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사는 이야기

막바지 여름 휴가(1)

Jay.B.Lee 2016. 9. 6. 20:46


늦게 사진 정리를 한다

여름휴가

사실 매일 놀면서 휴가라 이름을 붙이기가 어색하다.

딸이 그 동안 외손자를 돌보아온 우리에게 쉴틈을 주기위해 해외 여행 하라고 오랜전 긴휴가를 받아 놓았다.

2주간-14일이다

안타깝게 내가 족저근막염으로 고생하며 치료중이라 여행을 장담못해 아내도 일찍 포기하고 말았다.

북유럽이나 일본 북해도를 가보고 싶어했던 아내.

실망시켜 미안하나 불가항력이다.

건강했더라도 북해도는 가보고 싶지 않은 곳이다.

혼자라도 스페인 ,포르투갈 을 가보라고 권해도 그러기는 싫다고 했다.

외손자와 딸내외가 베트남 나트랑에서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동안 할머니 보고 싶다며 화상 통화를 매일 하던 외손자 얼굴을 한번 보고 

매정하게 동해안 속초로  떠났다. 

작년 내가 터키로 한달간 여행  떠나기 전날 속초 살던 친구는 하루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부인은 장모의 치매로 인해 수속을 연기해 놓고 혼자 먼저 미국으로 떠난 친구.

그 친구가  잠시하며 머물며 살던 곳이 속초로, 속초의 매력에 빠져 5년간을 영랑호 옆에 개 두마리를 두고 살았다.

그가 있는 동안 세번이나 찾아간 속초.

이번 여름 휴가는 아내에겐 처음인 곳들을  안내해주고  친구와 함께 보낸 시간을 회상한다

그와 나는 같은 H 그룹에서 미국에서 함께 연수를 받았다.

내가 북미에 있는 동안 그는 런던에서 7년을 머물렀다.

어느 날 한국에 있던 아들과 미국에 있던 두아들이 거의 같은 시기에 결혼했다.

갑자기 날아온 영주권.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그는 동부에서 이사온 아들 내외가 사는 L.A로 떠났다

그가 자식만큼 끔찍히 위하던 개 두마리도 서울에 남기고 갈정도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속초에서 보낸 시간이 꿈결같다고 했다.




40년전 회사 산악반에서 대청봉으로 가기위해 백담사 부근에 일박을 하고  대청봉에 갈 때 지나던 백담사다.

아내에게 백담사를 보여주고 전 전두환 대통령이 머물던 방을 찾아 보기로 했다.

 차는 올라 가지 못하고 샤틀 버스를 타야한다고 입구에서 막는 다.

버스 요금 2.400원.

 왜 이리 비싼가 했더니 백담사 입구까지 7키로다.


다원.

북,종 외에 목어가 없다

만해 한용운 



만해 기념관에서 본 백담사

전두환 대통령이 머물던 방. 겨울에 무척 추웠을거라고 짐작한다.

특히 세면하고 목욕이 불편하다고 했었다.

배신자들을 한번 손봐주고 싶었다는 생각이 간절햇다는 전두환의 심정이 짐작이 간다.


조금 내린 비로 인해 백담사 계곡은 세차게 물이 흐른다




미시령 가는 길



설악동 "켄싱톤 스타 호텔"에 있는 런던 2층 버스




영국푸으로 장식한 호텔 로비











켄싱톤 호텔은 Eland 에서 인수하여 운영하는 호텔이다.

9층 Abbeyroad 레스토랑의 점심 특선 .

이 곳에 머물지 않으면서 이 레스토랑을 찾은 건 비틀즈 기념관이기도 해서다. 

비틀즈가 사인한 기타,입던 옷,음반등 여러가지를 관람할수 있고 특히 음식이 정갈하고 맛있다. 

커피도 포함된 가격으로 이곳에서 설악산을 바라보는 풍경이 좋다. 지나번 친구의 안내로 이곳에 왔을 때는 테라스 공사중인데 오늘은 비가 살살 내린다.





가을 햇볓이 좋은 날 다시 이 곳에서 앉아 물들어 가는 설악산을 봐야겠다.







다음으로 아내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곳. 

고성방향으로 잠간 올라가 화암사 찻집"난야원"을 찾았다.

호박 식혜와 대추차.


쌀이 나왔다는 전설이 있는 수바위



      


딸이 마련해준 숙소 .한화 소라노 리조츠 전경. 리노베이션을 해서 만족스럽다.




저녁은 속초 엑스포 타워부근 창초 수물회"집에서 물회를 선택했다. 부근의 "봉포 머구리집'은 가본적이 있어 새로운 곳을 오고 싶었다.

전복 해삼 물회 -35,000원(2인분)

밑반찬도 맛있다. 

어떻게 먹느냐고 묻자 젊은 처자가 물회를 비벼준다.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어색해 보였는지 나이든 여종업원이 빼앗아 썩썩 얼음과 함께 비벼준다.

젊은이 위주의 분량이라 우리에겐 양이 많다.

종업원들이 아주 친절하다.

네비주소로 찾아간 단층집은 생선 구이집으로 변햇고 옆에 200미터 전방으로 이사했단 안내문이 있다.

4층 빌딩에3층가지 물회집,4층은 카페다.




 

다음날 찾아간 회진포-이승만 별장,이기붕 별장 ,김일성 별장을 돌아 보기로 했다.

이승만 별장의 기념관,

건국 대통령을 이렇게 작은 기념관에 모셔야 하는지.

무는하다 못해 사깃꾼 같은 대통령 기념관들은 지어대며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이 없다는 건 이 민족의 수치다.

과오는 덮어주고 공을 인정해주어야 하는데도 이나라엔 이념과 갈등의 뿌리가 너무 깊다.

     


필요한 위기에 시기에 인물들이 있었다는 건 우리민족에게 행운이엇다. 

사형을 언도받고 감옥에서 모두 콜레라로 죽어 나갈 때 청년 이승만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미국에 유학 ,이 나라를 위해 헌신했다. 

하와이에서 한국에 돌아 오고자 했으나 한국의 정치 상황으로 박정희가 허락하지 않아 실망하여 그길로 일어 나지 못하고 사후 귀국해 동작동 현충원에 묻힌 일은 안타깝다.

한국에 갈 여비가 없어서 걱정하던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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