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미얀마(2019)

만달레이 힐과 제조시장(14)

Jay.B.Lee 2019. 3. 14. 18:10

 

쉐난도 관람을 마치자 길가에 서너대의모터 사이클 택시가 나를 부른다. 만다레이힐 까지 3,000짯. 비
싼 것 같기고 하거니와 위험하다.

Tok Tok 택시를 잡는 편이 나을 것같아 길건너 화려한 사원으로 들어갔다

잔디에서 곱게 차려입은 아가씨들이 서있다.

사원인줄 알았더니 결혼식장이었다.

아가씨들은 둘러리고. 

들러리들의 사진. 앳된 모습의 미얀마 처녀들의 모습이 사라진 만만치 않은 나이다.

결혼식장으로 들어온  Tok Tok 택시기사가 만다레이 힐을 가자고 하자 난색을 표했다.

결혼 식장에 온 것이  아닌가 짐작이 갔다.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1,000짯에 해준다기에 얼른 잡아타고 금방 도착한 곳이  만다레이힐로 간다는 트럭 버스앞이다.

Tok TOK 택시 기사가 영어로 말은 못하겠고 시간은 없고 도와는 주어야겠고 이곳까지 1,000짯에 데려다 준거라 짐작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사진의 이 트럭 버스가 만다레이 힐까지 올라가는 샤틀이다.

뒷화물칸에 의자를 놓아 앉을 수 있다.

 나까지 단 두사람을 태우고 급경사진 길을 올라 Tok Tok 택시로는 어림없는 급경사길임을 알았다.

수따 웅삐예 (SutaungPayea Pagoda)사원.

타일 바닥이 너무 매끄럽다

무색과 흰에 벽마다 경전으로 장식되어 금빛만 번쩍이든 미얀마 파고다나 수도원에 비하여  신선했다.

서울 한옥 담벼락에서 익숙했던  풍경.

계단을 따라 다녀왔는 데 이곳이 만다레이 힐 인지 정확히 알수 없었다.

 건물이 가리고 한낮의 더위가 뿌옇게 시야를 가려 공연히 시간 낭비 한것 같았다.

다음 여행자에게 만다레이 힐은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다

파고다에서 나와 다시 1,000짯짜리 트럭을 타려다 Tok Tok 택시를 발견 ,산아래 내려가 택시를 잡는 것 보다 편할 것 같아 옮겨 탔다 .

제조 시장 까지 3,000짯에 합의.

그런데 TokTok 이는 이 경사길을 어떻게 올라 온걸까?

 

 

나이든사람이 젊은이에게 이것 저것 챙겨주는 데 아버지인 모양이다.

미얀마는 아직 아버지의 권위가 사라지지않은 부러운 나라다.

사진을 찍으면 좋은 점이 있다. 더 친근감을 공유하고 친절해진다.

만다레이 힐에는 올라오는 길이 두곳 있었다 지름길이면서 급경사길. 완만하면서 먼길.

만다레이 최대 "제조시장"이다.

길가에서 파는 젝후르트(?)

깨끗하게 포장하여 파는 곳이라면 먹고 싶은 과일이다.

포장없이 노출된 과일이어서 결국 15일 머무는 동안 열대과일의 진수인 두리안과 망고를 먹지 못했다

망고는 태국 수입산으로 너무 비싸게 불러 사고 싶지 않았다(한개 1500짯`~2,000짯)

제조 시장에 간목적은 두가지다

 가방을 챙기며 넣었다고 생각했는 데 내의와 모자가 든 분류 백을 두고온 모양이었다.

분산하여 가져와 내의가 있지만 두장 정도 더 사두는게 좋을것 같았다.

간신히 발견한 도매상. XL사이즈가 여기선 제일크고 스판이라 문제 없다고 한다

 종업원들이 찾지 못하고 우왕 좌왕하는 동안 사장이 정확히 지시를 했다.

왜 사장과 종업원의 차이가 있는지. 사장의 머리엔 재고 위치와 수량이 머리에 있고 종업원들은 그렇지 못하다.

한장에 2,500짯(1,800원).

싸게나 파는 건지?  어디서 왔냐고 물어 서울에서 왔다니까 엄지척이다.

짐작한대로 주 상권은 이곳역시  인도계나 중국계 미얀마인들이 잡고있다.

 

이 상점은에선  공급되는물양이 상당하고 직원도 많았다.

중앙 카운터엔 주인의 딸같은 얼굴빛이 하얗게 고은 여자가 앉아 지시를 했다.

