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미얀마(2019)

아웅산 순국 사절 추모비(5)

Jay.B.Lee 2019. 3. 8. 05:02

 

쉐다곤 파고다를 본다음 아우산 묘지를 향해 북문으로 향해 슬슬 걸었다.

택시 탈만큼 거리가 멀지 않고 걸을 수 있을 만큼 아직 온도는 높지 않았다.

작은 공원도 있고 .

 

북문 가까이 가자 새장수가 보였다.

아르메니아 코비랍 수도원앞에 비들기를 날리며 우리의 영혼에 묻은 때와 죄를  날려버리라는 것과 달리 이곳은 "방생 행사"를 위한 새들이다.

잡아 온 것인지 키운 것인지 사람들이 돈을 주면 새장사는 몇마리 꺼내어 하늘로 날려 보내곤 했다.

묘지 입구같은 곳에 사람도 없고 철문이 굳게 닫혀있다.

친벌한 미얀마 사람들이 잘못 가르쳐 주어 묘지를 결국 한바퀴 돌게되었다.

실수를 해서 또 다른 곳을 구경한다 싶어 천천히 걸었다.

붉은 벽돌의 아파트는 이 곳에선 고급 주택가처럼 보였다.

이 연립 주택도 시내 아파트에 비하면 괜찮아 보였다.

선진국의 외곽 도로 같은  수목이 우거진 아름다운 도로.

       

아웅산 국립 묘지(Martyrs' Mausleum)

 

묘지를 한바퀴 돌아 온 아웅산 묘지.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문앞에 여직원이 나와 서있다가 입장료 3,000짯(2,200원)을 받고서 닫힌줄 알았던 쪽문을 열어주었다 .

쪽문 조차 열어 놓지 않아 문이 닫힌줄알고 별도의 입구가 있는 줄 알았다.

정복을 입고 시시덕 거리고 있던 남녀 직원이 내미는 방명록에 기재를 해야했다.

그리고 외국인이라고  여권 번호까지 요구해 여권을 꺼내 꼼꼼히 적어야했다.

이곳에 묻힌 아웅산 외 희생자들이 두번 죽을 이유가 없는데 여권번호라니.

미얀마 독립 영웅 아웅산.-아웅산 수지 여사의 아버지다.

1947년 7월 19일 10시 37분 회의중 들여닥친 암살범에 의해 아웅산포함 총 9명이 희생당했다.

사진에 보이는 9명이다.

 

 

남쪽으로 쉐다곤 파고다의 탑이 보인다.

 

 

나 이외에 한사람의 방문자도 보이지 않는  아웅산 묘지.

아웅산 생전의 모습 사진

       

희생자 묘지와 기념탑.

9명의 희생자를 잔디위에 화강암으로  묘지를 쓰고  그뒤로 기념탑을 만들수 없었는지.

미얀마 국민이 꽃을 들고 참배하기에 너무 거리감이 있다

기념탑은 1984년 만든 것이다.

솔직히  말하건데 돈만 들인  흉칙한 조형물이 되었다.

 

   

       아웅산 묘지에 온 본 목적은 1983년 10월 9일 전두환 대통령 동남아 6개국 순방시 첫번째 방문지 미얀마에서 북한에 의해 폭파 테러로 숨진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함이었다.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폭파현장.

변변한 의료시설, 약품도 없던 그들이라 한국 수행원들의 비상 약품들을 사용하고 했던 기사가 떠오른다.

대한 민국의 국운이 있어 전두환 대통령은 이 참사를 피해갔다.

서석준 부총리,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동휘 장관등 인재에 해당하는 관료들이었다.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을 한 그분들은  요즘 얄삽한 관료들과는 구분되는 분들이었다.

그리고 이계절 대사등 수행원들 총 17명이 현장에서 순직하고 1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당시 김일성의 허락을 받아 8군단 소속 진모 소령,강민철 대위,신기철 대위등 3인 1조로 이룬 폭파 테러였다.

신기철은 체포후 도주하다 경비병 총에 사살되었고  진모 소령은 사형을 선고 받아 집행했으며 수사에 협조한 강민철 대위는 사형을 선고 받고 집행 유예로 장기수감중 2008년 양곤 인세인 교도소에서 53세로 사망했다.

입구 직원들에게 한국인들의 추모비가 어딘지 묻자 정문을 나가 왼쪽이라고 한다

한국인 추모비만 참배하겠다는 분이 있다면 굳이 아웅산 국립 묘지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필요가 없다

 

 

 

 

        순국 추모비에 17명의 명단이 새겨져있다.

 

 

 

 

        아침 일찍 쉐다곤 파고다와 아웅산 묘지를 보고 숙소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짐을 싸고 해도 시간 여유가 있었다.

사진: 숙소에서 함께 택시 비용을 나누어 타고온 젊은이들. 폴란드,홀랜드 청년들로 성격이 좋았다.

 

국내 에서 예약하고 온 나와 달리 현지에서 예약한 것이라  보딩 패스를 받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차이나 타운에서 공항까지 7,400짯(5,500원)

우선 셋이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홀랜드 폴랜드 여권 . 한명은 한국 여권색갈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한다.

대한 민국여권은 180개국이상의 나라를 No Visa로 갈수 있는 강력한 여권이고 세상의 어느 나라에도 없는독특한 여권 색갈이다.

특별히 구별 되는 유일한 색갈은 분명한데 세련미는 없다.

 

 

    국내선 공항은 국제선 공항 아래 200여미터 떨어져 있다.

별도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이점을 유의해야한다

공항내에 유일한 레스토랑 .

