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사는 이야기

환자의 마지막 청각

Jay.B.Lee 2008. 12. 23. 18:56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남게 되는 것은 청력이라고 늘 들어 왔어도 실제 이야기를 듣기까지 그렇게 실감이 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말레이지아에 살고 있는 지인이 위암 으로 판명되어 강남의 Y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되었다.

교우들이 수술을 받기전 날  방문을 하였을 때만 해도 우리는 수술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위암 초기라  환자 본인이나 방문객들이나 모두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나 금요일 수술후 의사의 실수로 지인은 혼수 상태에 빠져 3일이 지나도 눈을 뜨지 못했다.-그후 그분은 수술은 금요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악의 경우엔 깨어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 모두는소식을 듣고  병실에 모여 그 분이 깨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환자가 의식이 간신히 돌아와  퇴원후에 들려준 얘기다.

눈을 뜨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가운데 소리는 다 들리더란 얘기다.

특히 간호사들이 들어와  나눈 대화를 기억한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이 괜히 죽을 사람을 살려내 가지고 우릴 고생 시켜"

회복이 된 후 그 간호사가 누군지 얼굴을 꼭 보고 싶다고 했다.

 

1980년, 나의 부친께서 겨울에 두번째 스트로크를 맞아  쓰러지시고 말았다.

청주 도립의료원에 입원한 아버님에게 원장이었던 사촌형님은 뇌사 판정을 내렸다.

당시 군에서 제대한 동생과 대학 졸업을 앞둔 두 동생이 열심히 간병을 했다.

"식물인간'이 되어 버리신 아버님을 뵈러 서울이 직장이었던 나는 주말마다 청주에 내려갔다.

을씨년스럽게 어둠 침침한 복도.

멀리 복도를 따라 자원 봉시자들이 부르는 찬송가 소리가  들려왔다.

시내에서 친구를 만나 술을 한잔 마시고 들린 병실 .

나는 아버님 옆에 앉아 너무나 답답한 마음으로 소리치며 울었다

 "아버지,  왜 못 일어나세요.제발 좀 깨어 나세요. 제발."

그 때 아버님의 눈 밑,빰을 타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사촌 형님께서는 그럴리가 없다고 얘길한다.

그래도 나는 아버님께서 불효한 자식의 소리를 들으셨을 것이라고  지금도 믿고 싶다.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친구의 얘기다.

앞집에 사는 어른이 병원에서 입원해 돌아가셨다고 담당 의사는 이제 시체 안치실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그 소리를 다 들은 그 어른은 아니 내가 아직 살아 있는데 시체 안치실이라니  나는 꼼짝없이 죽는구나  할 때 할머니가 아들들이 돌아와 아버지 얼굴이라도 볼 때까지 병실에 있게 해달라고 사정,사정하며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 날 저녁 죽었다 깨어난  그 노인은 그후 10년이 지나 70이 넘도록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나는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그후 그 노인네, 할머니 덕분에 살았는데  할머니께 잘해드리는지?"

"잘해 주긴요.  할머니와  매일 싸우는데요".

친구 부인의 대답이다.

우린 감사함을   너무 쉽게 잊고 산다.

세상의 소리가 우리 귀에서 멀어질 때까지 우리는 감사하며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