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동서문동 의 밀양집 국수(곱배기)
오래 살다 보니 아내를 통해 외식할 기회가 생겼다.
아내의 친구 남편이 저녁에 초대해주어 우리와 다른 부부가 참석해 강남의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수더분하게 생긴 두 부부가 역술인들에게 심심풀이로 사주 손금 이름풀이등으로 운명을 보면 모두 자기들을 "타고난 부자"라고 부른다 한다.
자수성가도 아닌 타고난 부자.
그말이 재미나 이곳 저곳에 들려 보아도 모두 답이 같았다라는 얘기는 오래전 들어 알고 있다.
부자라고 해서 남에게 어디 이해 관계없이 밥산다는 마음을 먹기가 쉬운가.
아내의 친구부부는 부자라도 퍽 겸손하고 해마다 Unicef 등에 큰 금액을 기부하곤 한다.
VIP 대접을 융숭하게 받는 단골 호텔에서 식사후 술자리까지 옮겨 적지 않은 비용이 나왔을 것이다.
그 비싼 음식을 먹으며 서울의 국수집이 어디가 유명한가 하는 화제가 등장했다.
값비싼호텔 음식에 비해 7-9천원 짜리 국수를 논한다는 것이 사실 조금 우습지만 늘 호텔에서 식사만 하는 것이 아닐터이다.
국수를 좋아하는 내가 그 중 처음 들어 본 집이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 부근에 있는 "밀양"집이다.
외손자 돌봐주느라 한동안 나들이를 못한 아내에게 바람을 쐬줄겸 밀양 국수-성북동 수연산방-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영화감상, 이렇게 코스를 잡았다.
처음 지나가보는는 성신여대 부근 골목길이 복작복작하다.
뒷골목을 걷자 달콤한 빵굽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참 국수집이 태극당 부근이라고 했다.
성북동 (삼선교) 국시집에서 일하다 나온 분이 차린 집이라고 한다.
홀 식탁몇개와 바닥에 앉는 테이블이 댓개 ,생각보다 규모가 작다.
생선전이나 수육은 제외하고 오로지 국수만 맛보기로 했다.
아내는 보통(6,000원)나는 곱빼기(7,000원)를 시켰다.
점심 손님들이 모두 빠져나간 시간이어서 서너명의 손님들과 함께 국수가 새로 나오길 기다렸다.
국수의 국물을 우선 맛보았다.
성북동 국시집이나 소람에 비해 진하진 않다.
가격 차이라고만 간주하기엔 좀 그렇다.
국시집처럼 파 간장양념대신 고추 가루 양념이 처음부터 얹어 나온다.
붉은 고추가루가 양념 국물이 붉게 물들인다.
내가 좋아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반찬은 배추 김치만 주는데 김치색갈이 너무 탁하다 .
상큼한 맛도 아니고 냉장고에서 갓 꺼내온 시원한 김치도 아니다.
국수 면발은 부드러운 대신 약간 꼬들꼬들하다.
국수집 분위기는 한참 떨어지나 국수맛은 괜찮은 편이다.
그렇다고 남에게 강력하게 추천해줄 정도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가보고 싶은 집이 혜화동에 있는 "명륜 칼국수"(중국 리장 여행시 일행이 소개했다)가 있다.
그리고 계동 현대 사옥 부근의 "비원칼국수"만 다녀와 나의 개인적인 칼국수 기행은 끝내고 싶다.
아는 집에서만 열심히 먹을 생각이다.
비원 칼국수는 처음 성북동 국시집을 흉내 내었던 곳으로30여년전 현대 계동 사옥 근무시 자주 이용했던 집이다.
뜨겁게 처음 먹을 때는 부드럽지만 뒤에 남은 기름 엉킨 국물에 마음 상하던 집이었다.
장소가 바뀌어 창경궁옆 옆 원서동으로 이전한 모양이고 어떻게 변했는지도 궁금하다.
나오는 길에 태극당에 들렸다.
파리 바케트는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춘것인지 그 많은 빵중에 딱히 살만한 것이 드문 반면 태극당엔 먹고 싶은 빵들이 즐비하다.
우리 먹을 것 ,손자줄 것 이것 저것 고르는 아내가 즐거워 보인다.
소설가 상허 이태준(1904-1970?)이 살았다는 수연산방.
소설가 이태준은 월북작가여서 작품 자체가 소개되지 않다가 지금은 "돌다리""달밤'같은 단편이 다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불행한 삶을 살았던 이태준은 이 곳에서 살았던 몇년이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한다.
"문장 강화(文章講話)"를 쓴 작가다.
고교시절 그 책을 몇번 읽은 적이 있다.
교교시절 국어 시간이면 시나 단편소설,소설등 교과서에 기재된 내용을 가지고 읽고 해석하며 대학 입시에 나올 예상문제를 푸는 것이 고작이었다.
대학에 가는 것이 지상의 목표였던 시절이다.
선생님들에게서 청소년 시절에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들을 권유받거나 직접 에세이를 쓰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독후감을 제출하게 한다던지 주제를 주고 글을 써오란 숙제는 전무하였다.
우리들에게 글은 어떻게 쓴다던지 지도할 마음도 ,열정도 없었던 당시의 국어 선생님들이다.
