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짬을 내어 아내와 가평 북면에 있는 친구 산장을 방문하고 오는 길에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전적비들이 눈에 들어 왔다.
1급수가 흐르던 가평 북면 산골짜기에도 물이 말랐다.
명색이 가평이라고 졸졸 흐르며 간신히 사막을 면했다.
우리나라 지하수가 다 뽑혔나 산은 점점 푸르러지고 우거져도 물이 고이질 않는다.
싸리재 입구에 있는 호주 ,뉴질랜드군 전적비다.
태극기와 함께 걸린 호주 국기.바람이 없는 더운 날이라 국기조차 움직임이 없다.
1951년4월 24일의 가평 전투중에 전사한 장병의 무덤의 상징(?)
2개 대대파견에 전사 340명 부상 1,240명 얼마나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지 ,우릴 위해 싸우다 죽어간 그 시대의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숙연해진다.
보훈의 달을 맞아 서울에서 보낸 조화가 놓여 있었다. 6.25를 맞는 6월달이어서 의미가 깊다.
정말이지 워싱톤 한국 전쟁 참전 기념비에 씌인 것처럼 당시 알지도 못하는 나라,만나 본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달려온 군인들이다.
뉴질랜드 참전 기념 동판
남쪽엔 뉴질랜드 기념비와 북쪽으로 호주 기념비가 마주서 있다.
가평 북면에서 가평군 목동 쪽으로 오다보면 캐나다 참전 전적비가 있다.
캐나다 수도 "오타와 "국회의사당에 가면 커다란 금빛 책자에 한구구 전쟁 참전 용사들의 이름이 하나 하나 적혀있다.
불에 그을린듯한 흑회색 돌로 만든 오타와 국회의사당 밖으로 나오면 작은 광장에 참전 기념비가 있다.
각면에는 1차대전 참전, 2차대전 참전 , 한국 전쟁이 세번째다.
캐나다군이 1950년부터 휴전이 되던 1953년까지 미국 다음으로 많은 장병을 파견했다.
캐나다 특유의 단풍잎이 상징인 캐나다 국기.기념비의 중앙의 나뭇잎이 캐나다 단풍잎이다.
마치 마지막 피를 흘리며 죽어가며 새겼나 석공의 글씨는 쳐지고 끌은 무디어졌나보다.
아니면 95프로 공정을 끝낸뒤 전투 지역 문제로 중단 했다가 다른 석공이 기계아닌 끌로 판 흔적으로 추정한다.
75년 가평군에서 만들어 건립한 전적비.
그림은 캐나다 중대가 방어한 위치와 적군의 공격 루트다.
전적비의 Erected의 "C"가 "O"로 가평의 "G"가 "Q"로 되어 있다.
당시 영어를 모르는 석공,영어를 모르는 공무원이 있어서다.
서울에 돌아와 가평군내 담당부서인 <주민 지원실>을 찾아 오류를 전달했다.
지금이라도 수정, 석판을 교체하여 후일 이곳을 찾는 분들이나 캐나다 관계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았기를 바란다.
'그네들의 희생과 정신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진정으로 잊어서는 않된다.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캐나다이어서 우측은 불어로 ,중앙은 우리말로 좌측은 영어로 현판을 건립했다.
Oh,Canada~ 캐나다 국가는 그렇게 시작한다.
캐나다 참전 부대 이름을 적은 기념비.
6월만이라도 깨끗이 닦아 놓았음 싶다.
군청에서 보다 근처 군부대나 학교에서 일년에 몇번 이곳을 방문하여 청소하면서 그네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배운다면 더 좋은 교육의 기회도 될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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