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중국

리장여행(12)-고대 수호신, 쌍어문의 흔적

Jay.B.Lee 2013. 6. 7. 06:12

 

유달리 관심가는 쌍어문(쌍漁紋).

리장에서  쌍어문을 볼줄  몰랐다.

쌍어문 즉  물고기를 상징하는 신어(神魚) 사상은 가락국의 수로왕 시절 보옥선사의 妹씨인 보주태후 허황옥이 아유타국(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서기 48년 가락국에 도착한 시점에서 시작된것으로 짐작한다(중국에 살며 아유타국인이라고 하는 것은 미국에 살면서 한국인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김수로왕과 허황후 사이에 10명의 아들을 낳았고 오늘날 600만의 이르는 김해 김씨,김해 허씨,*인천 이씨의 조상이 되었다.

그런 이유로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서로 혼인하지 않는 전통 의식이 강하다.

아유타국은 인도의 아요디아로 간주되며 우리 말에는 400여개의 고대 인도어가 있으며 조선 시대 선교사 허버트(주시경의 선생으로 제자 와 함게 우리말을 연구하고 최초로 띄워쓰기를 했다)는 한국에 살다보니 한국 지명에 드라비다어가 많다고 했다.

 

"가락(Karak)은 구 드라비다어로 물고기를 뜻하며 가야(Kaya)는 신 드라비다어로 물고기라는 것이다."-언어학자 강길은 교수의 가야와 드라비다어의 비교에서.

 

" 아오디아시의 수많은 건물에는 쌍어문이 새겨져 있으며 그 모양은 김해의 김수로왕능에 있는 쌍어문과 아주 흡사하다."-
"가락국 탐사"(아동 문학가 이종기 씀)

 

 

김해의 은하사(銀河寺) 수미단 (불상을 안치한 일종의 대좌 같은 형식) 전면에는 신어가 부조로 남아 있으며 은하사의 부속건물 "취운루"의 중수기(重修記)엔 한문으로 빽빽히 기록되어있다.

 "세상에 전해지기를 가락국왕비 허황후는 천축국(天竺國)에서 온사람이다.

그의 오라버니 장유화상(張遊和尙)이 서림사(西林寺:은하사의 옛이름)를 창건했다"

 

우리나라에 쌍어가 나타난 지역은 주로 가야와 신라로 집중되어 있으며 아래와 같다.

*김해 수로왕능

*김해 은하사

*울산 개운사

*양산 통도사

*양산 계원사

*합천 영암寺址

-공주 무령왕능 출토 그릇의 밑바닥 그림 등

 

Fish Gate(어문)은 바빌론의 한집단이 Oaness 신을 모시는 신전에 신전 대문에 물고기 한쌍을 조각했으며 문의 신이라고 생각했다.

(구약성경 스바냐 1:10절 느헤미야 3;3 12:9절)

물고기는 유목민족들에겐 신비스러운 동물로 여겨졌으며 고대 고구려 주몽설화에도 물고기가 등장하고 신라 왕들의 허리띠에도 물고기가 달려 있다.

힌두교에서는 21개의 主 神중 하나로 어신을 모시고 있으며 라마교에서는 여덟가지 상서로운 神物로 취급한다.

현재 쌍어문은  인도의 유피州의 문장으로 사용하며 州都  러크나우는 옛날에는 아요디아가 중심지였다.

네팔에서는 물고기 두마리가 <붓다의 눈>을 상징하고 있다고 믿는다.

중국 사천성 운남성에서 발견된 한나라 벽돌에는 쌍어문이 조각 되어 있고 의창,무한 지방에는 구리로 만든 그릇바닥에 쌍어가 부귀(富貴)의 길상어 (吉祥語)를 보좌하는 그림이 있다.

또 동전하나에 달린 두개의 끈을 물고기 두마리가 양족 끝에서 입에 물고 올라가는 모양의 그림이 있다

-운남성 리장에서 팔고 있는 사진의 봉제 물고기 두마리가 이 형태다.

물고기는 몽골의 수많은 라마교 사원에도 쌍어 조각이 있으며 칭키스칸이 쓰던 취사용 솥에도 새겨져 있었다.

