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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우슈비츠(Auschwiz) 수용소.
안 쪽에서 바라본 수용소 정문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 루돌프 프린츠 헤스의 좌우명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Arbeit Macht Frei)"가 보인다.
크라쿠프 Glowny역에서 기차를 타면 오시비엥침 역에서 아우슈비츠까지 시내버스를 타야 하고 시외버스를 타면 수용소 앞에서 내린다고 한다.
동유럽의 대부분의 교통체계가 잘 되어 있듯이 역 바로 옆에 버스 터미날이 있었습니다.
동유럽의 버스 터미날은 대부분 버스표를 사면 지하로 한층 내려가 버스를 타게 되어 있었습니다.
떠나는 시간이 가까운 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버스비는 7즈오티(1700원정도)로 저렴.
숙박비도 그렇지만 체코에 비해서도 반 가격이어서 여행의 시작을 부담 없이 하게 되었습니다.
소요시간 약1시간 정도.
이곳의 버스표는 근사하게 디자인된 큰 티겟이 아니고 옛날 카시오 전자계산기에 달린 롤페이퍼처럼 생긴 작은 종이에 찍혀 나온 것이라 잃어버리지 않게 잘 보관해야 했습니다.
작긴 했어도 버스 요금과 출발 프렛트홈 번호는 잘 찍혀있었습니다.
시외버스는 20여년전 타던 구형 버스의 모습으로 조용하고 한적한 길을 달렸습니다.
5월이어서 온통 민들레 천지입니다 .
우리나라와는 달리 어느 곳을 지나도 모두 조용한 모습이었습니다.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체코나 폴란드나 시골집들은 맑은 유리창에 드리워진 하얀 망사 커튼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유리창만 그대로 있는 집도 보지 못했지만 천으로 된 커튼을 한집도 한 번도 보질 못했습니다.
작고 소박한 시골집 뜰안의 튤립들이 아름다웠습니다.
평화로운 마을들을 지나며 50여 년 전 이곳이 대학살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이 기이할 뿐입니다.
구약성경시대엔 아이부터 어른까지 살아있는 것은 모두 죽여버리는 학살들이 있었지만 근대에 이르러 행해진 대학살은 정말로 끔찍합니다.
인간의 잔혹성이 어디까지인지 -
세계 인류사 중 난징 대학살(30만 명)은 인간이 저지른 만행 중 가장 야만적이며 끔찍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937년부터 1938년까지 몇 달에 걸쳐 별다른 저항이나 전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이 중국에 공포를 주기 위해 살해한 방법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집니다.
전쟁이 있는 곳에 약탈과 살인 강간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 살해 방법을 보면 치가 떨립니다.
그저 침묵하며 사실을 부인하는 일본인들이 가증스러울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 1차 대전 기간 중인 1915년 4월 오스만 튀르크(터키)에서 행해진 아르메니아인 100여만 명과 쿠르드인 3만 명의 죽음에 대해 언급한 터키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무크"는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18세에서 50세까지의 남자는 전부 살해하고 노약자와 부녀자는 메소포타미아 사막으로 추방하여 굶어 죽게 한 사건을 터키 민족주의자들은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만 먼 후일 진실을 밝힌 그가 진정 터키의 자랑이 되길 기대합니다.
또 진정 터키인들도 회개하길 기대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 누가 기억할 것인가.
남미 원주민인을 대부분 학살하여 씨를 말리고 2천여만 명에 달하던 초원을 달리던 자유인, 아메리칸 원주민(인디언)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대학살과 질병과 굶주림과 추위로 스러져가고 그 자랑스럽던 용사들은 기록으로 전해질뿐입니다.
또 아주 한 명도 남김없이 멸종을 시킨 호주 태즈메이니아 원주민 학살은 누가 기억하리오.
자국 내에서 동족 간에 행해진 대학살(Autogenocide) 중에서는 크메르의 폴 포트가 1700만 명을 학살한 것도 기록적일 것입니다.
킬링필드로 기억되는 대학살을 자행한 것입니다.
공산주의 이상 사회를 건설하겠다며 걸림돌이 된다고 자국민을 죽인 그의 광기도 그렇지만 베트남을 견제하기 위해 폴 포트를 지원해준 미국도 책임이 아주 없다고는 못할 것입니다.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가면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인민의 적`으로 몰려 살해당하고, 굶주려 죽고 또 중노동에 시달리다 죽은 불쌍한 소련 주민은 최소 2,000만 명에 육박하며 마오쩌둥 치하의 중국에서도 많은 희생자가 있었다 합니다.(아직 전모는 밝혀지지 않았다)
또 1994년 르완다에서는 다수족인 후치족과 소수족인 투치족의 종족 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1998년 코소보 사태로 인종 청소라고 행해진 살육들을 생각해 보면 정말로 끔찍한 일입니다.
우리 자랑스러운 동문 김정환 소장(고려 곤충연구소ㅡ최근엔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변신한 듯하다 )의 말을 빌리면 곤충과 동물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해로운 동물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곤충과 동물이 아니어도 인간의 입장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사람이 제일 무서워"
"누가 아르메니아에서 죽은 100만 명을 기억하리."히틀러는 말했습니다.
히틀러는 600여만의 유대인(요즈음 숫자가 과장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과 20여만의 장애자, 300만 명의 폴란드 기독교도, 또 숫자를 일일이 기억할 수도 없는 집시(25-50만)와 소수민족, 정치범들을 학살하며 스스로 위로를 삼았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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