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화장실 기행

워싱톤 기행-화장실 기행(3)

Jay.B.Lee 2006. 12. 26. 06:04

"그대에게 잘못이 없다면 화를 낼 이유가 없다.만일 그대가 잘못했다면 화를 낼 자격이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화를 내지않고 세상을 볼 수있다.-간디
                                                    "낯선 곳에서의 아침(구본형 지음)"에서

 

계속해서 냄새나는 화장실 얘기를 곁들여 냄새가 난다고  화를 낸다면 위의 간디의 말을 기억하라.
그러나 화를 내었다는 것은 잡문을 읽어준 감사한 마음으로  간디의 말을 무시해도 좋다고 유예해줄 수 있다.
우린 친구가 아닌가.

 

 
과거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보자
4월이 되어도  캐나다 토론토의 겨울은  끝나지 않아  참으로 따분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스키 시즌은 대개 3월초면 끝나고5월이 되기까지  특별히 할 운동이 없기때문에  골프장 개장을 기다리는 골퍼들은  빨리 5월이 되었으면하고 학수고대를 하게됩니다..
토론토는 온타리오주  수도이며 캐나다 최대도시로 통상 매트로 토톤토를 뜻합니다.
하늘에서, 국외에서 불리울때는  토론토이나 막상 지상에 도착하면 토론토는 없어지고 다운 타운 일부만을 뜻하며  위성도시의 지명으로 대체된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면 서울의 명칭은 없어지고 강서시,종로시,강동시,송파시,일산시등으로 명칭이 바뀐다고 생각하면 빨리 이해가 되리라고 봅니다.
그점에 있어서는 필립핀 마닐라도 마찬가지 입니다.

 

골프장 개장전에 대부분의 지역 골프장의 크럽은 시골의 파티장 혹은 동네 술집으로 변합니다.
한겨울에 골프장을 개장하고,골프장을 찾는 골퍼들이 있는 곳은 한국으로 알고 있습니다.
광적인 골프에 대한 열정이 있는 나라이기에 훌륭한 골퍼들이 많이 배출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미친 놈들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입니다.
5월부터 10월 까지 6개월간을 손을 놓아야 하는 주말 골퍼들은 감을 잃지 않기 위해 길고 긴 겨울동안 조심스럽게 골프채를 손에잡고 티오프할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설레임으로 긴 겨울을 보내면서 말입니다.
그곳 골프 연습장은 실제 야외에서 하기 때문에 실제 골프장과의 차이가 없으며 겨울엔 자연히 쉴 수 밖에 없으나 그 당시 한국 이민자가 소위 닭장(DRIVE RANGE)연습장을 만들어 꽤 인기가 있었습니다.
골프장 개장전 할 수있는 것은 여행으로 4월에 있는 부활절 3일연휴를 이용, 따듯한 곳으로 자동차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가는 곳이 워싱톤이나 뉴욕입니다.
지금은 장시간 운전을 할 자신이 없어지나 마음과 몸이 젊었던 시절엔 보통 10시간내지 11시간 정도를 운전하게 됩니다.
물론 자동차의 나라답게 고속도로는 넓고 직선으로 되어 있어 국내 고속도로에 비교하면 당연히 피로는 덜합니다.


5대호 중의 하나이며 그중 제일 작은 온타리오호-남한 면적과 거의 같으며 파도가 칠 때면 바다 한가지여서 호수라고 부르기가 미안할 정도 입니다-를 끼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지나 뉴욕주 바팔로를 경유하게 됩니다.
참고로 미국이나 캐나다의 지명은 북미 원주민(통칭 아메리카인디언)이 사용하던 지명이 많으며, 캐나다는 마을 정착지를, 토론토는 만남의 장소,나이아가라는 천둥처럼 구르는 물을 뜻합니다.
나이아가라폭포는 지금은 상류 수위 조절로 원주민들이  보았던 본래의 폭포 모습은 볼 수 없으며 폭포에서 들리는 굉음소리도 들을 수 없다합니다..
미국이나 카나다의 신혼 여행지로 각광 받았던 그곳은 이제 명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마치 제주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아래 명칭의 뜻은  그냥 참고하시기 바람니다.

오하이오:위대한 강

미네소타;하늘빛 물

위스콘신;물이 모이는 곳

아이다호:태양이 뜨는 땅

오클라호마:붉은 사람

시카고: 양파가 많이 나는 곳
 텍사스;친구들
 미주리: 큰 배가 있는 마을
 캔자스 :남풍이 부는 곳
 미시시피:물들의 아버지
 아이오와:아름다운 땅 혹은 이곳이 그곳
 미시간:큰 호수
 일리노이즈:잘난 사람들
 켄터키:내일의땅
 다코타: 모두 연결된 사람들
 알라바마:이곳에서 우리는 쉴 것이다
 요세미티:핏발이 선 곰
 와이오밍;산과 골짜기가 굽이치는 곳
 포토맥:불타는 소나무들 등등
 

 


 뉴욕주 90번 고속도로를 달려 81번 도로에 접어들어 펜실베니아주를 달리게되면 헤리스버그를 지나 그 유명한 게티스버그에 이르게 됩니다.
남북전쟁 당시 그곳에서 남군 23,000명,북군20,000명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쟁동안 남군 전사자가 36만명이고 북군의 전사자가 25만명임을 감안한다면  이곳에서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링컨은 다섯아들을 잃은 보스턴의 빅스비부인(Mrs.Bixby )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들이 어디서 전사했는지 자세히 모르지만 링컨의 편지가 생각납니다.