현재도 몽골에서는 물고기를 수호신으로 여긴다.

 

 

 

쌍어 신앙사상는 메소포타미아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생각에서 탄생했다.

 기원전 12세기 그 지방에서 아시리아 문화가 시작 될 때 쌍어는 만물을 보호하는 신으로 숭배되었다.

아시리아 때 시작된 신어사상은 바빌로니아 시대에도 계속 왕권의 상징 처럼 쌍어문이 유행한다

그것이 바빌론의 지배를 받던 민족들의 이동으로 서쪽으로 지중해, 동쪽으로는 페르시아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신어 사상은 물고기 아이콘으로 오병이어의 그림이다.

지중해의 사람들에게 퍼져나간  신어사상은 기독교 이슬람교를 막론하고 민간 신앙이 되었다

 시리아,레바논,이집트,튜니지아등에서 쌍어문 조각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한편 메소 포타미아 에서 생격난 신어 사상(神魚 思想)은  흑해를 근거지로 일어난 스키타이를 통해 중앙아시아 전지역과 알타이 지대 유목민에게 퍼졌다.

이런 과정에서 신어 사상은 각지역의 토착 신앙과 섞여 인도 대륙에 흡수되었고 그것이 힌두교와  불교에 스며든 것 같다

따라서 메소포타미아와 인도지역에 살았던 민족들에게 이 사유 세계가 퍼지게 되었다.

그러한  쌍어 신앙이 인도인의 이민으로 중국의 운남,사천지방 주민에게 퍼져 나갔고 북쪽으로는 라마교를 통해 몽골의 초원 민족에게도 전달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의 한나라와 흉노족의 영향으로 인도 아요디아 사회는 분리되고 쿠산 세력(월지국)이 내려오며 아요디아의 지배 계급과 지식인들은 동쪽과 남쪽으로 피난가는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보주는 사천성(四川省) 안악현의 옛이름이며 송 나라까지의 명칭이었다.

중국의 안악면에는 보주란 지명을 사용한 간판이 많으며 14개의 보주 허씨 집성촌이 있고 인구수는 약 15만명이다

 서기 101년 반란이 일어났을 때 주동자인 허성의 항복을 받아 강하(江河)로 이주시켜 집단 생활을 시켰다는 기록이 있으며 (후한지)

중국의 무한은 허씨족이 이주해 살던 마지막 거점 강하계다.

허황옥이 강하로 온것이 서기 47년 ,여기서 일년 살았으며 이듬해 가락국으로 이주했다.

무한 시내에는 지금도 강하대로란 지명이 있다.

한번 떠나면 돌아올 수 없는 길- 혼인길에 허황옥은 금수능라,의상필단,금은 주옥,경구(미얀마 보석인" 루비"를 뜻함),복완기를 지참하고 서기 48년 7월 27일 가락국에 도착했다.

허황옥 일족은 인도-운남-사천-무한에 이르는 여로를 거쳐 가야를 향해 대항해를 떠났다.

 사천 지방에서 한국으로 이동한 허황옥 일행에  의하여 쌍어 신앙은 가락국으로 펴졌고, 다시 가라국 출신의 일본 이민으로 일본에 까지 퍼지게 되었다.

페르시아신화에서  나무 뿌리를 지키는 두마리의 영험한 물고기(페르시아신화)이름이 가라(Kara)로 신어 사상은 인류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이란 페르세폴리스 북쪽 파사르 가드 유적지 코르쉬왕(다리우스 1세의 아버지)석조 궁전에는 현재도 커다란 쌍어 조각이 남아있다.

 

<상기 내용들은 대부분 고고학자 김병모(김해 김씨)박사가 1961년 부터 46년간에 걸친 연구 기록("허황옥 루트-인도에서 가야까지"-역사의 아침社2008년간)을 발췌한 것임을 밝힌다.

 김박사는 쌍어문에 대해 연구한 세계의 유일한 고고학자다.

