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창고에 넣어 둔 박스들을 정리하고 버리기로 하며 발견한 편지들.
오래 간직해온 덕에 추억이 되었다.
그 중에 이름이 무척 낯설게 다가오는 편지.
낯선 이름 .아 그때 여학생의이름이 그랬나 .
나에게 편지 했었다는 기억조차 남아있지 않던 여학생.
이름은 그렇다고 해도 편지를 몇번 받았다는 사실을조차 기억못해 미안한 마음이다.
지금쯤 어디서 살고 있을까.
얼굴 모습을 떠 올리지 못한다.
단지 눈이 무척 예뻣던 학생이었다는 걸 간신히 기억해낸다.
제대후인1년이 지난 4학년 봄날 ,빈 강의실을 잘못 찾아온 신입 여학생 둘.
그 인연으로 강의실에서 대학생활에 대해 조언을 해준 적이 있을 것이다.
난 뜨거운 여름을 거쳐 가을을 보내고 몇군데의 대기업 합격 통지서를 받고 초겨울 학교를 떠났다.
그리고 간간히 받은 몇통의 편지들.
그 여학생은 나를 "아저씨라 불렀다.
신입생에겐 제대후 복학한 선배들이 너무 멀게 느껴졌을 것이다.
바쁜 회사 신입 사원 생활로 잊혀져가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며 마음조차 주지 못했다.
지금은 어디서 살고 있을까. 살아 있을까.
대학 2학년을 시작하며 쓴 편지다.
살아 온 날들이 행복하였기를!
이제 이름을 기억하자
대부분의 정리가 끝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언제고 가볍게 떠 날수 있다는 안도감이 나를둘러싼다.
고뇌와 함께했던 청춘의 시간. 그 여운 .
그 시간 마저 없었더라면 인생은 얼마나 비참했을까.
Dear 아저씨,
지척거리며 내라는 비는 언제 그칠까
쟂빛 하늘은 내 마음인양 우울합니다.
비내리는 Campus는 왜 그리 쓸쓸하게 보이는 걸까
그 속에서 내가 서있다는 게 못견디게 비참해져서 학교를 내려와 버렸습니다.
주위의 애들은 한결같이 패잔병 처럼 양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자신 없는 표정들일까
그 속의 내 자신이 불쌍해서 실컷 울었으면 후련해지겠습니다.
형태를 알수 없는 작은 아픔들이 가난한 마음에 파고듭니다.
사방에서 나를 짓누르는 허허로움.
어떤 불안함이 자아를 인식한 순간마다 가슴에 부닥쳐 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청춘은 인생의 왕자 ,아름답고 참된 모든 것을 소유하고 즐기고 누릴 능력이 있고 권리가 있다.
내가 만일 다시 대학생이 된디면 나는 어디까지든지 젊음을 향락하겠다."고 했건만 나는 도대체 뭘까
거리를 배회하고 많은 웃음을 웃었으면 그 뒤에 오는 것은 그 것에 비례하는 것 같습니다.
짜릿한 공허감에서 허우적거리니까요.
회상의 강가에서 원색의 마음을 줏습니다.
찌들린 마음 씨에서 다소라도 음악과 색채와 향기의 기억으로 자신을 무마시키고 싶은 절박한 순간일까요
괴롭다는 단어가 그 의미를 생각해 보기전에 매력적으로 들리는 것인지 자꾸만 그 단어가 가까이 왔다가 멀리 가버리고 그리고 또 다가옵니다.
인생을 살아 보지도 않고 괴롭다는 것은 산을 오르지도 않고 험하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솔한 얘기겠지만.....
아직은 내 영역과 시야가 좁은 탓일까
좀 더 넓게 바라봐야지 .
편견은 오류를 낳기 쉬우니까요.
진짜 아우렐리우스 말처럼 이 우주 만상에 비해 네가 향유한 부분이 어떻게 적고 영원한 시간에 대해 미소한가를 생각하라 .
뭐 그리 울고 웃고 하느냐?
소설속의 주인공처럼 슬픈 일,괴로운 일 일랑 내일 생각하자.
아저씨!
제 넋두리 듣느라 정신없죠?
혼자 울다가 웃다가.
처음엔 진짜 괴로워서 펜을 들었는데 이제 가뜬해졌어요.
내일은 비가 개이고 푸른 하늘이었음 좋겠군요.
며칠 뒤엔 제가 명랑해져서 아저씨 말대로 대학생활을 추구하며 보낸다고 다짐 할지 모르지요
전 바로 명랑해져 버리니까요.
그 땐 쾌활한 글 드릴게요.
안녕
74년 3월 7일
영 드림.
머나 먼 사념의 모퉁이에서
오늘은 또 바람을 움키고 섰습니다.
주어진 일상을 깨고
조화된 음의 그윽함을 귓전에 두고
푸른 해원을 마음 껏 달리는데
문을 열면 흐르는 시간
빛자란 노을
무언의 경이로움에 다가서는 아픔
한자락 하늘 빛에서 사운대는 포푸라 잎새에서
작고 동그란 나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나태해진 사상
초췌해진 자아에
한가닥 가느다란 여름의 숨소리.
푸른 계절속
수없이 서성이던 핑크빛 언어.
--여름날 어느 편지에 동봉해 온 그녀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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