비고 찾아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깊은 맛없는 그저  깔끔하고 얍싸한 반찬들뿐이다.

시래기밥 정식은  시래기 밥에 시래기 넣은 고등어 찜이 주종이다.

10분을 기다려 방금한  압력 밥솥에서 퍼주는  시래기 밥이 부드럽고 맛있다.

좀 짜지만 푹 고아진 고등어 졸임의 시래기가 지짐대신 먼길 찾아온 나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

내 맘을 아는지 아내가 계산대 앞에서 잘 말린 시래기 두봉지를 산다.

하나는 된장국을 끓여 준다하고 하나는 무쳐 준다고 한다.

내 속을 헤아리는 아내의 마음이 고마우나 언제 밥상에 올려줄지는  별개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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