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성지마다 팔을 벌리고 반겨주는 예수님 상이 있다.
천주교인인 지인이 기독교인 나에게 미리내 성지를 방문해 보길 추천했다.
마침 노주현 카페도 근처에 있어 겸사겸사 나들이 하기에 좋았다.
미리내 성지는 천주교 박해(신유박해/기해 박해)시기에 천주교 교인들이 숨어 살던 곳이다.
미리내는 순수 우리말 "은하수"로 천주교인들이 생계를 위해 옹기를 구을 때 밤에 가마에서 튀는 불똥들이 은하수 같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안드리아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묻힌 곳이다.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리내성지로 420
성채 조배실
묵주 기도의 길을 따라 걸었다.
환희의 신비 3단
묵주의 길을 따라 걷는동안 요란한 소리가 났다.
두 명의 청소부가 동력 환풍기 두대로 일사 분란하게 길에 강풍에 떨어진 나뭇잎들을 길밖으로 쓸어내고
있었다.
세상의 먼지들이 나뭇잎처럼 깨끗하게 날아갔으면.
환희의 신비 4단.
십자가의 길 시작 시점
성당과 성지에 모두 십자가의 길이 있다.
그중 극사실적으로 만들어 놓은 곳은 제주도 이시돌 목장에 있는 십자가의 길이다.
한국순교 103위 시성 기념 성당.
1987년 -1991년
성당안은 명동성당의 형식을 빌어 왔다.
성당 제대안에는 김대건 신부의 뼈가 모셔져있다 한다.
안사람과 입구쪽에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잠시 기도를 드렸다.
김대건 신부님 기념 성당과 묘소.
성당 옆에는 김대건 신부의 모친 "우르슬라 "의 묘가 있다.
"김대건 신부
충청도 면천군 범서면 송암리 출생 (현 당진시 우강면)
1821.8.21-1846.9.16
세례명 : 안드레아
조선 최초의 카도릭 사제(신부)로 성 피에르 모방의 천거로 마카오에 유학,신학을 공부하고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하였다.
1년여 사목 사목생활을 하지 못하고 25세의 나이에 순교했다.(1846년 병오 박해)
1984년 한국의 동료 순교자102명과 함께 시성됐다"-나무 위키 발췌"
김대건 신부와 어머니를 형상화한 조각.
피에타를 연상시킨다.
김대건 신부
시무한지 13개월 만에 새남터(노량진)에서 참수되어 형장이슬로 사라졌다.
천주교 신도인 17세의 빈센시오 이민식이 가매장한 김대건의 신부의 시신을 몰래 빼내 시궁산 미산리 이곳에 모셔와 안장했다.
김대건 신부의 유해는 나중에 전국 200여곳에 나누어 안치되었다.
현재 기념 성당 제단 아래에는 김대건 신부의 아래턱 뼈가 보관되어있다.
김대건 신부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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