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아르메니아

Genocide Museum(학살 박물관)

Jay.B.Lee 2011. 1. 9. 16:49

 

사진:아라랏 산

예레반 Memorial Complex에 오르면 멀리 아르메니아의 정신적 고향의 상징인 아라랏 산이 보인다.

 비록 지금은 터키의 영토가 되었어도 그네들의 가슴엔 영원히 살아있는 아라랏산을 국경으로 지우진 못할 것이다.

 

구약성경시대엔 아이부터 어른까지 살아있는 것은 모두 죽여버리는  학살들이 있었지만  근대에 이르러 행해진 대학살은 정말로 끔찍하다.
인간의 잔혹성이 어디까지인지 -

세계 인류사중 난징 대학살(30만명)은 인간이 저지른 만행중 가장 야만적이며 끔찍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1937년부터 1938년까지 몇달에 걸쳐 별다른 저항이나 전투가 없었슴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이 중국에 공포를 주기위해 살해한 방법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전쟁이 있는 곳에 약탈과 살인 강간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 살해 방법을 보면 치가 떨린다.
그저 침묵하며 사실을 부인하는 일본인들이 가증스러울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1차대전 기간중인 1915년 4월오스만 투르크(터키)에서 행해진 아르메니아인 100여만명과 쿠르드인 3만명의 죽음에 대해 언급한 터키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은 용기있는 사람이다.
18세에서 50세 까지의 남자는 전부 살해하고 노약자와 부녀자는 메소포타미아 사막으로 추방하여 굶어죽게한 사건을 터키 민족주의자들은 부인을 하고 있다 .

그러나 먼 후일 진실을 밝힌 그가 진정 터키의 자랑이 되길 기대한다.
 진정 터키인들도 회개하기를.

그러나 세월이 가면 누가 기억할 것인가.
남미 원주민인을 대부분 학살하여 씨를 말리고 2천여만명에 달하던 초원을 달리던 자유인,아메리칸 원주민(인디언)들은 어디로 갔나?
대학살과 질병과 굶주림과 추위로 스러져가고 그 자랑스럽던 용사들은 기록으로 전해질 뿐이다.
 또 한명도 남김없이 멸종을 시킨 호주 타스마니아 원주민 학살은 누가 기억할까.....


자국내에서 동족간에 행해진 대학살(Autogenocide)중에서는 크메르의 폴 포트가 1700만명을 학살한 것도 기록적일 것이다.
킬링필드로 기억되는 대학살을 자행했다.
공산주의 이상사회를 건설하겠다며 걸림돌이 된다고 자국민을 죽인 그의 광기도 그렇지만 베트남을 견제하기 위해 폴 포트를 지원해준 미국도 책임이 아주  없다고는 못할 것이다.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가면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인민의 적`으로 몰려 살해당하고, 굶주려 죽고 또 중노동에 시달리다 죽은 불쌍한 쏘련 주민은 최소 2,000만명에 육박하며 마오쩌둥 치하의 중국에서도 많은 희생자가 있었다 한다.(아직 전모는 밝혀지지 않았다)

또1994년 르완다에서는 다수족인 후치족과  소수족인 투치족의 종족 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1998년 코소보 사태로 인종 청소라고 행해진 살육들을 생각해 보면 정말로 끔찍한 일이다.

"누가 아르메니아에서 죽은 100만명을 기억하리."히틀러는 말했다 한다.
히틀러는 600여만의 유대인(요즈음 숫자가 과장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과 20여만의 장애자,300만명의 폴란드 기독교도, 또 숫자를 일일히 기억할 수도 없는 집시(25-50만)와 소수민족,정치범들을 학살하며 스스로 위로를 삼았는지 모른다.

-----2006년 4월 본인의 폴란드 아우츠비츠방문 여행기에서

 

 

 

 

꺼지지않는 불

 

 

 

한편에는 이곳 학살 박물관을 방문한 수많은 정치인들의 기념식수가 있다.

오전 11시 에 개관,오후 4시면 문을 닫는다.오후 4시에 갔다가 들어가지 못하고 다음 날 다시 와야했다.

시내에서 택시로 1,000디람이면 간다.

 

 

 

 

 

 

1915.4.24일 터키인들은 아르메니아의 지식인들을 체포 ,처형하였다.

                  Bishop Saadathyan과 지도자의 목을 잘라놓고 터키의 세명의 장교가 기념으로 찍은 사진

               어저면 이렇게 흡사한 장면도 있나. 일본군들이 독립투사들을 교수형을 시키던 장면과 너무나 똑같다.

 

 

 

 

 

 

 

 

 

 

 

 

학살 기념관을 견학온 아이들.

아르메니아 교외에서 선생님과 함게 견학온 아이들.

택시로 온뒤 갈 때는 택시가 없다.그네들의 미니 버스 신세를 졌다.

 기사가 고맙게도 오페라 하우스 옆에 내려 주었다.차타고 가는 동안 내게 사탕을 나눠주었던 아이들.