과거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며 신라 왕관이 사슴뿔을 상징하며 몽골 택시기사 자동차 키고리에서도 신라 왕의 허리 띠에 달려있는 물고기들를 발견했을 때  신문 기사를 접한 사람들은 열광했었다  >

사진:리장 지붕 처마에서 본 물고기 두마리

 

 

동파 만신원에서 본 물고기 .

 

*김해 허씨가 인천 이씨가 된 유래는 다음과 같다.

수로왕과 허왕후 사이에10명의 아들중 7명은 스님이 되었고 (쌍계사 칠불암에서 성불 )태자로 책봉된 장자는  왕통(거등왕)을 이었다.

 두아들(次子)은 허태후의 요청으로  성씨 허씨를 따랐다.

왕비의 성을 이은 아들중 허기(許奇)는 신라 경덕왕 아찬 벼슬로 사신으로 당나라에 간 다음해 안록산의 난으로 귀국치 못했다.

이때 그는 예로써 현종을 모시며 황제의 호위에 힘썼다.

다음 해 난이 평정되고 황제는 이를 가상히 여겨 詩를 주어 칭찬하고 황제의 성을 하사했다.

4년만에 황제의 조서를 받들어 귀국한 그에게 경덕왕은   벼슬을 더하고 소송(邵城:인천의 옛지명)伯에 봉했다.

그후 소송이 경원,인주로 불리워 소송 이씨 ,경원 이씨,인주 이씨로 불리우다 행정구역명이 근대에 이르러  인천으로 확정됨에 따라 인천 이씨가 되었다.

許奇에서 10世에 이르는 동안 허씨와 이씨 복성(複姓)을 사용하다 허겸에 이르러 이씨성을 확정,인천 이씨의 시조가 된다.

자손들은 府가 있던 소래산 부근에 살았으며 始祖 이 허겸 묘는 인천 까치섬(현재 남동구 연수동)에 있다.

이허겸의 외손녀 3명은 현종의 비가 되었고 손자인 이자연의 세딸은 모두 문종비로 들어갔다.

특히 이자연의 장녀 태후 이씨는 불교 천태종의 창시자이 대각국사 의천의 어머니다.

 시조 묘 옆엔 인천 이씨 재실이 있어 "원인재(原仁齎:인천 이씨의근원의 의미 )"라 부른다.

인천시에서는 세습적으로 습봉한 역사적 인연을 기려 남동구 지하철역 이름을 "원인재"라고 명명했다.

 -이동원,이승원편저"인천 이씨의 근원"에서 참조.

 

 

 

 

6월19일 부터 23일간  Coex에서 서울 국제 도서전이 열렸다.

마침 인도 아요디아의 공주 이야기가 일러스트작가에 의해 나와 전시중이란 소식을 듣고 도서전을 찾았다.

 올해는 인도가 주빈국으로 초청받았다.

7명의 노벨수상자를 내세워 문화대국인 인도 앞에서 주눅이 든다. 

돈주고 사온 평화상은 없는 편이 나았다.

인도관을 안내하는 한국청년들은  대부분  인도에 유학중인 학생들이다.

책이 어디 있냐고 묻자 25권(National Book Trust ,India)이나 가져왔는데 전시중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한국과 계약을 맺어 곧 한국어로 출판될 예정이라는 소식만 전한다.

글:N Parthasarathi   그림: Soumitra Dasgupta

<Ayodhya>

the holy land that gives humanity the story of Ramayana ,the great poetical epic of Ramacharitmanasa by Goswami Tulsidas(16th century)-is also the place that give the legend of its princess Srirantna marrying to King Kim Suro of Gaya Kingdom of Korea sometimes in AD 48.

The legend has survived through these centuries .

In Korea,even today ,family members of Kimhea Kims and Huhs do not inter - marry as they consider themselves of desendents of Kim Suro and Queen Huh,the Korean name of Sriratana .

Monuments in the name of Queen exist at Kimhae in Korea and Ayodhya in India as symbol of ancient ties between India and Korea.

This graphic novel is attempt to further that symbol of friendship and family ties between two countries as believed throughthis Llegend,specially brought out to coincide with India as Guest of Honour country at Seoul International Book fair,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