비록 지방의 일류 고교라 부르긴 했어도.
학교 교지에 내려고 글을 써간 동문에게 국어 선생이 무조건 내가 직접 쓴 것이냐고 야단치며 다구치더란 얘길 친구에게서 들었다.
내겐 조금은 갈급한 마음이 있었나 스스로 공부하고자 사서 읽었던 책이" 문장강화"다
붉은 색갈에 씌운 비닐로 덮개를 한 책.
오래동안 소장하다 언제가 버리고 말았다.
수연산방에서 주문한 단호박 아이스크림(9,000원)과 팥빙수(8,500원혹은 12,500원)에는 강정과 생강 과자가 딸려 나온다
빨간 메뉴판에는 모든 것을 정성껏 만들었다고 누누히 강조했다.
더운 날씨 탓에 얼음이 녹아붙어 돌덩이처럼 꽁꽁 얼어 붙었다.
부드럽게 녹아 나는 얼음위에 팥을 떠먹는 기대감은 저만치 가버렸다.
혼자라면 당장 종업원을 불러 다시 만들어 오라고 하겠지만 그냥 먹겠다는 아내말에 참고 말았다.
근대 문화재로서 이 아담한 한옥이 찻집으로 자리잡아 성북동의 명소가 된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비싼 가격에 한결같지 않은 서비스라면 장삿꾼집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릇을 미리 냉장실에 차게 해 놓는다던지 손님들에게 주문한 빙수나 이이스 크림이 나갈 때 단열재 그릇에 넣어 가져간다던지 조처를 취해야 한다
에어컨 잘나오고 편한 의자있는 곳을 마다하고 쭈구려 앉아 한옥의 운치를 즐기려간 사람들에게 좀 더 겸손해졌으면 좋겠다.
가격이나 품질에서 .
수연 산방의 아름다움은 작은 가옥에 앙증맞은 작은 누각방이 있다는 것이다.
유리창이 있어 근대 가옥임을 말해준다.
광화문 시네큐브는 흥국 빌딩 지하 2층에 있다.
햄머링 맨이 하루 종일 해머를 가지고 내리고 올린다.
시네큐브는 예술 극장이라 하여 처음 관객이 적어 부진했는지 문닫는다 소리가 나오니 몇년전이다.
지금은 많은 관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한번 영화관을 찾게 되자 자주 찾게 되었다.
무엇보다 조용한 로비가 좋고 상영시간 5분전에 들어가면 된다.'
흔한 팝콘과 콜라가 없고 영화관엘 들어가면 광고나 예고편 없이 본영화가 즉시 상영된다.
영화가 다 끝나 Ending Credit이 올라가는 동안 좌석에서 일어나는 관객이 거의 없어 좋다.
이제 경로 우대 가격으로 영화를 볼 때마다 영화를 제값주고 보는 것 같아 기쁘다.
우대 가격이 6,000원이다.
국민 소득은 높지 않으면서 우리나라 영화 관람료는 선진국과 비슷한 요금을 받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
영화표를 미리 구매하고 쉬는 사이 3층에 있는 "일주(태광 산업 창립자의 호) 미술관"을 관람하면 좋다.
마침 월요일이라 휴관이다.
지하 2층에 있는 스프링 가든 밖.
벽에 기대어 앉아 쉴 수 있는 목재 장의자엔 지혜로운 여성 관람객들이 이미 자리잡고 느긋하게 정담을 나누고 있다.
"In the house"-프랑수아 오종 감독.
감독이름은 모르겠으나 그의 작품중 "8명의 여인들(8 Femine),스위밍 풀,Time to Live를 이미 보았다.
특히 Time to live 는 암으로 시한부 생명을 살며 삶을 정리하고 담담히 죽음을 맏는 청년 사진 작가를 그렸던 작품이다.
죽음 가까이 가지 않으려는 젊은 사람들에게 주는 메세지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파트너에게 (그는 게이다)에게 결별을 고하고 제일 사랑해주던 할머니와도 작별한다.
정자가 부족한 남편을 대신해 아길 갖고 싶어 하며 돈을 주겠다는 여인에게 거절했다가 무보수로 아기를 만든다.
죽음에 대한 부정이나 고통스런 발작 없이 담담히 맞는 죽음을 그려내던 프랑소아 오종 감독의 이름은 기억해야했다.
"In the house"는 코미디,스릴,섹슈얼리티를 교묘히 엮어 정교하게 만들어진 영화다.
관람객에게 상상을 불어놓고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상상인지 혼선을 주다가 뜻하지 않은 상상의 반전이 있다.
배우들의 명연기는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여)는 낮이 익은 배우라 궁금하여 뒤져보니 "English Patient"와 "Mission Impossible"에 출연했다
엠마누엘 자이그너는 (47세)는 내가 좋아하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80세)의 부인이다.
1977년 13세 소녀와 성관계로 기소되었던 로만 폴란스키는 그의 역작"피아니스트"하나만으로도 눈을 감아주고 싶었던 감독이다.
오랫만에 아내와 함께 월요일 오후를 알차게 보낸 날이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뒤여서 지하철 텅빈 경로석에 함께 앉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눈을 감고 있다 보니 벌써 집근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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