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사는 이야기

"두이 "를 보내고.

Jay.B.Lee 2009. 7. 13. 08:07

사진:"두이"-7년전 모습

 

 1994.1.7 出

2009.7.9 卒

 

우리집 막내 요크셔 테리어 "두이"는 그렇게 살다가 갔습니다.

15년 반의 생애가 긴것인지 짧은 것인지 우리와 함께 살다가 갔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거의 80세 수준입니다.

왼쪽눈은 백내장으로 실명 ,오른 쪽도 빛이 조금 있다는 것만 알뿐 거의 실명상태 였습니다.

가끔 문에 부딪히기도 하곤했으니까요.

 눈꼽이 자주 눈을 덮어  소독을 해주고 약을 발라주어도 닦아 줄때 뿐입니다.

귀도 들리지 않고 냄새도 못맡습니다.

손자가 미국에서 오면 어떻거나  안락사를 고려하다가 더 데리고 살고픈 마음이 들엇습니다.

 귀가 곪고살이 돋아나  귀구멍을 점점 막아 ,째서 곪은 부위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면  공기가 통하여  냄새가 덜 날거라는 동물병원 의사말을 따른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식욕은 좋고 건강해서 잠시 고통스럽더라도  사는 동안 덜아프라고 한 수술이었습니다.

수술후  갑자기 회복을 장담못하겠다는 병원의 전화연락을 받고  '"두이"를집으로 데려오자 안심이 되었는지 주는 물을 핥아 먹고 우유도 조금 먹었습니다.

수박도 몇조각도 먹고 좋아 하던 참치도 한조각 먹고 해서 차츰  회복이 될 줄알았습니다.

저녁 약속이 있어 나간동안 '두이"가 아파 울며 이상해져  병원에 데려 오라는 동물병원 의사의 말에 안사람이  재입원을 시켰다 했습니다.

다음날 ,친정으로 간다는 며느리 손자 아들을 보낸후 안사람과 동물병원을 찾았을 때 회복이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죽어도 집에서 죽게 하고 싶어 안사람은 가져간 큰 타월에  가는 숨만 쉬고 있는 두이를 안아 들고 차에올랐습니다.

 집앞에 도착하여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두이는 싸고 있던 타월과 안사람의 옷에 오줌을 쌌고 그것이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엄마라는 것을 안 "두이"가 안심이 되었는지 숨을 고르게 쉬더니 맥을 놓았다고 합니다.

방에 누여놓고 손을 대어 보니 따듯한 몸이 아직도 맥이  뛰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를 마지막으로 기다리다 죽었다고 안사람은 슬프게 울었습니다.

나는 축 늘어진 두이를 안고 두이가 좋아 했던 목욕을  시켰습니다.

마지막 샴푸를  하고 늘 하던 것처럼  드라이어로 말려주었습니다. 

솜에 알콜을 묻혀 두귀와 입을  막고  이불집에서 미리 사 놓았던 하얀 "옥양목"에  정성껏 싸서 준비해 두었던 상자에 넣었습니다.

동물 병원 냉동실에 하루 보관하러 가며 안사람은 상자를 끌어안고 또 울었습니다. 

나도 또 눈물이 났습니다.

저녁에 들어온  딸에게는 잠을 자지 못할까봐 얘기조차 못꺼내고 다음 날 아침 얘기하지 마자 딸은 울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딸이 연차로 휴가중이어서 함께 화장장에 가기로 했습니다.

병원에 의뢰해주는 것 보다 내가 직접 화장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광주 오포면 소재 "아롱이 천국" 동물 화장장에 도착하자 두팀이 이미 장례를 치루고 울고들 있었습니다.

직원은 "두이"를 꺼내어 다시 "두이"의 얼굴이 나오게 흰 천에 잘 싼뒤 임시 마련된 관에 넣고 네평 남직한  장례식장에 우릴 남겨 놓고 나갔습니다.

"두이"를 어루만지며 우리가 울만큼 울었다고 생각한 직원은  화장을 하겠다고 두이가 든 장례식장용 관을 들고 나갔습니다.

오른쪽 전시장엔 제일 비싼 30 만원짜리 오동나무관과 수의 그밖에 비싼 유골함도 있었으나 기본형으로  화장만 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화장로는 두대로 그중 한대를 열었습니다. 

유리창 밖에서 모니터로  로의 안쪽이 들여다 보엿습니다.

로가 닫히고 단추를 누른 뒤 마스크를 벗은 직원은 35분이 소요된다 했습니다.

얘기하다 다시 울고 하는 딸과 안사람을 마침 이층 납골당표시가 보여 올려 보냈습니다.

나도 나중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수 많은 개들의 납골 단지 앞에는 나서 죽은 해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짧게는 3개월부터 16년반 까지.15년 이상을 산 개는 서너마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개에게 보내는 편지들과 행복했던 시절의 사진 ,좋아 하는 통조림 선물

각가지 사연을 보며 안사람과 딸이 위로를 받았기를 바랬습니다.

저역시 위로를 받았습니다.

괜히 수술을 시켜 몇개월이라도  더 살수 있었을 것이라는 일찍 죽게 했다는 자책감으로 괴로웠습니다.

돌팔이 동물병원의사라고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수술후 아파서 울던 "두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두이는 정말 하얀  한줌의 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직원이 흰 종이에 옛날 약봉지 처럼 곱게 접은다음  유골함에 담아 왔습니다.

집안 거실 소파 앞에 푹신한 담뇨위에 타월을 깔고 누워있던 "두이"의 자리에 두이는 더이상 없었습니다.

"두이"를 잃은 슬픔으로 안사람은  밥도 먹지 못하고 간신히 쥬스 한잔만  마셨습니다.

두이를 위해 쓰던 물건들을 치웠습니다.

집 대신 깔고 자던 담뇨가 몇장,샤워용 큰 타월 몇장,밥그릇과 물그릇 밑에 깔아주던 식탁보,누나네 집에서 얻어다 입힌 개옷등입니다.

누나네 개 "몽롱"이처럼 조카 결혼 식때 턱시도를 맞추어 입고 사진관에서 가족들과 사진 까지 촬영하는 호사를 누리지 못했지만 사랑만큼은 많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누나네 개처럼 고기를 따로 삶아 줄만큼 정성을 들이지 못했지만  가족들과 늘 함께 식사한 "두이"였습니다.

국수류,과일을 좋아 했고 특히 토마토,삶은 양배추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두이가 없는 집안은 횅합니다.

늘 잠만 자던 "두이"였지만 두이가 떠나고 난 다음 집안의  공백이 느껴집니다.

안사람과 나는 아파트 동산에 수목장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두이가  나와 올라 종종 산책하던 곳입니다.

베란다와 방 창밖으로  내려다 보니 동산입니다.

아파트 단지는 재건축이 되어도 두곳의 동산은 자연 보존림이어서 영구히 보존 됩니다.

"두이"가 그립습니다.

온몸에 검은 점이 피고 혹부리가 나고 냄새도 나던 "두이"입니다.

만나고 헤어지고 ,나고 죽는 것이 자연의 이치지만 사람보다 오히려 그리움이 더한것은 늘 우리가 보살펴주며 돌보아 키워서 일겁니다.

다른 개들 -강아지에게 조차 눈을 못맞추고  자폐증 증상까지 가지고 있던 녀석입니다.

이제 개를 더 이상 키우지 않을 것입니다.

다들 그렇게 얘기하며 또 키운다하지만 안사람의 의지는 확실합니다.

"두이"는   더이상 우리곁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두이'야, -잘가거라."

아빠가.

 

*개를 키우지 않는 분들은 개를 잃은 상실감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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