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시절, 군대,군에서 받은 편지들

군시절 그녀가 보내온 편지(12)

Jay.B.Lee 2016. 8. 19. 05:17

다시 찾은 그녀의 편지 세통중 두번째편지 .

1969년 3월 입대후  내가 군생활 9개월 ,년말에 보낸 두번째 편지에 대한 답신이리라.

그녀가 대학 2학년말이다.



J 씨

꽃이 피었다 물들고 시든 삼백 예순날의 그 역경이 아는 새 모르는 새  다 흘러 버리고 난뒤-----.

The end 라는 말의 의미는 역시 허탈이라는  결론입니다.

2학년말 고사를 끝마치고 캠퍼스를 한번 휘둘러 보고 내려오는 비탈길.

경험 하신바 있겠지만 정말이지 심장의 피가 영하로 식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어쨋든 끝나고 있다는 사실과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는 것 .

허지만 무엇을 시작해야만 할지 모르고 있는 투명한 초조를 생각하면서 보내주신 4장의 긴 편지에 답을 쓰는 것으로 이시간을 소요하리라 생각했던 겁니다.

보내는 것은 또 어느 날이 될런지 모르지만 .

위문 편지를 쓰는 기분 정도 .

아니 정말은 아무리 해도 좀 생각나는 지난날의 *돌체에서의 고백(?)같은 걸 회고하는 기분으로.


J씨,

그 곳 카키의 사나이들은 지금도 내무반에서 스토브의 붉은 불빛을 보고 계십니까?

고독과 ,갈망과,배고픔이 있는 곳.

그리구 전쟁의 참담함과 죽음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는 자들,

때로는 선망이 되기도 합니다.

세모의 분망함 속에 흥청거리는 12월의 한복판에서 타인들의 술타령을 넌즈시 흘겨보며 이리갈까 저리갈까

흘러가버린 유치한 유행가 가락에 새삼스런 공감을 그득히 느끼기도 하며 .....

여기엔 잉여 인간들이 가득하답니다.

나처럼 별스럽지 않은 일에 울기 잘하고 최신형 유행 모드를 걸치고 거만스레 걷고 있는 여자들은 다 잉여 인간인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

그들대로 얼마나 존재 가치가 있는가를 .


J씨,

너무 비웃지 마세요.

좀 더 커지면 울지도 않고 또 나자신을 다 큰 여자라고 자부하는 넌센스를 깨닫게 됩니다.

허지만 지금은 내가 High Level 이 아니라는 생각만으로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멋대로 잘난척하고 멋대로 사는 겁니다.

*지예,Cosmos,Naive ,밤하늘의 트럼펫,Nihil

파랗게 맑았던 시절의 기억들.

J씨처럼 송두리채 꿈꾸고 있었던 지난 날의 나를 오늘에 비교해주면서 넌 왜그리 때묻었냐고 묻는 사람.

나로 하여금 향수에 헤매게 하지마십시요

세월을 따라 그렇게 흘러가는 게 인간이 아닙니까

참다운 인생을 누린다는 것이 결국 무엇입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

그래요 정말 가능하다면 하고 싶은 것을 다 해야 하는 거예요

성직자들은 그렇게 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며 탕아는 또 그렇게 하고 싶었기 때문일 거예요

다만 상관도 없는 제 3의 인간들이 그를 성직자라 이름하고 탕아라고 이름 했을 뿐 근본적인 선악은 뚜렷한 척도가 없는 겁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건 그건 미덕입니다.

전 하고 싶는 것을 마구 해버리는 습관 때문에 J씨 처럼 고고한 사람에겐 때로 이해할 수 없는 여자로 취급됩니다만 .

허지만 아무래도 그건 나랑 하등의 상관이 없는 걸요.


Mr. 리

아마도 그곳은 바다가 가까이 있나부죠.

무슨 노래가 듣고 싶으십니까?

제가 보내는 곡 "어느 소녀에게 바친 사랑"을 마음 속으로들으시면서  생각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보십시요.

석달 가까운 동기 휴가를 가장 바람직하게 해줄 일, 전 그 걸 생각하겠습니다.

다음 답장할 시간 있으시담 제게 그"일"에 대해 좀 충고해 주지 않겠어요?

대충 생가나는 건 책 좀 읽고 ,영화가고,단어 암기,Tess번역,눈밭 헤매기,유한 속에서 가능한 한 행복을 찾을 것등.

생각은 꽉찹니다만 실천 가능성은 얼마나 될런지......

Mr.리

그럼 안녕히-

눈밭에서 돌아온 날 밤 생각이 난다면 또 편지 하겠습니다.




1969.12.13

AK


편지의 끝자락에 그녀는 이렇게 썻다.

'연애같은 거 하구 그래요'


*돌체(Dolce)에서의 고백

음악 감상실로 이용한 클래식다방이었다. 

아마 그녀와 차를 마신적이 있어 그녀가 자기 얘기를 했나보다.

 그녀는 친구의 여동생과 함께 영문과 1년생 ,난 경영학도로 2학년 때다.

그녀는 성격이 활달했고 책과 음악과 영화를 무척 좋아해 친구처럼 얘기가 잘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예,코스모스 naive ,밤하늘의 트럼벳,Nihil

-아마 그녀가 좋아하는 단어로 지예는 특히 자기가 갖고 싶었던 <이름>으로 짐작한다.

집에서 지어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그녀의 편지 뒤엔 낙서들이 있었다. 

편지 글과  달리 글씨체가 삐뚤 비뚤한 것은 졸린 눈으로 썼거나 술먹고 썼거나 짐작한다.


찬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걸인

민주주의의 쓰딘 쓴 모순.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이리도 가쁘게 설레이느뇨


그전 새한 다방은 지금 목화로 바뀌었답니다.


눈은 밤의 강물, 낭만의 가슴이어라


사람들은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언제나 새 것을 추구합니다.


날개 아프더라도 

또 떠나야 하는 철새 

죽음 이란 종착역으로.

                                                    

사람은 사랑할 수 있는 가능으로 삽니다.


아 눈이 내리네 아 눈이 내리네 

지난해 이브의 추억이 

지금은 사라진 그대의 길을 따라 


절 미워하셨죠

거 다 술잔이 오가지 않은 까닭이오.


당신한테 이런 편지를 쓰는 데 대한 이유같은 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