친애하는 부인께,

저는 메사츠군장군으로 부터 부인께서 전장에서 장렬히 전사한
다섯 형제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보고 받은 바 있습니다.
어떠한 말로도 아들들을 잃은 부인의 슬픔을 달래드릴 수 없슴을 알고 있습니다만
위로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들은 국가와 정의를 위해 전사했습니다.
이에 대해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긍지를 가지고 아드님의 기억을 고이 간직하십시요.
그들의 죽음은 크나 큰 손실 이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A.링컨

 

만약 서해교전에서 죽은 우리의 젊은이들의 가족이  대통령이나 참모총장에게서 편지를 받을수 있었던 나라였다면 얼마나 괜찮은 나라일까하고 상상을 해봄니다만 그저 꿈에 지나지 않습니다.이런 나라가 너무 싫어 서해교전 전사자 부인은 이 나라를 떠났겠지요.


"Four-score and seven years ago,our fathers brought forth on this continent a new nation,conceived in liverty ,and dedicated to the preposition that all men are createde equal.---"

1893년.11월19일 전몰자 국립묘지에서 15,000 명의 군중 앞에서 행해진 266자의 2분 연설은 당시는 별 호응을 못얻었으나 세월이 지난 지금은 명연설문으로 기록되며 그래서 고교시절 달달 외우고 공부했던 것은 여러분이 잘 아실겁니다.
민주주의의 탄생(Birth),죽음(Death),재생(Rebirth)으로 일관된 그의 사상은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 일 겁니다.
"내지혜,내 능력,내 노력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없다.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위해 기도한다"던 링컨은 겸손의 사람 그 자체였다는 생각이듭니다
황금빛 석양빛이 내려 깔린 묘지 잔디밭은 조용했습니다.늘 죽은자들은 말이  없습니다..
그 게티스버그의 작은  마을에도 한국인 교회 간판이 걸려 있는 것을 봅니다.
북미의 시골구석까지 제일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중국 음식점 간판인데 한국인도 대단한 민족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남미의 최남단 마을에서 알라스카 북쪽마을까지 한국인이 살고 있음을 감안하면 사실 별로 이상할 것도 없지만 말입니다.
후일 후로리다 가는 길에 테네시주  스모키 마운틴 밑에 자리잡은 에쉬빌(Ashville)에서도 한국인 교회간판을 볼수있었습니다.
시골마을 에서 현대차를 보는것 만큼 반가운 것이지요.
참고로 에쉬빌은 칸트리 음악의 본고장 네쉬빌에서 멀지않으며 미국 철도 재벌 벤더빌트가의 대저택(1895년완공)을 볼수 있습니다.
100여개의 방과,실내수영장,체육실,당구장,볼링장,포도주 공장등 차로  서행 운전시 20여분은 달려야 정문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보통 Biltmore Estate 라고 부름니다.

 

미국의 고속도로는 짝수는 동서방향을 ,홀수는 남북방향을 뜻하기 때문 단거리는 몰라도 자기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워싱톤에 가까워 올 수록 푸르른 나뭇잎이 보이고 차츰 봄 속으로 들어갑니다.
겨울의 토론토에서 10시간뒤 워싱톤 에 도착할 땐 마치 겨울이 존재했던 곳에서 따스한 봄으로 통과하는 느낌이 듭니다 .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은 말합니다.따듯하고 밝은 빛속을 통과하는 느낌이었다고.
초등학교 4학년정도인가 지금는 없어진 청주 외화 전용극장 동아극장(상당공원자리)에서 보았던 다큐멘타리" 사막은 살아 있다"에서 꽃망울에서 순식간에 꽃이 피어나는 초미속 촬영기법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한겨울 비행기를 타고 땀을 뻘뻘 흘리게 되는 야자수 가득한 열대에 도착한 것과는 아주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환영하듯 양옆으로 도열한 큰 나무 숲과 양 고속도로 사이의 미디안(Median-양쪽 고속도로 사이의 중간 분리 역할을 하는 풀밭 )과 길게 곧게 뻗은 도로를 따르다보면 어느새 정말 봄이 가득한 워싱톤입니다.
포토맥강을 따라  곧 보이는 것은 높게 솟은 워싱톤 기념탑입니다.
주변은 벚꽃으로 가득 합니다. 2차대전후 사과의 뜻으로 일본이 심었다는 벚나무 입니다.
"겹사쿠라"의 화사함이 피로를 잊게합니다.
사실 하와이 진주만 폭격이후 본토에 진격해보지 못한 한을 벚나무라도 심어 그 "흑심"을 보여준 것은 아닌지 나쁜쪽으로 생각해 봅니다.
링컨 기념관(대만의 장개석 기념관은 링컨 기념관을 모방한 것입니다)과 국회의사당은 너무나 잘알고 있을 것입니다.
한때 캐나다와 미국이 전쟁시 캐나다군이 북에서 내려와 국회의사당에 불을 질렀다는 것은 처음 안 사실이었습니다.
알링턴 국립묘지도 빼어놓을 수 없는 곳이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케네디묘지도 참배했습니다.
스미스 쏘니언 박물관은 특정 박물관이 아닌 그곳의 역사박물관 ,미술관,현대미술관,과학 박물관을 통칭하는 것으로 미국의 자존심인지 모두 무료입장 입니다.(타 지역은 모두 유료임)
박물관을 많이 관람하다 보니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그 전시물 내용에 비해 후진국으로 갈 수록 입장료가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것입니다.