음식이 매우 정갈하고 맛있고 메뉴가 다양하다.

종업원들도 친절하고 분위기도 선진국 레스토랑 못지않게 아주 좋다.

 나중에 여행하시는분들께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곳.

내가 주문한  닭고기 볶음 국수. 보기만큼 맛있다.

닭고기 볶음 국수:4,800짯(3,500원)

두청년들과 같이 먹으려고 주문한 스프링롤.4,800짯(3,500원)

 

홀랜드 청년이 별도 주문해 같이 먹자던 새우 튀김.

여종업원이  음료포함 개인별 계산서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 그네들을 힘들게 할것 같은 미안한 마음에 폴란드 청년의 제안으로 3총금액의 분의 1씩 부담하기로 했다. 커피와 차는 내가 별로도 샀다.

잠시 나마 유쾌한 청년들과 즐겁게 보내고 헤어졌다 .

그네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2주간의 여행을 왔다. 보통 휴가가 2주 주어지나 한국인이고 외국인이고 미얀마 여행은 2주 정도 잡고 오는 분들이 많았다.

       

레스토랑 옆의 유일한 커피 샵. 국내 Tom  n Toms가 자랑스럽게 진출해 있다.

Myanmar National Air.

중간에 음료수 콜라 한잔과 달고 단 빵두개가 들어 있는 과자 상자 를  주었다.

 

국내선 항공기는 새것으로 한목적지만 가는 게 아니다.

양곤 -헤호 -만나레이--바간 -양곤이렇게  순환 운행한다.

마침 옆자리에 앉은 분이 한국인이다.

이곳에 온지 25년째 . 북부 SHane 주에서 정부에서 토지를 임대하여 농사를 짓고 있다 한다.

약 80만평으로 임대는  최장 25년까지 가능하다고  내 질문에 대답했다.

미얀마의 토질은 좋은 편이고 국토가 넓어 미개척지가 많고 미얀마 사람들도 열심히 농사지으려 하지 않아 빈땅이 많다고 했다.

한국에 근무시 자기가 개발하여 만든 제품을 허무하게 순식간에 빼앗기고 (대기업?) 찾은게 미얀마  였다고 한다.

25년전의 미얀마 였으니 오죽했으랴 싶다.

북부는 선선하고 농사짓기에 좋아 주로 콩과 무를 경작하여 ,무말랭이로 한국에 수출한다고 한다.

혼자 사냐고 묻자 아내가 한국에 있어 일년에 두세번 가고 곧 이쪽으로 완전히 합류할 것이라고 했다

이제 자녀들 셋이 모두 해외-일본 ,싱가폴 ,중동에서 대학 교육을 마쳤다고 했다.

그분은 미얀마에 살아도 전형적인 한국인 아버지였다.

근면하고 책임감 강한 성실한  아버지.

건조기로 건조하냐는 질문에 건조기가 너무 비싸 비닐 하우스처럼 짓고 자연건조한다고 했다.

무말랭이는 만두나 무말랭이 무침에 많이 들어 갈 것 같았다.

미얀마 교민은 3,600여명. 불법 체류자는 4십여명.

한국인인 끼리의 소송이 300여건이라고 했다.

그 이야길 미얀마 판사에게서 듣고 부끄웠다고 한다.

왜 한국인끼리일을 자기네들이 해결하지 미얀마 판사가 해결해주어야  하냐고.

40조원의 미얀마 부채를 탕감해주고 미래를 바라보며  천천히 사업을 확장해가는 일본인들과 격이 다른 한국인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미얀마 자동차 시장은 일본차 일색이다.

그 것도  LHD차량 도로에서 RHD(오른 쪽 핸들) 차량을 팔고 있는 일본의 로비 저력이다.

일본 중고차의 거대한 무덤이 되어가고 있는 미얀마

미얀마  지도층이 바라보는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미얀마인이 드라마를 통해 보는 이미지와 많이 다를 것으로 짐작했다.

운좋게 옆자리에 앉게된 한국분에게서 미얀마 에 대한 전체적인 개요를 잘 들은 셈이었다 .

비행기가 헤호 공항(인레 호수가랴는 관광객들이 내린다)에 도착하자  여행 잘하시고 ,건강하시라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나는 헤호에서 20여분 을 더 날아야 했고 빈자리에는 새로운 승객들이 들어 오기 시작했다.

비행기라기보다 버스 같은 편한 교통 수단이다.

오전 비행기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오후 비행기는 시계 방향으로 돌며 운행을 한다.

 

 

Mandalay 공항에 도착. 화물이 1번 에서 나온다고 하더니 1번에서 나오다  멈추더니 2번에서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안내문은 여전히 1번이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15,000짯(11,000원)이라는 공항 안내 여직원의 말이다. 45키로 라고 .

지방도시(미얀마 제2의 도시이긴하다)에서 왜 시내에서  너무 멀게 공항을 지은 것일까.

땅여유가 많은 미얀마에서 도시에서 먼곳에 공항을 지은 이유가 궁금했다

택시는 일본 대형 중고 승용차로 택시기사는 친절했고 정확히 주소지 (26st+72& 73 st. Central Madalay)에 정확히 내려주었다.

나를맞는 여직원은 미모의 얼굴을 갖추었고 영어를 잘했다.

그리고 대단히 친절했고 열심히 일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Masion Mandalay 경영주였다. 싱가폴계 중국인이라고 했다.

어쩐지 일한 모습이 달랐다.

사업 수완이 대단한 여성이다.

또 왕궁 옆에서 Hostel을 경영하기에 알맞은 커다란 3층 짜리 대형 주택을 찾아 냈다는게 대단한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