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조지아(그루지아)

므츠헤타(4)-영혼의 고향 스베티츠호벨리 성당.

Jay.B.Lee 2011. 1. 2. 22:28

 

              그루지아 옛 수도  므츠헤타의 "스베티츠호벨리" 교회.현재 터키 땅 "카파도키아'에 온 성 Nino가 무츠헤타에 첫발을 디딘후

             이곳에서 살며 전도했다. 미리안 왕의 명령으로 그녀를 기리기 위해 지은 것으로 11C에 증축되었다.

스베티츠호벨리란 Life going Column뜻으로 번역하면 삶에 기둥같은 목적을준 그런 의미다

 

<그루지아 정교회를 찾아서>-더 깊은 이해를 위해 Gvino님의 글을 인용해 봅니다.

 

""소련(USSR)시절 15개 공화국이었던 독립국가 중 현재 동방정교(Eastern Orthodox Church)의 수장격인

러시아를 비롯 우크라이나, 벨라루시, 몰다비아와 그루지아 등 5개국이 전통적인 정교 신봉국가 입니다.

제가 이들 5개국 중 몰다비아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을 여행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방문할 때마다

새삼스럽게 느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 국가 모두 1991년 소비에트 붕괴 후 공식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점차 경제여건이 나아지면서

오래되고 낡은 교회와 수도원이 복원 신축됨에 따라 우중충하던 도시의 분위기가 밝아지고 스카이라인이

하루하루 달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많은 정교회 성당과 사원이 외국 관광객들에게 인기있는 관광코스에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 외에도 

소련해체 후 종교생활이 이제는 일상사가 되어 이 곳을 찾는 내국인이 많기 때문에 생긴 변화라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서기 994년 키예프공국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래 같은 정교 뿌리를 가진 현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시 등 슬라브 3국과 원래 루마니아계로 2차세계대전 이후 소련에 편입된 몰다비아의

경우는 여전히 갈등이 남아 있습니다만 독립 후 아직까지도 모스크바총대주교의 러시아정교 관할입니다.

허나 그루지야는 러시아보다 600년 이상이나 훨씬 이전에 이미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래 지금까지 독자적인

그루지야정교 (Georgian Orthodox Church)의 자치권과 독립성을 유지해 왔습니다.

물론 그루지야가 러시아에 병합되면서 그루지야정교 역시 1811년 강제로 짜르의 러시아정교로 편입되었고  

1917년 3월25일 스스로 자치권을 선포했으나 실제로는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할 때까지 종교적 핍박을

받은 수모의 역사도 있었지만요.

 

사실 그루지야정교의 독자성과 정통성은 초기교회시대부터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그루지야인들이

약 2000년 동안 꾸준히 지키고 믿어온 깊은 신앙심에서 비롯됩니다. 

오래된 크리스찬 문헌에 따르면 예수님의 12 제자 중 무려 5명의 사도가 이미 서기 1세기부터 당시 이교도인

그루지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 합니다.

즉 사도 안드레아(St. Andrew the First-Called)가 성모 마리아의 이콘(Holy Mother's Uncreated Icon)을

지니고 최초로 그루지야 땅을 밟았으며, 그와 함께 복음을 전한 사도 시몬(Simon the Canaanite)과

마티아(St. Matthias)도 현지에서 선교하다가 죽은 후 흑해연안 "코마니" (현 압하지야의 Sukumi시 근처)와 

"고니오" (현 아자리아의 Batumi시 근처)에 묻혔습니다.

또한 사도 바르톨로메오(Bartholomew)와 타대오(Thaddeus)도 그루지야에서 포교활동을 했다 합니다.

 

그루지아는 서기 4세기에 카파도시아 태생인 성녀 "니노"(St. Nino, Equal-to-the-Apostel)의 전도를 통해 

국가 차원에서 정식으로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채택하게 됩니다.

즉 로마제국이 서기 313년 밀라노칙령에 의해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기 전인 301년에 이미 아르메니아가

이민족 중 처음으로 크리스찬 국가가 되었고 제1차 니케아공회의가 열렸던 서기 325년 다음 해인 326년에

그루지아가 그 뒤를 잇게 됩니다. 

당시 비잔틴의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그루지야 동부 카르틀리(혹은 이베리아)왕국의 수도였던 Mtskheta로

주교와 사제를 보내어 신도들에게 세례를 주었고 예수님이 못 박히셨던 성십자가(Holy Cross)의 일부와

못 2개 그리고 "주님의 이콘"을 보냈습니다.

 

그 후 성니노의 조언으로 수도 Mtskheta에 그루지아 최초의 교회인 "12사도 성당 스베티츠호벨리"

(Cathedral of the Twelve Apostles, Svetitskhoveli)가 건립되었는데 이 성당에는 지금까지도

예수님의 "성의" (Chiton of Christ)와 "예언자 엘리야의 망토" (the Mantle of the Prophet Elijah) 등

성보(聖寶)가 묻혀있다 합니다. 