링컨 기념관을 따라 내려오면 월남참전 전사자 명단이 새겨져 있는 기념비들을 보게됩니다.
워싱톤에 가족과 함께 3번을 갔었지만 항시 그곳엔 흰 종이를 대리석 이름위에 대고 검은 연필이나 색연필로 칠하고 있는 이들을 보게됩니다.
그들은 미국 전역에서 온 사람들로 전사한 아버지, 아들, 형,오빠의 흔적을 그곳에서나마 찾아 보고자 탁본 뜨듯 이름들을 새김니다.
그들을 볼 때 마다,아니 그들을 회상하게되는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그 전사자 명단 옆에는 한국전 참전 기념 동상들이 있습니다.
 빗속에서 철모와 판초우의를 뒤집어쓰고 M-1소총을 든 그 고통스러워하는 표정들의 용사들을 보면 "가보지도 알지도 못하는나라, 알지도 못하는사람들"을위해" 죽은 35,000여명의 전사자들에대해 감사함과 죄스런 마음입니다..
그들은 한국전쟁을 Korean War대신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사실 전쟁속에서 이념을 위해 싸우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살아 남기위해,옆의동료인 전우를 위해 싸운다 합니다.
한국전 당시 미군들이 가장 괴로워했던 고통은 겨울 추위와 농촌의 거름냄새였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지?
 

워싱톤 관광의 백미는 백악관일 겁니다.
백악관 앞에서 일부 개방하는 백악관 의 내부를 보고자 한시간 넘게 긴 줄속에 기다려야 합니다.
북미 사람들이  평생동안 줄서는 시간은 5년 6개월이라는 통계자료를 본적이 있습니다.
 백악관 정문 옆에는 늘 피켓을 들고 조용히 걷고 있는 시위자들이 있습니다.
또 백악관 앞 잔디밭에는  따듯한 열기가 올라오는 지하 쇠창살 위에 텐트를 치고 텐트 밑으로 퍼져나오는 온기속에 잠을 자는 노숙자들도 있었습니다.
무료 박물관 안 따듯한 벤치에 앉아 졸고 있던 거지도 보았습니다.
백악관 정면 반지하 화장실에 갔었습니다.
볼 일을 보고 나오는데 핸드 드라이어 앞에서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꺼져버리는 단추를 열심히 눌러가며 손세탁한 펜티를  말리고 있던 흑인 노숙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멋적은지 씨익 웃는 것이었입니다.
검은 피부 사이로 들어난 이가 더욱흽니다.
안사람에게도 물어 보았습니다.
여자 화장실에서도 어떤 흑인 여자가 핸드 드라이어로 세탁물을 말리고 있었다고.
아마 그네들은 부부 였던 것같습니다.
노숙자들도 깨끗해야 한다는 기본에 충실한 사람들인 모양입니다.
화장실을 탈의실,세탁실로도 사용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인것 같았습니다.
백악관 뒷쪽 동네는 홍등가라 합니다.
그런곳,자유가 있는곳이 미국이었습니다.


전두환 시절처럼 거지, 노숙자들을 사그리 잡아다가 수용소에 처어 넣고 수용소는 그네들 표현방식을 빌면 대가리 수대로 보조금 받아좋고,시민은 거리가 깨끗해서 선진국에서 사는 양 착각해서 좋고, 경찰은 일손갈 일이 적어져 좋고, 정부는 복지정책을 시현해서 좋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민주국가인 우리나라 현재의 상황에서도  청와대 부근에서 그런일이란 있을 수도 없겠지요.


P.S :혹시 있을 수 있는 오류가 있다면 그 당시와의 상황이 변했다던가 나의 아스라이 희미해가는 기억력에 기인되는 것이어서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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