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사는 이야기

유년의 기억

Jay.B.Lee 2007. 11. 25. 21:01

사람이 기억하는 가장 어렸들 때의  기억이란 언제쯤일까?

내 원고향은 충북 영동이다.

영동서 낳아 청주에서 자랐으나 400년간 조상들이 살아온 곳은 영동 양산이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가장 어린 시절의 기억은  6.25전쟁 발발한 후, 영동읍에서 40여리 떨어진 양산면 가곡리( 전에는 "각골"로 불렀다)로 피난을 갔을 때다.

그곳엔 아버지께서 신혼시 재금났던  우물대신 펌푸가 있었던 양철집이 있었다.

아버지,큰아버지,작은 아버지들과 사촌형들을 포함 대부분의 성인 남자들은 부산으로 피난가고 여자들과 어린 아이들만 고향에 남아 있었다.

물론 이것은  훗날 어른들한테서 들어 기억하는 것이다 .

할아버지께서 동산의 목화밭과 인삼농사로 인해 부를 이루기 시작한 할아버지(나에겐 고조부)를 기리며 서울서 덕수궁 정원 공사에 관여했던 정원사를 불러다가 작은 동산에 연못을 큰 것(동네 처녀가 빠져 죽어 수십년전 메운 상태다)과 작은 것 두개-모두 세개나 되는  정원을 만드셨고 그 동산 주위에는 느티나무와  키 큰  소나무가 많았다.

어머니는 떨어진 솔잎을 주으러 갈퀴를 가지고 동산에 나를 데리고 가셨고 나는 어머니 근처에서 놀고 있었다..

그때 하늘에서 나를 향해 오듯  낮게 날아오는 요란한 폭격기( 제트 전투 비행기)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평소 비행기만 보면 숨으라는 어머니 말을 따라 소나무 밑에서 나무를 끌어 안고 놀라 울던 길고 긴 공포의  시간은  세월이 지나도 영영  잊혀지지 않았다.

-만 세살이  되기전으로, 내가 태어난후  최초의 기억이다.

 

기억중에는 먹는 것과 관련된 기억이 누구나 그렇듯 많은 셈이다.

 특히 섭섭한 기억이야.

피난 시절 집에서 50미터 정도 떨어진 작은 집에 혼자서 걸어간 기억이 있다.-그곳이 작은 집임을 확인 한 것은  초등학교 시절 겨울 방학에 청주에서 고향  큰집에 놀러간 이후다

한낮 뜨럭위 마루위에서  작은 어머니께서는 여자애(현재 하와이 사는 사촌 누님이다)와 삶은 닭고기를 먹고 있었다.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어린 조카의 손에 닭다리 ,아니 입에 닭고기 한조각 넣어 줄줄 몰랐다.

당시 어린 나이지만  쑥스러움에 발길을 돌려 집으로 올라온 기억이 있다. -이것도 만 세살전후의 기억이다.

2년전 93세란 나이로 돌아가신 작은 어머니.  

돌아가시기전 안사람과 요양원으로  몇번  찾아뵌 적이 있다.

작은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신후 막내 동생에게  어린 조카인 나에게  왜 그렇게  인심이 야박했는지 꼭 한번 물어보고 싶었는데

못물어 보았구나 했다.

" 형, 내가 오늘  통닭 많이 사드릴께요."

막내 동생이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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