역대 그루지야 왕은 수 많은 교회와 수도원을 지어 이 곳을 교육과 문화의 중심이 되게 하였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기독교가 국민단합의 모멘트가 되면서 그루지야인들의 생활 깊숙이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동시에 대외적으로도 많은 교회를 지어 봉헌하였는데 특히 성지인 예루살렘에는 "Holy Cross Monastery"

(현재는 그리스정교 관할), "St Jacob's Monastery" (현재는 예루살렘 아르메니아 교회 관할) 그리고

"Iviron Monastery" (예루살렘 Athos산에 위치)등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한편 그루지야 정교는 457년 시리아의 Antioch 총주교 관할로 부터 자치권을 얻어 므츠헤타 주교가

카르틀리왕국 전체의 대주교로 그 지위가 격상 되었고 마침내 1010년에 이르러서는 독립함으로써

오늘날 총대주교인 Catholicos-Patriarch of All Georgia로 새로 탄생하게 됩니다. 

물론 수세기에 걸쳐 이민족인 페르시야, 아랍, 터키, 몽골, 오토만의 끊임없는 침입에 맞서 조국과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싸웠으며 이로 인해 수 천명의 순교자를 배출하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군인과 기사"를 상징하는 성조오지(St. George)를 자신들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게 된 걸까요?  

 

참고로 우리에게는 생소한 동방정교가 교리나 전례에서는 대동소이하나

서방교회인 로만카톨릭과 몇가지 차이점이 있어 아래와 같이 간단히 정리해 봤습니다.

 

-입체적인 성상 대신에 성화 이콘으로 예수님이나 성모마리아를 경배한다.

-교회내에서도 계속 선 채로 미사를 드린다.

-어떤 악기의 반주도 없이 목소리로만 성가를 부른다.

-영성체 의식시 항상 양혈영성체(빵과 포도주를 동시에)를 한다

-이마 가슴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어깨로 십자가 성호를 긋는다

-일반 성직자의 독신을 고집하지 않는다.

-교황이나 총대주교의 무오류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여신자의 경우 다양한 색깔의 미사포 착용을 허용한다.""

 

                이가 하나도 없는 나를 안내해준 택시 기사 할아버지. 

                택시 관광을 끝내고 므츠헤타 탐색에 들어갔다. 천천히 이곳 저곳을 걸었다.마주친 낡고 오래된 고가.

              낡은 것에서 향수를 느끼며 오래된 것 자체에서 정취를 맛본다.

                집 모퉁이에 새로 자리한 작은 구멍가게

                집집 마다 포도나무가 있다.포도나무가 없으면 무츠헤타 주민이 아니다.포도나무 터널-여름엔 얼마나 무성했을까 

                  개나 사람이나 너무 여유롭다.

 

                 길에서 발견한 러시아제 승용차 "라다"다.

                 20년은 족히 되어 보인다.라다를 처음 구경한 것은 토론토 모터쇼에서다.

                  후드를 열어보고 얼기 설기 무질서하게 이어져있는 전선 케이블선을 보며 얼마나 한심해 했는지.

                당시 현대는 엑셀과 스텔라를 수출했다.

                품질이 엉망인 스텔라로 인해 과거 포니로 쌓은 지명도마저 흔들거렸던 때가 언제였던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길거리에 사람이 보이지않더니 아기 엄마가 아기를 데리고 나와 사진을 찍다.

                 사진을 우송해주어야 한다.

                할아버지와 손녀

                조용하던 교회주변에 갑자기 사람들이 나타났다. 결혼식인가 따라가 보기로 했다.

                 

 

                교회로 들어가 결혼식을 하는줄 알았다.

                 사진을 찍으러 온 것이다.이곳에선 "초카"가 남성의 정장에 해당되는 모양이다

               신랑 동생인지 신부 동생인지 가족이다.초카에 칼을 찬 멋진 청년이다.

 

                 코트를 입어도 추운 날,어깨를 다 내어 놓은 신부가 추워보여 안쓰럽다

 

                교회에 들어온 신랑 ,신부가 포즈를 취해 주었는데 둘이 무척 닮았다.신랑신부는 우선 어려야 예쁘다 .부디 행복하기를 !

 

               

                얼굴에 색칠을 한 한무리의 청년들이 건물 주변에 나와 간식을 먹기 시작했다.

               무슨 행사가 있냐 묻자 훼스티발 공연이 있으며  3시반부터 다시 공연이 있다고 했다. 가던 날이 장날이다.

              

                작고 초라한 극장 무대

외국인인 나에게 호기심을 많이 보여주던 어린 아가씨들.

마침 휴식 시간이어서  세련된 숙녀가 다가 왔다.영어가 유창하다.

자기네는 싱어스 그룹으로 같이온 청년들과 인사를 시킨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한국이 잘사는 나라인줄 잘알고 있다며 혹시 한국에서 재즈를 부를수있는  기회가 없겠냐고 물어본다.

조숙해 25살정도 된 숙녀인줄 알았더니 20살 숙녀였다

 

 

말을알아들을 수 없어 그림만 보던 연극.출연자들의 열의가 대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