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동유럽여행

여행(24)-음식 ,영원한 즐거움

Jay.B.Lee 2007. 3. 2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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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두부로부니크 플라차(광장) 거리옆 건물과 건물사이 골목길에 흰차양을 치고 카페처럼 차려놓은 작은 테이블.
고전적 문양의 접시가 여행자를 위한 레스토랑의 깊이를 더했다.


음식이란 절대 불편한 사람과 나누는 법이 없다.
싫은 사람을 식사에 초대하지 않는 것처럼.
같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호의와 존경,이해와 사랑을 표하고 나누는 것이다.
옛 고대 어느나라에선 함께 식탁을 했던자는 어느 경우라도 죽이지 않는다는 관례도 있었다던가.


위의 레스토랑에서  바닷가재를 주문하자 중국집 볶은밥처럼 공기에 담아 엎어놓은 쌀밥에 토마토 쏘스를 뿌린 다섯마리의 작은 바닷가재가 나왔다.
아침에 구은 구수한 빵과 함께 한잔의 하우스 와인으로 점심을 먹었다.
먹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식욕이 있음으로 살아있는 생명감을 느낀다.
집을 떠나 여행길에 올라  챙겨주는 사람없이 낯선 곳에서 익숙하지 음식을 대할 때 사실 꼭 고통만은 아니다.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낯선 음식에 다가서면 그들의 문화와 그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첫날 저녁 체력 보충을 위해 눈에 띄인 정육점에서 스테이크용 쇠고기 한덩어리를 샀다.
할머니 주방에서 할머니 고양이에게 줄 상납용 쇠고기 한쪽을 떼어낸후 할아버지가 마시다 남은 적포도주를 약간 뿌리고 Medium Rare에 가깝게 구운후 소금, 후추를 뿌려 먹으니 육즙과 고기맛이 그럴싸했다.
배고픈 여행자에게 무엇인들 맛있지 않을까?
다음날 저녁 들린 정육점 아저씨가 두번째 들린 동양인 단골(?)을 반갑게 맞는다.
닭 한마리를 샀다.
우리나라처럼 내 좋아하는 닭 모가지와 콩팥이 없어 유감이었다.
양념이 없이 소금만 찍어 먹을 심산이다.
 막 파장하는 재래식 시장 아주머니에게서 양상치 한통,토마토 2개 ,감자 큰것 한개를 샀다.
아주머니가 이것도 필요할 것이라고 꼭 긴 호박처럼 매끈하게 생긴 것을 권한다.
 겉이 도톨거리지 않는데도 오이라고.-크로아티아 오이가 그렇게 단줄은 나중에 알았다.
파 한개를  한단에서 쭉빼더니 비닐 봉지에 넣어준다.
공짜란다.무얼 해먹을 건지 다안다는 투다.
지나는 분이 친절히 가르켜 준데로 슈퍼 마켓에 들려 큰 우유한통-우리나라 처럼 작은 것은 눈씻고 봐도 없다-과 영어라고 한글자도 보이지 않는 은박으로 포장 셀러드 드레싱을 짐작으로 사고 빨간 표지밑의 포도주를 세일중이라고 눈치로 때려잡아 백 포도주 한병(6,000원),3통자리 마늘(그네들도 먹는 모양이다)도 샀다.


오늘도 야옹이에게 닭고기를 상납하고  식사후 아침을 위해 남은 닭고기 국물에 닭고기 앞가슴살과 감자,파,마늘을 넣고 대한 항공 여승무원이 생색내며 따로 챙겨준 비장의 튜브 고추장을 끝까지 훑어 짜아 넣고 마지막으로 할머니까 해놓으신 쌀밥을 조금 넣고  끓이니  닭고기 스프가 되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럴싸한 Chiken Soup이다.
사람이 내 배부른후에야 남을 생각한다던가.
윗집 호스텔에 묵고 있는 딸같은 두 한국 아가씨가 마음에 걸렸다.
호스텔 방문을 두드려 저녁을 했다는 아가씨들에게 셀러드를 먹으라고 했더니 군말없이 따라 나선다.
여행시 특히 그리운 것은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다.
냉장고에 보관했던 차가운 양상치를 손으로 찢어 오이,토마토를 얹은 후 드레싱을 잔뜩 뿌려주자 잘도 먹는다.
 닭죽 같지 않은 닭죽을 매콤한 맛때문인지 연신 맛있다며 먹는다.
마침 할아버지도 오셔서 유리잔에 함께 마신 백포도가 기가 막히게 맛있다.
후식으로 딸기를 먹고선 할머니 집과 커다란 옷장과 깨끗한 더블 침대가 있는 방이 너무 마음에 드는지 두아가씨는 내가 떠나면 호스텔에서 할머니 집으로 옮기기로 예약을 했다.

이번 여행중 가장 잘한 일이라면  한국 아가씨들에게 식사를 직접 만들어 대접한 것이다.
음식을 해보지도 않았어도 궁즉통이라 했던가.
사실 그네들을 만난 인연으로 좋은 숙소에 묵게된 것이기도 했다.
친구와 서로 헤어져 혼자서 오랜동안 여행하게 될 처자들이 걱정되어  귀국하거든  이메일로 소식주기  바라며 프라하 가면 꼭 찾아가라고 "딸기 민박"의 주소와 약도와 전화번호를 적은 메모를 벽에 붙여 놓고 나는 두브로부니크를 떠났다.


그네들의 소식을 들은 것은 내가 귀국후 프라하"딸기민박"홈 페이지에 들어가 안주인에게 안부 전하며 혹 C양이 들렸냐고 물어 보았을 때였다.
며칠 머물다 간것이 아니고 아직도 프라하에서 지금  내가 선물로 주고간 커피를 같이 마시고 있다며 C양의 칭찬일색이다.
심성이 착한 사람을 알아보는 보는 눈은 같은 모양이다.
C양은 아저씨가 냉장고에 남기고 간 우유,샐러드,딸기,바나나,오이,토마토 때문에 행복했었다며 여름 한달 프라하에 머물며 아주머니를 도와도 주고 여행도 할 예정이라고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후 3개월이 지난 어느날 파리로 갔던 친구도 귀국했고 자신도 안전하게 귀국했다는 C양의 이메일을 다시 받았다.
참으로 고민 많은 시대에 살고있는  젊은이들이다.
취직이 되던지 좋은 반려자를 만나 결혼을 하던지 그네들의 행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