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우리가 사는 아파트 앞 풍경
아침 눈을 뜨고 커튼을 걷으면 마주하는 풍경이다.
오늘은 날씨가 어떨까 생각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식탁을 아예 베란다 앞에 옮겨다 놓고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며 매일 보는 풍경을 지루하지 않게 내려다 본다.
이제 재건축으로 이주하면 다시는 못 볼 풍경이다.
아파트 재건축이란게 모든 지난 삶의 모습들을 송두리채 뽑아 가는 건줄 실감을 못했다.
교회 운영위원회 위원으로 한달에 한번 회의에 참석한다.
장로 제도가 없는 평신도 교회로 1년 임기로 운영 위원를 맡아 한다.
사람이 적어 다시연임 되는 경우도 많다.
사실 작은 교회라 그렇지 큰 장로 교회 같으면 장로회의에 해당된다 하겠다.
위원중에 교직에서 은퇴한 위원이 내가 제안한 안건에 대해 한마디 했다
"생각은 했었었는데..."하고 자기 맡은 분야에 대해 미안함을 표했다.
오래전 직장을 퇴직후 시간이 많이지자 아파트동네를 위해 작은 봉사들을 시작했다.
앞동산 공원 청소하기,사는 동 주변 청소하기,폐건전지통 만들어 쌓이면 폐기 장소에 가져다 놓기,형광등함 만들어 모아지면 폐기함에 차로 나르기,나무 가지잘라주기,아파트내 도로 쓰레기 줍기 ,길 고양이 식수 갈아주기등.
내 공원인양 일주일에 한번 올라가 청소하는 앞동산엔 매주 수거하는 소주병,막걸리병이 20여개가 넘었다
낮에 소풍차 올라와 술마시는 사람.후배들에게 술가르친다고 몰래 마시고 가는 고교생들.
IMF지원 받던 시기로 인한 실직자들이 많았던 시절이다.
밤늦게 술마시곤 한가닥 양심은 있어 술병이 보이지 않게 숲속 한군데로 내어 던진 소주의 숫자가 점점 늘어 났다,
조용한 동산 숲속이 몇해동안은 놀러온 아이들소리로 시끄럽더니 어느해 태풍(콘파스)으로 나무들이 십여그루 나무들이 쓰러진뒤 작은 공원의 생태계가 무너졌다.
그 사이 사이 자란 가시나무들과 칡넝쿨 등이 나무 가 빈자리로 얽혀 앞동산은 완전 정글이 되어 버렸다.
까마귀도, 아이들도, 술꾼도 더 이상 오지 않는 공원이 되었다
봄날이면 동산 햇볕 좋은 곳에서 잠자거나 암내를 내던 고양이조차 접근이 어려워선지 더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들이 졸업한 동북 고등학교(손홍민이 이곳에서 다니다 해외로 갔다.)옆 인도위로 급경사진 학교 축대가 있다
봄이 시작되면 축대 아래로 축 늘어진 개나리가 보기에좋긴 하나 통학하는 학생들 머리에 닿아 피해 가는 학생들이 여간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토요일 새벽 마음 먹고 사다리와 정원용 손잡이가 큰 전지 가위를 가지고 학교 담벼락 뚝아래 길게 늘어진 개나리를 잘라 주기 시작했다.
마침 어느 남자분이 지나며 자기가 이곳 선생인데 "평상시 생각은 있었는데"운을 떼며 자기도 해보면 않되겠냐고 청을 한다.
톰소여의 담장 페인팅도 아닌데 큰 가위질이 재미있어 보였나 보다 .
선생에게 가위를 넘겨주며 선생을 조금 놀려주기로 했다.
"선생님 ,전 대기업에서 일했었는데 학교 선생님과 기업체 출신이 어떻게 다른지 아십니까?"
"......."
"선생님들은 생각만하고 기업체 출신들은 즉시 실행에 옮긴다는 겁니다."
속이 무척 뜨금했거나 무안했을 것이다.
아파의 정문에 해당되는 큰 입구 왼편에는 둔촌 초등학교가 있다.
학교옆 정문 에서 오는 길 중앙 분리대 끝에는 30여년전 심은 둥근 향나무가 많이 자랐다
둥근 향나무 옆으로 횡단 보도가 있어 자동차로 지나기가 위험한 곳이다.
차에서는 아이들이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고 아이들에겐 다가오는 자동차가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가 형성된 곳이다.
관리 사무소를 찾아 나무밑을 잘라 주던지, 뽑아 버리던지 아이들 안전을 위해 조처를 취해 달라고 했다.
관리소 담당 책임자왈 그도로는 아파트 아닌 구청 소유 도로라 "나무 하나 마음대로 건드릴 수 없다"는 대답이다.
정말이지 왜 이런 인간들을 우리 주민이 먹여 살려야 하는지 한심해 더이상 얘길 하고 싶지 않았다.
일하기 싫은 태도와 변명으로 무장한채 책임 소재가 먼저고 아파트 단지 아이들이나 주민의 안전은 관심도 없다.
이런 무사 안일주의자들을 상대하다보면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오지랖같지만 이왕 뺀칼이다
즉시 둔촌 초등학교 교장실을 찾았다.
여자 교장 선생님이 학부형 같지않은 나를 의아하게 여기며 맞아주었다.
난 이곳 주민이고 집아이들도 해외 가기전 3학년 ,5학년까지 다녔던 학교라고 인사했다.
아이들 횡단 보도 안전 문제를 거론하고 관리 사무소의 부정적 자세와 무능을 지적한 다음 "구청에 민원을 내면 학교일이라 일순위로 조처를 취해줄겁니다"라고 얘길 해주었다.
책임 소재에 대한 약점을 찌르면 공무원은 약해진다.
이야기를 해준 뒤의 교장 책임도 마찬가지다.
교장이 얘길했다.
"저도 평상시 생각은 했었는데요 ........"
일주일뒤 구청에서 다녀갔는지 아파트 정문 진입로 부터 학교옆 횡단 보도 까지 150여미터정도를 나무 전지와 잔디를 깨끗이 깎았고 <문제의 향나무>는 승용차 운전자가 아이들 다리가 잘 볼수 있게 깔끔히 정리 되어 있었다.
아이들도 오는 승용차를 볼 수가 있게 되어 있었다.
그후 나는 "저도 생각은 했었는데...."의 의미는 "생각없는 자들의 판에 박힌 단순한 변명"이라고 여길 수 밖에 없었다.
단지 선생님들 사이에서만 흔히 입에 달고 있는 변명이라면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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