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세리 성당(충남 지정 문화재 144호)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 193-4번지(041-533-8181)
아내가 손자와 딸 뒷바라지하는 사이 ,이틀 시간을 내어 함께 바람쏘이러 떠나기로 한날 내가 잡은 코스는 공세리 성당-의사 이남규 고택-진안 마이산 탑사-전주 최명희 문학관-남원 혼불박물관이다.
공세리 성당은 우리나라 성당중 가장 아름답다는 성당이어서 꼭 놓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날씨가 너무 좋은 날 ,늦게 출발하여 사진 찍기엔 좋지 않은 시각이다.
열흘 정도 일찍 왔으면 벚꽃핀 성당입구가 더 보기 좋았겠다.
평일 오전이어서 고요하리만큼 조용한 성당을 천천히 돌아볼 수 있어 너무 편하다.
유럽의 화려한 성당보다 시골 조용한 마을 언덕위에 서있는 성당이어서 더 마음에 든다.
연분홍 꽃으로 뒾덮힌 성당 오르는 길.
350년 이상된 세그루의 보호수가 있다.
성당 주위로 골고다 언덕을 향해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셔서 십자가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의자 앉아있는 예수를 내어 준 "빌라도".
아들과 구경하다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지고간 구레네 사람 "시몬"
제비를 뽑아 옷을 나눠 가지는 병사들.
32인의 순교자 묘역 뒤편.
천주교 박해 당시 32인의 순교자 현양비
이 작은 아담한 건물은 박물관으로 이곳에 처음 부임한1대 드비즈(프랑스) 신부의 유품도 진열되어 있다.
처음안 사실은 오래전 유명했던 "이명래 고약"의 유래로 1895년 에밀 드밀즈 신부가 고약을 제조하여 사용하였며 신부를 돕던 이명래가 고약을 만들어 "이명래 고약"이 된 것이라 한다.
고약의 처방을 생각하면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양실조에다 비위생적이어서 얼마나 부스럼이 많았고 종기가 많았을까 짐작이 간다.
시골은 완전 과거 아프리카 보다 나을 것이 없었던 시절이다.
100여년전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 기자의 글이 잊혀지지 않는다.
"조선은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오지가 아닐까?"
나도 어릴 때 피부가 곪으면 고약으로 근을 뽑고 새살이 빨리 돋도록 효험이 좋던 이명래 고약을 사용한 기억이 있다.
요즈음도 생산되는지 궁금하다.
성당을 기웃거리자 수녀님이 웃으시며 들어가 보아도 된다고 했다.
옛 우리 관습대로 신발을 밖의 신발장 안에 넣고 양말만을 신은채 미사를 드리는 곳이다.
검소하고 수려한 성당 내부.
가운데 분은 "성 베네딕트 "로 이 성당 공사시 신자가 두명이 죽자 드비시 신부가" 베네딕트 성인"패 3개를 현 제단 아래에 묻고 3일간
기도후 아무런 사고 없이 공사를 마칠수 있었다 한다.
그런 연유로 중앙에 성 베네딕트가 놓이게 되었다.
본 성당은 늘어 나는 신자를 위해 드비즈 신부가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들이 지었다 한다.
성당이 있던 자리는 원래 지근 거리의 40여개 마을에서 걷우어 드린던 조세를 보관하던 공세창(貢稅倉)이 있던 곳이다.
마을 이름이 공세리가 된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영화,드라마 70여편이 촬영될 만큼 아름다운 명소로 자리 잡았다.
나뭇잎이 물드는 가을 ,태안 수목원 가는 날 다시 방문하기로 기약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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