 

 

미얀마가 아니면 볼수 없는색의 잔치다.

      

 

옛 동대문 상가풍경처럼 운송인들의 모터 사이틀과 직원들의것이 뒤섞여 어지러웠다.

 

타나카를 칠한 건장한 아주머니를 붙잡고 사진을 찍었다.

친절히 응해주었다

시장옆에 서 있는 ToK TOK 택시를 잡았다 .

젊은 기사에게 말하는 분은 아버지같았다.

길에서 간이 음식장사하는 아주머니를 가르키며 안사람이라고 인사를 시키고 택시기사는 아들 이라며 자신도  길에서 장사를 한다.

완전히 문어발 기업이고 예비 재벌이다.

택시를 몇번 타다보니 지금은 사용않는 이 철길옆 도로가 지름길이라는 걸 알았다.

좀 더 젊었더라면 이곳을 이용하여 사업을 할수도 있겠다.

 

숙소에 돌아와 혹시 하여 헤자드 건너 왕궁 입구에 가보았다.

왕궁 앞 군인에게서 왕궁은 출입을 금하고 자신의 사진도 찍어선 않된다는 말을 들었다 .

나이로 보아 중사 정도의 직책이 아닌가 짐작했다.

찻집으로 유명하다는 Shwe Pyi Mo 카페를 찾아 갔으나 그 주소에 아무 것도 없었다.

친절한 기사가 어디로 전화하더니 환하게 웃더니알겠다며 다시 온길로 역주행하여 데려간 카페.

찻집 전용이  아니고 완전히 식당이었다.

미얀마어의 어감은 중국어 같은 느낌이 드나훨씬 부드럽다.

그러나 이곳은 사람수에 비해 엄청 시끄러웠다.

간식삼아 미얀마인들이 아침에 즐겨먹는 "모힝가 "를 시켰다.

터키 스프 "메즈멕 "(녹두로 만든 스프)맛 비슷한데다 쌀국수를 넣은 것으로 양은 많지 않다.

(국수+스프+라임+고추+고수+계란+튀김으로 구성)

소년 종업원들이 많았는 데 9살 ,10살 짜리 소년들도 있다. 

 

카페 위치: 66st.+27th st.

      

        쉐피모 카페에서 마신 인도식 짜이.

숙소에서 멀지 않아 천천히 주소를 따라 걸어 가기로 했다.

보잘것 없는 재료로 식사를 만들어 파는 사람들도 만나고.

옥수수는 미얀마 인 체구에 비해 얼마나 실한지

1,000짯(730원)에 5개 준다는 걸 그녕 500짯에 두개만 담아 숙소 직원에게 주었다.

숙소에서 10여미터 거리에 근사한 카페가 있다 단맥주는 팔지 않는다고 한다.

마음에 들던 카페.Generatiom Tea.

숙소 주위를 걷다보니 이쪽에 근사한곳이 많았다. 레스토랑,닭튀김집(무척 저렴하다).베이커리겸 카페. 구멍가게등

숙소에 돌아와 약도를 그려 1층과 옥상에 붙여 놓으면 여행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거라고 말해주었다.

숙소의 위상도 올라가고 .

"우린 이렇게 편리하고 아름다운 왕성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위용을 자랑하는 왕성의 탑은 감시탑으로 169미터마다 하나씩 있다.

아빠의 손을 잡고 저녁 산책 나온 꼬마 아가씨.

사진찍는 순간 손처리가 곱다.

 

이 더운 나라에 시베리안 허스키가.

 

        

점심으로 간 중국집. 어마하게 큰 집이다. 주소는 분명히 맞는다.

이층에 올라가자 결혼식장 만큼 대형 식당이다.내가 간  시간에는 단 한명도 없던 식당.

듬섬이 유명하다던데 차려온 듬섬은 냉동이라 맛을 칭찬하기 어려웠다.

셀러드를 시키고 여종업원의 권유로 작다는 스프를 시켰다.

 오래전 대야만한 그릇에 주던 한국 바지락 칼국수 그릇만하다.

세그릇을 먹고 포기했다.

남자 직원,여직원이 왕처럼 옆에서서 서빙을 해주었는데 맛에 비해 그들의 친절과 서빙이 모든 걸 덮고 넘어갔다.

 

차를 잡아준다고 1층 까지 내려와  친절을 베풀던 직원들.

 

꽃파는 할머니의 옷이 꽃보다 더 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